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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취재]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8년 추적기

수많은 의혹 남긴 채 검·경의 조희팔 수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피해자만 7만~10만 명, 40인의 추적자 ‘바실련법’ 제정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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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과 지난해 대한민국은 조희팔이라는 이름 석 자로 떠들썩했다. 1957년생 조희팔. ‘희대의 사기꾼’,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 같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다. 보통사람들의 술자리에서도 “조희팔이 해먹은 돈이 4조원이 넘는다더라. 사기당한 피해자도 7만 명을 넘는다네”, “무슨 소리야, 8조원이래. 피해자는 10만 명이 넘고”, “그런데 아직 살아서 중국에서 도망 다닌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등등 안주삼아 도는 말이 수없이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희팔의 핵심 측근들이 하나둘 붙잡혀 구속되고 은닉 재산이 조금씩 규명되면서 올해 들어서는 조희팔 사기 사건이 더 이상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아닌 듯하다. “측근들이 조희팔 죽었다고 하더라”, “숨겨둔 돈을 찾아서 피해자들에게 이제 돌려주겠지?”, “조희팔 측에게 돈 받은 경찰과 검찰 수사관도 다 잡혔다네.” 거개가 조희팔 사건 자체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경의 조희팔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은 중국 공안에 협조를 구하면서 조희팔의 생사(生死)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장쑤성 우시시(無錫市)에서 붙잡은 조희팔의 오른팔 강모(55) 씨를 상대로 정·관계 로비 연루자에 대해서도 계속 캐고 있다. 같은 달 7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붙잡힌 조희팔의 최측근 배모(45) 씨를 불러 은닉재산의 규모도 조사 중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범행 초기인 2004년 조희팔이 유사수신 업체를 설립할 당시까지 사건을 되짚으며 관련자를 찾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카더라’식으로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사들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지난 1월에는 대구경찰청 한 경찰관이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가 조희팔이 사라지기 직전인 2007년과 2008년 상황을 다시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조희팔. 이 사기극의 시작과 끝을 다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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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촬영해 공개한 조희팔의 장례식 모습. 투명한 관에 누워있는 남자가 조희팔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연출된 장례식이라고 주장한다. / 사진·중앙포토


고전 <삼국지>와 맞먹을 만큼 많은 등장인물
조희팔 사기 사건은 가해자만 100명 가까울 정도로 많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황제와 그 자식들, 왕비가 130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략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사건이 얽히고설켜 복잡하다. 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연루자가 계속 나온다. 현재까지 구속수사 등 검·경이 확인한 연루자만 70명이 넘는다. 직업군도 다양하다. 조직폭력배부터 무속인, 보험업자, 과일 행상, 주부까지도 끼어 있다. 이들은 조희팔과 친척, 가족, 친구, 동네 선후배 등의 관계로 연결돼 있다. 조희팔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뒤를 봐준’ 경찰과 전직 검사, 전직 검찰수사관 역시 학교·동창 관계로 이어진다. 엄청난 검은 돈에 ‘인맥·혈연’이라는 고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불나방처럼 모여든 것이다.

실제 사기의 시작은 조희팔의 주변 인맥과 혈연관계가 출발점이었다. 조희팔은 유사수신 사기 행각을 벌이기 전 자판기 장사와 과일상을 잠시 했다. 이때 자신의 오른팔로 최근 중국에서 붙잡힌 강씨를 처음 만났다. 국립대를 졸업한 강씨는 말솜씨가 좋고 눈치가 빨랐다. 조희팔이 범행 구상 단계에서 그를 끌어들인 이유도 뛰어난 언변에다 대졸 학벌 등 강씨의 장점을 보고 나서다. 강씨는 여기에 자신의 친척인 배 씨를 끼어 넣었다.

