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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삼촌 고쳐줄 의사 될래요" 부모 잃은 아이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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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네팔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더마(오른쪽)와 비수노가 지난달 24일 네팔 중북부 라수와 지역에 있는 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더마는 영어, 비수노는 수학을 꼽았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해피 홀리(Happy Holi)!”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소리쳤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엔 온갖 색깔의 물감이 묻어 있었다. 지난달 22일 네팔 중북부 산간 지역인 라수와(Rasuwa)에 도착한 첫날. 마침 ‘색채의 축제’라 불리는 ‘홀리 축제’ 시즌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에 가루 물감을 묻히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려댔다. 타국에서 온 이방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물감 범벅이 된 기자의 얼굴을 보며 사람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환히 웃었다.

|복구 더뎌 무너진 건물 거의 방치
천막 치고 슬레이트판 덮어 생활, 폐허된 땅에서 밭 일구고 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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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경. 슬레이트로 덮은 지붕이 많이 보인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이 지역은 지난해 4월 25일 사망자만 8800명이 넘은 네팔 대지진 사건 때 가장 피해가 컸던 곳 중 하나다. 지진으로 지역 인구 4만여 명 중 430명이 사망했고 753명이 크게 다쳤다. 무너진 건물 수만 8000여 동이었다. 지역의 63%가 고도 3000m 이상이라 구호·복구 물자를 공급받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건물 대다수는 군데군데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돌로 벽을 쌓고, 나무로 지붕을 덮은 네팔의 전통 가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네팔 정부가 세이브더칠드런·유니세프 등 비영리단체(NPO)들의 도움을 받아 복구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역부족임이 역력해 보였다.

사람들은 무너진 벽 대신 천막이나 볏짚을, 사라진 지붕 대신 슬레이트 판을 덮고 살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황폐화한 땅에 다시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삶의 의지를 보여줬다. 아낙들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수확한 작물을 다듬었고, 그 옆에서 동네 꼬맹이들이 뛰놀았다. 그러다 손님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며 네팔식 홍차 ‘찌아’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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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축제’ 시즌을 맞아 네팔 사람들이 얼굴에 물감을 묻히고 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라수와는 18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돼 있다. 마을 어디에서든 만년설이 쌓인 랑탕(Langtang)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은 지진 전엔 관광객들에게 인기 트레킹 코스로 꼽혔다. 관광객이 끊겨버린 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푸르프(34)를 만났다. 푸르프는 18개 마을 중 가틀랑(Gatlang) 마을의 청년 대표였다. 그는 지진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말 정오쯤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천지가 요동치기 시작했죠. 이웃들이 걱정돼 정신없이 소리쳤어요. ‘집에서 나와요, 어서!’”

다행히 이웃들은 대부분 밭일을 하느라 집 밖에 있었다. 덕분에 사상자 수가 많진 않았지만 거의 모든 집이 무너졌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서도 이웃들은 똘똘 뭉쳤다.

“처음엔 3~4일 동안 소금물만 먹었는데 며칠 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이웃들이 식량을 모두 내놨어요. 다같이 나눠 먹었죠. 그렇게 해서 버틸 수 있었어요. 다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푸르프의 두 딸 레베카(11)와 돌마(9), 그리고 아들 상개(5)가 다가왔다. 레베카는 이제 11개월 된 남동생 도마를 업고 있었다. 집 절반 이상이 무너졌지만 가족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며 그는 미소 지었다. 집 안에는 ‘제 장래희망은 의사입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큰 딸 레베카가 적은 것이었다.

|학교 101곳 중 98곳 붕괴돼 임시교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곳에서 공부 … 14세 바삼 “어려운 사람들 도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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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간호사가 꿈인 레베카(왼쪽)와 돌마가 각자의 장래희망이 적힌 종이 옆에 서 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다음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가봤다. 라수와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은 25곳의 임시학습센터(TLC·Temporary Learning Center)가 있다. 이 단체는 아이들에게 교재와 가방·학용품·방한용품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지진으로 라수와에 있던 학교 101곳 중 98곳이 무너져 대다수 아이들은 임시학습센터로 등교했다. 학생들은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교실에서 교재를 꺼내 들었다.

