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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초량시장서 “이건 장마” 훈수에 할머니 “우엉인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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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돌미나리, 이건 방풍나물, 이건 고들빼기.” 지난달 31일 부산 동구 초량시장을 돌다 산나물 좌판을 발견한 문재인(얼굴)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환한 표정으로 구부려 앉아 이재강 후보에게 열심히 한 수 가르쳤다. 경남 양산 집의 산책로에 피는 금목서·은목서·물봉선 같은 야생화를 보며 안식을 찾는다는 문 전 대표다.

채소 하나를 가리키며 “이게 뭔 줄 아시나요?”라고 던진 마지막 문제. 이 후보가 “마(麻)”라고 답하자 문 전 대표는 “그래. 마 중에서도 장마(長麻)”라고 맞장구쳤다. 그때 좌판 할머니로부터 돌직구가 날아왔다. “아닌데예. 우엉인데예.” 박장대소가 터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저공비행 중이다. 유세단을 대동하지도, 마이크를 잡지도 않는다. 당의 선거운동복인 파란 재킷도 입지 않는다. 오로지 손과 발이 무기다. 후보와 함께 재래시장 가게 문턱을 넘나드느라 분주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동선은 의식해 피한다. 미리 김 대표의 일정을 알아봐서 김 대표가 동쪽으로 가면, 문 전 대표는 서쪽으로 간다. 문재인식 백의종군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31일. 문 전 대표는 부산에서도 야권의 험지인 중·영도구와 동·서구를 돌았다. 영도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 동구는 1988년 통일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허삼수 후보를 눌렀던 곳이다.

초량시장에서 분식 장사를 하는 하금자(65)씨는 “노(무현) 대통령 손도 잡았었다”며 문 전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바까(꿔)주이소”라는 문 전 대표의 말에 하씨는 시선을 피했다. 문 전 대표가 떠난 뒤 하씨는 “나는 전주 출신이라 민주당(더민주)을 뽑지만…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1일 김 대표가 호남행을 하자 문 전 대표는 급히 상경했다. 박주민(은평갑)·강병원(은평을)·진성준(강서을)·황희(양천갑) 후보 등 친문(親文) 인사 선거를 도왔다.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선 쏟아지는 사진촬영 요청에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다. 문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눈 김모씨(45)는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또한 “국민의당 후보 때문에 더민주가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전 대표는 이번 총선 결과에 가장 큰 걸 맡긴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생명’을 걸었다. 지난 1월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는 “총선 결과에 무한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운명을 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종인’이다. 운동권 정당, 진보 패권 정당의 색깔을 빼겠다며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칼을 뻗었다. 측근들의 비명 소리에도 문 전 대표는 김 대표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문 전 대표의 생명선, 무한책임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 김 대표는 지난 16일 ‘현재 의석수(102석) 유지’를 승패 기준으로 꼽았다. 문 전 대표도 “현재 의석수를 지키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야권분열 상황에서 이 선이라도 넘긴다면 문 전 대표의 정치생명은 유지될 수 있다. 그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제외한 대선주자들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에게 당 운영을 넘기고서야 오르는 지지율을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 전 대표는 총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총선 후에도 역할을 하겠다’고 예고한 김 대표가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받겠지만 선거에서 ‘선방(善防)한다면’ 김 대표를 영입한 문 전 대표도 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변수는 김 대표가 그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거 결과가 안 좋아 현 의석수에 미달할 경우 문 전 대표는 무한책임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게 ‘정계은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표가 강서을에서 양천갑으로 이동하는 동안 20분 동승했다. 문 전 대표는 “바닥 민심은 바꿔보자더라”고 고무된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나 어디 가겠다’며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물었더니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와는 연대 책임, 아니 선거 결과에 관한 한 공동 운명체”라고 강조했다. 정치생명을 걸었지만 운명은 남이 정해주는 묘한 상황이다.

부산·서울=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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