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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체험형공장·공연장 갖춘 ‘모쿠모쿠팜’…한 해 관광객 50만명 몰려 매출 55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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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에현에 있는 농업 테마파크 ‘모쿠모쿠팜’ 전경. [사진 모쿠모쿠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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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 뷔페 레스토랑. [사진 모쿠모쿠팜]

“귤이 울퉁불퉁 못생겼네요.” “일단 하나 까서 드셔 보세요. 못난이지만 정말 맛있어요.”

손님과 판매원 간에 정겨운 대화가 오가는 이곳은 일본 중부의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에 있는 ‘이가노사토모쿠모쿠데즈쿠리팜(이하 모쿠모쿠팜)’의 농산물 장터 ‘파머스 마켓’이다. 농장 내 비닐하우스와 인근 농가에서 키운 채소·과일이 그득히 쌓여 있고 한쪽 벽엔 농부들의 사진과 이름이 크게 붙어 있다. 농장 내엔 농산물 직판장은 물론이고 레스토랑·공연장·베이커리·햄공장·맥주시음장에 온천과 숙박시설까지 있다. ‘농업’을 주제로 한 거대 테마마크인 이곳에는 연간 5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모쿠모쿠팜’은 일본에서 ‘6차 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농·축·수산업을 1차 산업, 인간의 기술을 이용한 제조업을 2차 산업, 판매나 서비스업 등을 3차 산업이라 한다면 이를 모두 합친 것, 즉 ‘1차+2차+3차’가 ‘6차 산업’이다.

농사에서 얻은 재료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고, 이를 유통하거나 체험 프로그램 등에 활용하는 융·복합 산업인 셈이다. 일본 도쿄대 이마무라 나라오미(今村奈良臣·82) 명예교수가 1990년대 중반에 만든 개념으로 요즘 일본은 물론 한국 농촌에서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6~19일 프리미엄 여행사 ‘뚜르디메디치’(대표 서현정)의 기획으로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의 농업 테마파크와 유기농 농장, 농가 레스토랑 등을 둘러봤다. 쇠퇴해 가는 농업을 소비자 친화적 ‘6차 산업’으로 전환해 미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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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매년 열리는 아기 돼지경주 행사. [사진 모쿠모쿠팜]


◆농업의 모든 것을 팝니다=봄꽃이 막 꽃잎을 터뜨리기 직전인 지난달 16일 ‘모쿠모쿠팜’을 찾았다. “지금은 비교적 한산하지만 2주 정도 지나 꽃이 피기 시작하면 무척 붐빌 것”이라고 직원 와타나베 다카히로(渡邊高弘·32)가 설명한다. 농장의 전체 면적은 대략 14㏊(약 4만2000평). 외곽에는 쌀·채소·딸기·버섯 농장과 양·돼지 축사가 있고, 중심부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농축산물로 빵과 소시지· 맥주 등을 만드는 체험형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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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내 베이커리에서 만든 빵을 구입하는 손님들(左), 모쿠모쿠팜에서 재배한 토마토를 재료로 만든 향토 맥주(右). [사진 모쿠모쿠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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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가 체험행사에서 만든 소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모쿠모쿠팜]

87년 일본 농협에서 일하던 기무라 오사무(木村修·65), 요시다 오사무(吉田修·66) 두 창업주가 회사를 그만두고 차린 ‘햄공장 모쿠모쿠’가 시초였다. 30년간 조금씩 규모가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매출 54억 엔(약 550억원)을 기록했다. 오사카·교토·나고야 등 인근 대도시에서 평일엔 약 1000명, 주말엔 2000명씩 관광객이 찾아온다. 딸기 수확, 햄·두부 만들기, 아기 돼지 경주 등 이곳에서 진행하는 80여 가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가족 단위 손님이 가장 많다.

농업인구 이탈과 고령화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일본에서 모쿠모쿠팜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농부학교’로도 불린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 내 농업 종사 인구는 85년 약 540만 명에서 2015년엔 209만 명으로 3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해 농업 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66.3세. 하지만 모쿠모쿠팜에서 만난 농부들은 젊었다. 현재 농장엔 정직원 120명, 파트타임을 합쳐 1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데 평균 연령은 32세다.