그들 가운데 바삼(14)도 있었다. 공부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삼의 집은 산에 있었다. 학교에 올 때는 두 시간, 집으로 갈 때는 세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하굣길을 함께 걸어봤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산을 탄 뒤 도착한 집은 볏짚 등을 대충 엮어 만든 임시가옥 형태였다. 원래 살던 곳은 지진 피해를 심하게 보아 복구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비좁은 임시 거주지 안에는 몸이 아파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바깥일을 하다 돌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바삼의 어머니는 기자의 팔을 연신 잡아끌며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바삼은 외출복을 벗어 한쪽에 곱게 개켜놓고 말했다.

“상황은 좀 힘들지만 곧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이렇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걸요. 열심히 공부해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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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중인 바삼. 그의 왼쪽 어깨 옆으로 보이는 산길이 등하굣길이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옆에서 통역을 하던 세이브더칠드런 네팔 직원 트립티(29)는 “처음 학교를 지을 땐 주민 모두 ‘학교가 당장 무슨 소용이냐’고 물었지만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삼처럼 새로운 목표가 생긴 아이가 늘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네팔이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힘은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축제 즐기고 웃지만 후유증 여전
“아직도 미세한 진동 느껴지면 겁나 … 이웃과 함께 마을 지켜나가고 싶어”


그 다음날인 24일 임시학습센터 놀이터에서 사촌 사이인 더마(7)와 비수노(7)를 만났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두 아이는 지진으로 부모를 잃어 임시 보호소에 있었다. 이를 본 한 승려가 이들을 입양해 자신의 부모가 사는 집으로 보냈다.

다가가 말을 걸자 더마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재잘거렸다. “비수노랑 그네 타는 게 제일 재밌어요. 전 할머니랑 할아버지(아이들을 입양한 승려의 부모)가 정말 좋아요. 이웃집 아줌마·아저씨들도 다 잘해 주세요.”

두 아이의 꿈은 똑같이 의사였다. 비수노는 “다른 동네에 삼촌이 살고 있는데 눈이 아파요. 의사가 돼 삼촌 눈을 제일 먼저 치료해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두 아이의 할머니가 된 프레탕(50)은 “가끔 더마와 비수노가 ‘너희는 엄마·아빠가 없어?’라고 묻는 친구들 때문에 울면서 집에 오곤 한다. 그래도 밝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참 기특하다”고 했다.

“잠은 잘 잤나요?” “춥진 않아요?” 네팔 현지인들에게서 끊임없이 받은 질문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고개를 끄덕거리면 이들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저녁이 되면 불 하나 켜놓고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푸르프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면 겁부터 먹는다. 그래도 이웃 주민들과 함께 이 마을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했다.

네팔인들은 이렇게 꿋꿋이 삶을 이어갔다. 결코 웃음도 잊지 않았다.
 
“네팔 사람들, 삶은 돌고 돈다고 생각 … 좋은 날 올 거라 믿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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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JTBC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한 네팔 청년 수잔 샤키야(사진)입니다.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지난달 가족을 만나러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복구가 많이 안 돼 실망했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거 아세요? 네팔 사람들은 삶이 원(圓) 모양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또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죠.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데는 종교의 힘이 커요. 네팔 사람 대부분은 힌두교도입니다. 힌두교에는 신이 여러 명 있어요. 저희들은 신들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이방인들에게 친절한 이유도 종교에서 비롯된 거예요. 손님을 ‘아바타(분신)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신’이라고 믿어요. 얼마나 잘사는지 신이 보러 오는 거래요. 그러니 네팔에서 사람들이 차를 한 잔 권한다면 기쁘게 받아주세요.

네팔 사람들은 공동체를 귀하게 여겨 일주일에 한 번은 친척이나 이웃끼리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눠요. 사람들은 대개 상당히 느긋하고 긍정적이죠. 한국 사람들은 좀 답답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늘 웃으며 사는 우리 네팔 사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수잔 샤키야

후원문의=세이브더칠드런(www.sc.or.kr) 

라수와(네팔)=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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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