인맥과 혈연으로 얽힌 조희팔과 강·배씨 3명은 마치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처럼 이후 수조 원대 피해를 낸 희대의 유사수신 사건의 핵심 인물이 된다. 조희팔 유사수신 피해자 모임인 ‘바실련(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전세훈 매체국장은 “조희팔과 강·배, 이들 3인방이 핵심 인물이다. 범행 자체를 인맥, 혈연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잘 숨겼기 때문에 수년간 수조 원대의 황당한 사기 행각이 밝혀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돼지고기 좋아했던 시골 아이 조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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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꾼 조희팔과 그의 오른팔 강모 씨. 강씨는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 공안에 체포됐다. / 사진·중앙포토

전씨는 바실련에 소속된 40명의 회원과 2008년부터 8년째 끈질기게 조희팔을 추적해왔다. 사기 피해자들은 이들을 ‘40인의 추적자’라고 부른다. 전씨는 2008년 어머니가 조희팔의 유사수신 사기에 걸려들어 수억 원을 탕진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꼭 내 손으로 잡아 어머니의 돈을 찾겠다”며 자진해서 추적자가 됐다. 이들이 그동안 발품을 팔아 찾아낸 조희팔 관련 정보가 검·경에 제공되고 일부는 바실련 본부의 문서고에 보관돼 있다. 문서고의 자료를 토대로 바실련은 조희팔 조직이 갖고 있는 인맥·혈연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해냈다.

바실련과 조희팔을 아는 지인들에 따르면 조희팔은 4조 원대의 투자금을 빼먹은 희대의 사기꾼이었지만 어린 시절엔 시골의 평범한 아이였다. 경북 영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대구로 올라왔다. “꼭 성공해서 가족들을 돌보며 돼지고기를 실컷 먹고 TV도 편히 보겠다”고 주변사람에게 말했다고 한다.

최근 만난 조희팔이 고향 마을의 한 주민은 어린 시절의 조희팔을 이렇게 기억했다. “영리했어. 인사도 잘했지. 몸집이 작아서 주먹질 같은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사기꾼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 조용하니 차분했던 아이였는데.”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많은 주민이 그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동네 주민 말처럼 어린 시절 유별스럽거나 시끄러운 아이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대구에 온 10대의 조희팔은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냉동식품 도매 업소에 취직해 일했다. 자판기에 과일 행상도 이즈음에 잠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대에 들어서는 도박판을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했다. 영남권 최대 폭력조직인 ‘동성로파’ 행동대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대구 지역에서 영화 관련 일에 종사하는 50대 감독의 이야기다.

“조직폭력배들이 그를 동료로 끼워줄 정도는 아니었어.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친구들에게 싹싹하고 재미있는 친구였지. 그러니까 진짜 조직폭력배가 일진이라면 희팔이는 그 주변을 얼쩡대는 인물 뭐 그런 정도였어. 분명한 건 거칠거나 사납진 않았다는 거야.” 이때쯤에 조희팔은 자신의 인생 행로를 바꾼 불법 유사수신업에 발을 담그게 된다. 친형이 일하던 국내 최초의 유사수신 사업체인 ‘SMK(숭민코리아)’에 들어가 일을 접하고 배웠다고 한다.

