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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병풍 한 틀이 문화 외교관 역할

매화 병풍으로 장식된 한·불 외교장관 전략대화 회의장. [사진 한국가구박물관]



정미숙(69) 한국가구박물관장은 국내외 외교가에 친구가 많다. 1995년 문을 연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이 한국 전통 의·식·주의 본산으로 이름나면서 한국 방문길에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소문이 난 덕이다. 주한 외국 대사관 부인들이 한국을 배우는 필수 코스요, 안목 높은 유명 인사들이 엄지손가락을 쳐드는 만족도 1위 명소다. 풀 한 포기, 작은 돌 장식 하나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완벽주의 고집쟁이를 자처하는 정 관장을 외교가에서는 ‘피키 레이디(Picky Lady)’, 까다로운 숙녀라고 부른다.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며칠 전에도 정미숙 관장은 ‘피키 레이디’의 면모를 발휘하며 화제가 됐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열린 ‘한·불 외교장관 전략대화’ 준비 때문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장 마르크 에로 외교국제개발장관은 원래 다른 장소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오찬만 가구박물관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갑자기 행사 전날, 정 관장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대화에 이어 오찬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특별전시장을 회담장으로 바꾸면서 뭘 주제로 내세울까 고민이 시작됐다. 양국 외교장관의 우애를 빛낼 무대가 필요했다. 정 관장의 컴퓨터 같은 머리가 번득였다. 두 나라의 오랜 교유와 미래의 협력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매화가 맞춤 했다. ‘아, 이 자리에 걸맞은 명품이 있는데.’ 정 관장은 바로 허동화(90) 한국자수박물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화를 주제로 한 전시에 나왔던 자수박물관 소장의 조선시대 매화 자수 병풍이 눈앞에 선명했다.



한밤의 공수작전으로 회의장은 봄 향내 그윽한 우정의 마당이 됐다. 유물 한 점이 발휘하는 힘은 대단했다. 보는 이마다 자수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허동화 관장은 “100여 년이 지났음에도 금빛 자수 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60년대부터 우리 보자기와 불교 자수·복식·장신구 등 3000여 점을 모아 ‘보자기 할배’로 불리는 그는 이 병풍의 내력에 대해서도 어제 일 보듯 했다.



“이 정도 크기에 10폭이면 대작(大作)이죠. 70년대 초 퇴계로 7가 고미술상에서 이 물건을 처음 봤을 때 그 탄탄하고 힘찬 바닥을 만져보니 이건 남자가 수놓은 거구나 했어요. 조선시대에 북쪽 안주나 구성 지역에서는 남자가 수를 놨거든요. 자수 수요가 많은데다 여자 솜씨로는 해낼 도리가 없었죠.”



허 관장은 돗자리 수 기법에 꼰 실을 쓴 것으로 봐서 불교 의식용이었거나 상류 양반층이 주문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세기를 견뎌낸 실과 바늘의 공력이 살아있는 꽃보다 더 깊은 암향(暗香)으로 다가온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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