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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파 경제학자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노동개혁 없인 한국 경제 미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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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경빈 기자

한국 학자들은 일본 경제를 공부한다. 20~30년 전에는 일본의 성장모델을 배우기 위해, 지금은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호황에 취해 발 밑을 보지 못한 일본은 그간의 안일함을 반성하며 ‘강한 일본’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내수시장을 강화하고, 구조개혁을 이루고 있다. 무기력과 좌절감에 빠진 젊은이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한다.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간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 경제가 다시 일어서려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를 만났다. 일본 경제의 변화와 한국 경제의 내일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다. 앞으로 한국에도 닥칠지 모르는 ‘잃어버린 20년’을 떨쳐내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노동개혁을 시작으로, 경제구조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깨고, 고착화된 산업 구조를 생산성 높은 분야로 빠르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성장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부실화된 산업을 살리겠다며 붙잡고 있다가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 경제가 뭐가 달라졌나.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시각과 달리 엔저는 수출 경쟁력 확보보다는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이다. 과거 일본 경제 호황기에 많은 기업이 인건비 절감과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겼다.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로 엔화값이 뛰는 바람에, 생산비를 낮출 필요도 있었다. 제3 국에서 생산한 물건을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수출하면서 엔화 수요가 늘자 엔고 현상이 나타났다. 달러화 등 기타 통화로 결제해도 결국 일본으로 송금하니, 엔화 가치가 뛸 수밖에 없었다. 엔고가 지나치면 가계 소득 부진 등 내수에 악영향을 준다. 일본은 경제 회복을 위해선 내수를 키워야 한다. 아직까지 갈 길은 멀지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만 현 상황을 유지한다면, 출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소비세율 인상 가능성은

“정부는 내년 4월 소비세율을 10% 인상한다는 계획인데, 현재로서는 정치적 이슈 탓에 겉돌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안정되고 있어, 소비세율 인상 압력은 줄었다. 정부도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섣불리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 컬럼비아대)도 아베 신조 총리에게 내수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세율 인상에 반대했다. 관건은 중국이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저축률이 떨어지고 재정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거나, 대중국 흑자가 줄어들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책 수단이 많아 연착륙 가능성을 크게 본다. 다만, 제조업·금융 등 경제 전반의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시장과 정부의 투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잠재적 부실이 많을 수 있다. 중국이 투자한 유전·광산의 가치가 4분의 1로 떨어졌음에도, 규모와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본 유출 규모와 성격을 두고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노조의 반대 같은 민주주의의 비용이 없기 때문에, 다소 혼란이 있겠지만 구조개혁은 잘 될 것이라고 본다. 또 중국은 세계 경제의 ‘대마(大馬)’다. 중국이 망가지면 다 같이 무너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미국·유럽도 중국의 구조개혁안에 불만이 있어도, 자본통제 등 조치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종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문제의 실타래는 노동시장 개혁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지난 20년 간 인건비가 꾸준히 내려간 데 비해 한국의 정규직 직원의 임금은 계속 올랐다. 생산성보다 인건비 상승률이 가파르면, 기업으로선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경영이 좋아도 최소한의 인력을 유지한 채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소득이 양극화했다. 소득 편차가 커 가계부채도 소득 하위 50%에 집중돼 있다.”

해결 방안은.

“노동·인건비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시장 개혁도 당연히 병행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은 지속성이 없다.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재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마냥 지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수의 보호받는 노동자가 많은 급여를 가져가는 바람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측면도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생산성이 높은 산업과 기업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곧 성장동력 확충으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에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저성장은 상당히 고착화 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의 제조업은 더욱 더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이다. 앞으로 수출은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인프라 수출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프라는 나라별로 법과 규제가 달라 접근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막대한 내수시장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자기 중심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지적재산권 문제에 있어서도, 당당하게 기술 공개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한국은 중국과 경쟁 구도를 만들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내수시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부실한 기업을 구조조정하고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 수술 없이 약만 열심히 먹는다고 암 세포가 사라지지 않는다. 영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인적자원 밖에 없다. 한국의 인적자원은 수준과 규모면에서 정점에 왔다. 취업과 해고를 규격화·표준화 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잘 되는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가족기업을 만든다든가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지식기반 경제로 변모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많다.”

한국 경제에 조언이 있다면.

“한국은 불안감에 빠진 사회다. 젊은 세대만 위험에 노출된 것이 아니다. 안락한 노후를 위한 연금제도조차 튼튼하지 않다. 기성세대도 많은 불안감을 안고 산다는 얘기다. 한국이 수출 감소로 접어든 지 4년이 됐다. 일본의 경우 20년 동안 수출이 줄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성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한다. 비교적 잘 살고 있는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프지 않기 때문에 수술하지 않는 것이다. 부자는 디플레이션이 오면 현금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생활이 나아진다. 한국은 일본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여성의 일자리나 출산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 1958년 도쿄 출생으로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예일대를 거쳤다. 30년 넘게 동아시아 경제와 제도, 산업 발전을 연구해온 지한파 경제학자다. 한국 학계·재계와 폭넓게 교류하고 있으며 동북아, 한일관계 학술 행사의 단골 명사로 인기가 높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과 조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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