2004년 따로 독립한 조희팔은 그해 10월 강씨 등 지인 10여 명의 도움을 받아 ㈜BMC를 대구시 동구에 설립했다. BMC는 ‘Big Mountain Company(큰 산과 같은 회사)’의 약자다. 회사는 목욕탕과 병원에 안마기·골반 교정기 등의 의료기기를 임대해준 뒤 수익을 배당한다고 속이고 투자자를 모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한 계좌(440만원·의료기 한 대 가격)를 투자하면 8개월간 원금과 배당금을 합쳐 매일 2만6000∼4만2000원씩 166차례에 걸쳐 581만원(수익률 32%)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투자자 모집에는 앞서 언급한 조희팔의 오른팔 강씨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국립대 수석 졸업의 인텔리, BMC의 브레인.’ 이름 대신 이런 별명으로 불리는 강씨였다. 강씨는 달변가로 투자자 모집 과정에서 교육 강사로도 활약했다. 그때마다 국립대 수석 졸업자로 자신을 소개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100만원이 넘는 고급 양복에 에쿠스 같은 좋은 차를 타고 국립대 학벌로 포장하니 다들 인텔리나 회사 브레인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바실련 측은 “자체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강씨의 국립대 수석 졸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문어발식 법인 설립으로 돈 돌려막기
초창기에 BMC는 진짜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돈을 줬다. 투자자가 의심하면 별도로 꾸며놓은 의료기기 임대처로 그를 데려가 기기가 설치된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돈을 꼬박꼬박 주고 그럴싸한 의료기기 임대처에, 잘 차려입은 달변가까지 있으니 조희팔 유사수신 업체는 순식간에 믿을 만한 회사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를 바탕으로 조희팔은 사업을 더욱 확장해나갔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인천·경남 등지에 유사한 법인을 계속 만들었다. 리브·CN·챌린·리버스·리드앤 등 인맥과 혈연으로 이어진 측근들에게 회사를 하나씩 차려주며 투자자를 전국적으로 모집했다. 주된 타깃은 40~60대 주부들이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사기 조직은 계산이 밝은 경기도의 화교들의 주머니까지 노렸다.

법인을 분리해 BMC와 별개의 기업처럼 운영하며 세무 당국의 감시도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이렇게 만든 법인 수가 전국적으로 20개를 넘었다. 한쪽 법인에서 투자자에게 돈을 못 주면 다른 지역의 법인에서 돈을 받아 돌려막는 방법을 썼다. 국내 최초의 유사수신 돌려막기 수법이다. 당시 조희팔 사건을 수사한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실제 투자금은 의료기기 임대가 아니라 바다이야기·백화점·호텔·무역·노름판 등 합법·불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런 마구잡이 투자는 검찰 수사로도 확인됐다. 지난해 대구지검 수사 발표 내용이다. “유사수신 사기를 벌인 조희팔의 국내 재산을 추적해 현금 788억원과 182억원 상당의 부동산 등 970억원어치를 찾아냈다. 현금 중 760억원은 고철 수입업자에게 투자한 상태였고 28억원은 예금이었다. 부동산은 백화점(136억원)과 호텔(46억원)이었다. 동산과 채권 230억원어치가 더 있다는 정보를 확보해 이 재산도 찾고 있다.”

롤렉스 등 사치품 좋아하고 마약까지 손댄 조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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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유사수신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경찰이 배포한 수배 전단지. 조희팔과 오른팔 강씨, 최근측인 배씨도 보인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대구경찰청 지하주차장에는 3500cc 검은색 K9 차량이 4개월여 세워져 있었다. 이 차량도 당시 피해자들의 투자금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차주는 조희팔의 오른팔인 강씨의 친척이자 최측근 배씨. 그는 2008년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투자자의 돈을 챙겨 7년 동안 잠적했다가 지난해 10월에 검거됐다. 그는 K9 차량을 다른 사람 명의로 구입해 타고 다니며 낚시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숨어 지냈다. 공매를 통해 처분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피해품이 이렇게 경찰청 지하주차장에서 수개월째 방치됐던 셈이다. 바실련측은 “조희팔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민사소송만 185건이지만 아직 직접적으로 피해금을 돌려받은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조희팔의 유사수신 사기는 대성공이었다.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 그는 세 가지를 즐겼다. 골프와 여자, 도박이었다. 가끔은 마약을 하기도 했고, 룸살롱에 가면 양주를 다른 방까지 돌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금 다발을 들고 다녔고 여자도 여럿 사귀었다. 어린 시절 가난을 보상하기 위해서였을까. BMW 차량에 1000만원이 넘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녔다. 명품 지갑에 구두는 늘 반짝이게 흙한 점 묻지 않게 닦고 다녔다.

