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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배우는 사람 느는데, 프로기사는 잠 못드는 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네 번째 대국에서 첫 승리를 거둔 뒤 복기를 하고 있다. 감정 없는 기계와 사투를 벌인 이 9단의 지친 표정이 안쓰럽다. [사진 구글]



‘바둑의 바자도 모르는데 내가 살다가 룰도 모르는 증계방송 5시간 본 건 처음이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 -5-] 알파고 쇼크, 바둑·게임 미래는

‘인공지능인 알파고에는 없는 품위와 격조가 사람에게는 있다. 이세돌이 그걸 충분히 보여줬다.’



‘이 9단이 알파고의 수에 홀로 어깨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볼 땐 마음이 아파 울었다. 그러나 3연패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첫 승으로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 9단의 투혼에 깨달은 게 많다.’(하호정 4단)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이 벌인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들이다. 이 대국은 숱한 화제를 낳았고 바둑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이 “컴퓨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게임업계도 덩달아 ‘알파고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에게 더 이상 이길 수 없게 됨으로써 바둑이나 게임(e스포츠) 같은 두뇌스포츠는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만만찮다. ‘알파고 후폭풍’ 이후 바둑과 게임 같은 두뇌스포츠는 어떻게 바뀌어 갈까.



 



"휴대폰에 알파고 깔면 이세돌도 이길 것"바둑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커진 것은 사실이다. 시중 바둑교실과 학교 방과후교실에 바둑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한국기원의 유치원 바둑보급 사업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곳에서 "왜 우리만 탈락시켰느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바둑이 두뇌개발과 인성교육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한국바둑학회는 오는 6월 ‘바둑교육과 수학교육’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프로 기사들이 느끼는 감은 다르다. 이들은 큰 내상을 입었다. ‘바둑은 수가 무궁무진하다. 인간의 직관을 기계가 당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명지대 바둑학과의 김진환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알파고가 어떻게 수를 탐색해 나가는지를 알게 되면서 결론은 나와 있었다. 0-5로 지거나 5-0으로 이기거나. 첫 대국이 열린 날 오전에 바둑학과 수업을 하면서 ‘만약 이세돌이 오늘 진다면 남은 경기에서 딱 한 판만이라도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돌이 4국에서 이긴 건 기적이면서도 바둑계로서는 천운이었다. 다섯 번 대국 중에서 판이 제일 나빴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겼다.”



1997년 IBM이 개발한 딥블루가 체스에서 세계챔피언을 이겼다. 이후 체스는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바둑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유창혁 9단은 “알파고-이세돌 대국 결과에 충격을 받아 잠을 못 잤다는 프로 기사들이 있다. 알파고는 지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알파고 같은 프로그램이 널리 보급되면 바둑을 사람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 컴퓨터가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환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알파고 프로그램을 휴대폰에 깔 수 있는 날이 오면 바둑산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누구나 알파고만 깔면 이세돌을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 프로 기사들의 존재감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자동차가 나왔어도 육상 경기는 계속 하지 않나’라며 애써 자위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비교 대상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자동차로 인한 생활의 변화와 스포츠로 즐기는 육상 경기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자동차가 나와서 사라진 건 교통 수단으로서의 말(馬)이다. 그런데 자동차가 발명됐어도 자전거는 여전히 자동차의 빈틈을 메우며 살아남았다. 바둑 엘리트들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말이 아니라 자전거 같은 역할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게임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2 프로 리그 장면. [중앙포토]



“청소년 잘못되면 무조건 게임 탓인가”게임 업계도 덩달아 술렁이고 있다. 알파고와 스타크래프트 대결에 누가 나가야 하는지를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대회를 싹쓸이 할 정도로 게임 최강국이다.



프로 게이머 출신이며 게임 방송 해설위원인 이현우(29) 씨를 만났다. 바둑 아마 5단인 이 위원은 “알파고-이세돌 바둑 대결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며 “스타크래프트는 알파고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하느냐에 따라 인간과의 승부가 달라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해설위원은 “바둑은 알파고가 연산할 수 있는 1∼2분의 시간이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진행되는 게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세가 된 게임은 롤(LoL·League of Legend)이다. 5명이 한 팀이 돼 상대 기지를 깨뜨리는 경기다. SK텔레콤·kt 등 통신 회사들을 중심으로 10개 팀이 프로 리그(롤챔스)를 벌인다. 네이버 스포츠란에 롤챔스 관련 기사가 톱으로 자주 올라온다. 네이버의 한 직원은 "네이버가 게임을 의도적으로 키운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프로야구나 다른 스포츠 기사보다 게임 기사를 더 많이 보니까 톱으로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100명 정도의 프로 게이머가 활동하고 있다. 연봉은 천차만별인데, 중국 팀에서 10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데려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4년 10월 19일 롤드컵(롤의 세계대회) 결승이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는데 4만 명의 관객이 들어찼다. 2004년 7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 때는 무려 10만 명이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특설무대에 몰렸다.



그런데 게임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바로 중독성·폭력성 문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출신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2013년 ‘게임중독법’을 발의했다. 게임을 알코올·도박 등과 같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자는 법안이다. 2013년 12월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지만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게임의 중독성·폭력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 부처 사이에서도 의견이 정반대로 갈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부는 ‘게임은 미래 먹거리이자 창조경제의 핵심’ 이라며 적극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여성가족부는 ‘게임은 아동·청소년의 육체와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어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현우 위원은 우리 사회가 게임을 스포츠의 한 종류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하는 사람들은 열망이 있다. 스포츠로 인정받고 싶고,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어떤 것이든 과몰입이나 중독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청소년이 잘못되면 무조건 게임 탓이라고 하는 건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와중에 게임 중독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바둑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돼 흥미를 끈다. 똑같이 재미있는 놀이지만 바둑은 중독성이 크게 낮고 폭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진환 교수는 "바둑은 불확실성, 즉 운이나 요행이 거의 없다. 모든 수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 둔다. 그래서 중독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과 게임을 향해 알파고는 충격과 도전 과제를 함께 던졌다. 바둑은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게임은 중독성과 폭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신의 한 수’를 둬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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