김상전 바실련 대표는 “사기범이지만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사과를 한 박스씩 사서 나눠주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했다. 사기범으로 드러났지만 이웃들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조희팔은 지인들에게도 돈을 잘 썼다. 조희팔과 알고 지냈다는 한 지인은 기자에게 “2007년 초쯤으로 기억한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200만원을 내놓더라. 차안에 작은 가방이 있었는데 만 원짜리가 뭉치로 잔뜩 들어있었다”고 전했다.

조희팔의 유사수신 사기는 3년이 지나면서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후발 가입자의 돈으로 예전 회원들에게 이자를 주는 구조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입금이 늦어지자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결국 그의 사기 행각은 들통이 났다. 경찰은 조희팔의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조희팔과 측근들은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게 사건 무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주요 검·경 비호세력은 대구경찰청 전 경사인 정모(41)와 임모(49), 전 대구경찰청 총경인 권모(52), 대구지검 수사관 오모(55) 씨 등 4명이다. 조희팔 일당에게서 돈을 받고 수사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일부는 도주 중인 이들과 만나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조희팔 업체에 투자를 한 사람도 있고, 경찰복을 벗고 조희팔 업체 들어가 수사기관 정보를 빼내거나 로비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전직 경찰관도 있다. 조희팔 일당은 돈을 써가며 다가올 수사에 대비해왔음이 증명된 것이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9일 충남 태안의 마검포항에서 어선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밝혀졌다. 1만원권으로 7000만원의 돈다발을 선주에게 건네주었다.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희팔의 밀항은 오른팔인 강 씨가 미리 중국에서 자리를 잡도록 한 뒤에 이뤄졌다. 숙박할 곳과 탈 것을 사전에 준비하게 한 것이다. 조희팔은 충남 태안에서 배를 띄워 공해상으로 나간 뒤 조카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나와 준비해둔 중국 선박에 옮겨 타고 밀항에 성공했다. 이게 국내에 알려진 조희팔의 마지막 행적이다. 이 과정에서 해경은 조희팔의 배를 보고도 모른척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자살한 조카의 폭로 “삼촌 도피 중 성형수술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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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유사수신 피해자들이 조희팔의 빠른 검거를 요구하고 있다. 비호세력 수사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중국에서 조희팔은 큰 사업가로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곳 이상에 집을 마련해두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도피생활을 했다. 국내에서처럼 골프도 즐겼다고 한다. 중국 공안의 수사망은 다른 사람 명의의 공민증을 만들어 피해나갔다. 밀항 후 3년여가 지난 2011년 12월, 경찰은 조희팔이 도피처인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화장을 했고, 장례식을 하는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조희팔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음은 당연지사다. 피해자들은 거짓 죽음이라고 주장하고, 조희팔 측근들은 진짜 죽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현재까지 계속된다.

밀항 후 중국에서의 조희팔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나와 배를 준비해 도피를 도운 조희팔의 조카 Y씨(46)는 지난해 10월 15일 대구시 동촌유원지에서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름과 사진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조희팔의 밀항과정과 중국 도피생활, 생사 여부 등을 밝혔다.

“삼촌(조희팔)은 중국에서 6개월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 했다.” 도피 중에는 “다렌(大連)에 도착한 이후 칭다오(靑島), 쑤저우(蘇州), 다시 칭다오, 웨이하이(威海), 옌타이(煙臺) 등에서 아파트를 임대해 생활했고, (…) 주로 골프를 치고 1주일에 네 번은 술을 마셨다”고 그는 말했다.

Y씨는 조씨가 밀항해 중국으로 갈 때부터 함께했다. 밀항과 관련, 자수해 재판을 받고 1년간 복역한 2010년 초부터 2011년 초까지 1년간을 빼놓고는 줄곧 조씨와 함께 지낸 셈이다. 출소 후에는 다시 중국으로 가서 조씨와 함께 살았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조씨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성형수술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Y씨는 자신이 자수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조씨의 생존 여부에 대해 “삼촌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 후 꼭 5일 만인 10월 20일 대구시 동구 효목동의 한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사인은 타살이 아닌 약물 중독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이를 ‘폭로’라고 표현했다.

“당시 대구의 한 경찰관에게 현금 8000만원 준 적이 있다. 삼촌(조희팔)을 밀항시킨 것을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나서다. 하지만 경찰에 자수할 경우 밀항 출발지인 서산에서 조사받게 된다. 친분이 있던 당시 대구 경찰관에게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니까 거짓 사기사건을 만든 후 나를 사기사건의 피의자로 설정하면 대구에서 조사받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그렇게 했다. 그 대가로 8000만원을 줬다.”

이 경찰관은 2010년에 경찰복을 벗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경찰청 한 간부는 “자체적으로 내사를 했지만 Y씨의 폭로의 진실을 뒷받침할 대대적인 수사를 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당시 조희팔 측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좋지 않은 소문은 좀 있었다고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풀리지 않는 조희팔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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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인 Y씨의 말대로 조희팔은 정말 사망했을까. “그렇다”고 답하기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우선 그의 묘부터 미스터리다. 경북의 한 공원묘지에 가면 실제 묘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공원묘지 등록부에 적힌 묘 주인은 조희팔이 아닌 ‘조영복’. 조희팔이 중국에서 쓰던 이름이다. 진짜 죽었다면 굳이 가짜 이름을 등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창녕 조공 희팔 가족지묘’라고 쓰여 있는 묘비 또한 의문스럽다. 조희팔의 가족 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발표도 애매하다. 화장된 유골의 DNA를 조사했지만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거다. 피해자들은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호텔에 직접 확인한 결과 2011년 12월 한국인 남자가 사망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서류상의 증거 또한 조희팔 사망설을 완전히 깨기엔 역부족이다. 중국에서 발행한 사망진단서가 유일한 증거다. 하지만 위조가 판치는 중국 상황을 감안하면 사망진단서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사망하지 않았다”는 피해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조씨 측근들은 하나같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오른팔 강씨는 “2011년 12월 겨울 조씨는 죽었다. 직접 보았다”고 말했고 조씨의 아들(31)도 강씨와 같은 증언을 했다. 그는 “아버지는 2011년 11월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에도 갔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최측근인 배씨 역시 “조씨를 2008년 10월 말 회식 자리에서 만난 뒤 현재까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조희팔의 측근들은 입을 모아 조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서 한 달가량 차이가 난다. 지금까지 상황과 주장을 종합하면 조씨가 숨졌다는 날짜는 2011년 11월 18일, 11월 24일, 12월 18일, 12월 19일, 12월 21일 등 모두 5개에 달한다. 조씨의 아들과 측근들, 조씨 납골묘와 경찰이 공식 발표한 사망 날짜가 제각각 다르다.

그런 와중에 지금도 조희팔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드문드문 들려온다. 지난해 초 대구 수성구에서 한 친구가 그를 보고 이름을 불렀더니 급히 달아났다는 얘기부터 지난해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직접 대면한 사람이 있다는 말도 나돈다. 중국에서 태국으로 밀항을 도왔다는 외국인 근로자 이야기도 나돈다. 최근에 조희팔이 아닌 것으로 정리됐지만 지난해 9월 중국 칭다오 외곽의 한 카페에서 조희팔이 여성 두 명을 만났다는 주장도 나돌았다.

미스터리한 조희팔 생사문제를 주장에 따라 정리해봤다.

① 유족은 “사망” 주장: “사망하지 않았다면 잡으러 나설 텐데,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안 잡힌다. 사망했으니까.” 조씨의 조카인 Y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16일 중앙일보와 두 번째 전화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이렇게 강조했다. Y씨는 조씨가 중국으로 밀항할 때 함께했고, 2010년 초부터 2011년 초까지 1년을 빼고는 줄곧 중국에서 함께 살았다. 그는 “삼촌 유골을 내 손으로 직접 들고 왔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의 상황은 이렇게 묘사했다. “스크린골프 치러 간다고 했는데 오후 9시쯤 조선족 운전기사에게 휴대전화가 왔다. 달려가 보니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맥박이 멈춘 상태였다. 어찌된 일인지 발이 시커맸다. 그때 사망했다.”

② 경찰도 ‘사망’ 쪽에 무게: 장례식 동영상에 대해 경찰은 이렇게 설명한다. “조사 결과 동영상은 유족이 아니라 다단계 조직이 찍었다고 했다. 그걸 보고 조희팔의 아들이 ‘당신들 뭐 하는 거냐’며 뺏었다. 유족들이 경찰에 비디오를 제출한 것도 아니다. 조희팔이 사망하고 5개월쯤 지나 ‘가족이 조희팔과 접촉한 것 같다’는 첩보를 받고 집을 압수수색했다. 그때 사망확인서와 비디오가 나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너무 슬프다’는 딸의 일기도 있었다. 그 뒤 중국 현지 공안과 응급처치를 한 의사 등을 만나 사망을 확인하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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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이 부산의 한 호텔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 한창 사기 행각을 벌일 때의 모습이다.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사망 발표를 한 경찰은 조씨에 대한 수배령을 아직 거두지 않았다. 조씨 가족도 아직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해 말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조씨와 관련해) 생존 반응이라고 할 만한 구체적인 첩보 등이 전혀 없다. (살아 있다면) 누군가는 접촉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첩보 형태로 나온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받은 첩보에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은 “2011년 말까지 조 씨에 대해 제대로 된 첩보를 얻지 못했던 경찰이 그 후라고 첩보를 얻을 수 있었겠느냐”고 반론을 폈다.

③ 전직 경찰은 왜 중국에 갔을까: 경찰은 지난해 10월 조희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직 경찰관 정씨를 구속했다. 그는 중국 광저우(廣州)로 가려다 붙잡혔다. 조씨가 중국으로 도피한 뒤인 2009년 현지에서 조씨를 만나 골프와 술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때 말고도 중국 광저우 등지를 20여 회 추가로 방문했다. 조희팔을 만나려는 목적이 아니었는지 의심할 대목이다. 인천공항에서 그를 붙잡은 경찰은 먼저 “조희팔 측을 만나러 간 것 아니냐”고 깨묻자 “조희팔은 죽은 것으로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쇠파리’ 조희팔 영화 제작될 예정
조희팔 사기극은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대국민 사기 방지 공익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서다. 영화 제목은 ‘쇠파리’다. 제작을 맡은 대구경북영화인협회는 “가축에 달라붙어 피해를 입히는 쇠파리에 조씨 사건을 빗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음이 조희팔 씨의 ‘희팔이’와 비슷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협회는 지난해 말까지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마무리하고 현재 출연진 확정을 앞두고 있다. 본격 촬영의 시작은 4월로 예정돼 있다.

메이저 배급사와 100개 이상 전국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제작비는 12억원. 대구시 등이 일부 지원하고 임권택 영화학교가 있는 부산 동서대가 수억 원 상당의 현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영화는 조희팔이란 이름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조씨의 사기 행태를 그대로 따라간다. 회사가 만들어지고, 사기 행각을 벌이고, 밀항해 도주하는 스토리가 모두 담긴다.

가족들이 유사수신행위 피해를 당한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와 사기범을 쫓는다. 정치적 외압, 사기범이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장면, 농부들이 사기를 당해 힘들어하는 모습 등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실제 촬영도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경북 성주군에서 진행된다. 정병원 대구경북영화인협회 부회장은 “지난 1년간 피해자 100여 명을 인터뷰하며 영화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바실련은 유사수신 사기 피해를 막고 범죄은닉재산의 강력한 추징을 위한 이른바 조희팔법인 ‘바실련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바실련 법은 제3자의 범죄은닉재산에 대한 추징과 몰수를 골자로 하는 법이다. 2016년 아직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조희팔 사건의 진실은 언제 명확히 밝혀질까.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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