마쓰나가 시게루(松永茂) 상무는 “신입사원 모집 때마다 경쟁률이 20대 1을 넘는다.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모이지 않는다. ‘생명산업’이라는 농업의 가치를 만들고 전파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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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스미노사토 아와’의 미우라 마사유키 대표와 아기 염소. [사진 기요스미노사토 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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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대표가 복원한 전통 채소 우한(烏播). [사진 기요스미노사토 아와]

◆밭에서 갓 딴 채소로 만든 요리=나라(奈良)현 우다(宇陀)시 야마토(大和) 고원 중턱에 자리 잡은 무농약 오리농법 전문농장 ‘요코팜21’도 규모는 작지만 ‘모쿠모쿠팜’과 같은 농업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현재 55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시금치·우엉·감자·무·당근 등 100종 이상의 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특히 96년 시작한 오리농법 벼농사가 유명하다. 오리농법은 화학비료 대신 어린 오리를 논에 풀어놓아 곤충이나 잡초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18일 만난 구와하라 마코토(桑原誠人) 대표는 “초반엔 오리를 너무 많이 풀어 오리가 벼의 싹까지 다 먹어버리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다”며 웃었다. 이렇게 재배한 쌀은 백미 5㎏당 4000엔(약 4만원) 정도로 비싸지만 일본 전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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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현의 전통 채소들. [사진 기요스미노사토 아와]

일본에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유기농 농장에서 키운 재료로 현장에서 바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농가형 레스토랑’도 새로운 미식 트렌드로 떠올랐다. ‘요코팜21’도 2005년 농장 한편에 레스토랑 ‘노도카리(NODOKARI)’를 열었다. 이곳에서 키운 오리와 채소로 만든 요리를 내놓는데 오리 육질이 좋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 달치 예약이 꽉 차 있다.

나라 인근의 농가 레스토랑 중 가장 유명한 곳은 2012년판 『미슐랭 가이드 오사카·교토·고베편』에서 별 하나를 딴 ‘기요스미노사토 아와(?澄の里粟)’ 본점이다. 지난달 19일 나라현 다카히초(高?町) 논밭 한 가운데 있는 언덕을 오르니 레스토랑에서 키우는 염소 페타가 먼저 맞아줬다.

레스토랑 주인이자 셰프인 미우라 마사유키(三浦雅之·46)·요코(陽子·48) 부부가 2002년 자신들이 경작하는 밭 바로 옆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본점에 이어 2009년과 2015년 나라 시내에 각각 2, 3호점이 생겼고, 지난해 세 식당에서 1억3000만 엔(약 13억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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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산 쇠고기와 채소로 만든 요리. [사진 기요스미노사토 아와]


◆농업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해=‘기요스미노사토 아와’의 식재료는 특별하다. 테이블에는 울퉁불퉁하고 삐쭉삐쭉 털이 솟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기묘한 모양의 채소들이 올려져 있다. 인근 마트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나라현의 ‘전통 채소’다. 미우라 대표는 레스토랑 경영자 이전에 ‘전통 채소’ 전문가였다. “61년 일본 농업진흥법이 제정된 후 일본 농업은 급격히 산업화되죠. 그 탓에 맛은 있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져 버린 채소가 많아요. 이를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98년 지역 전통 채소를 조사·보존·연구하는 비영리법인 ‘기요스미노무라’를 만들었다. 인근 농가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종자를 모았고, 50여 종의 사라질 뻔한 지역 특산 채소를 되살렸다.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음식에는 야마토이모(大和芋·토란의 한 종류), 야마토마루나스(大和丸ナス·둥근 가지), 이마이치다이콘(いまいち大根·무의 한 종류) 등 이름도 낯선 다양한 채소가 쓰인다. 토종 무와 토란을 넣어 끓인 국은 담백하고, 오카라(おから·콩비지) 튀김은 입에서 스르르 녹았다. 미우라 대표는 “각각의 채소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며 “채소를 복원하는 건 그들의 이야기는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낸 농촌 공동체를 되살린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농약 안 치고, 잡초 안 뽑고, 밭도 안 가는 농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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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有機農)’과 ‘자연농(自然農)’은 친환경 농법의 예로 혼용돼 쓰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유기농이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가축 분뇨나 자연 광물, 미생물 등을 이용한 퇴비로 농사를 짓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자연농이다. 유기농은 벌레와 잡초 등 식물의 성장에 장애가 되는 대상을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제거하지만 자연농은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무농약·무비료·무제초제·무경운이 자연농의 원칙이다.

안전한 먹거리, 슬로 라이프(slow life)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일본에선 자연농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눌민)을 쓴 자연농의 대가 가와구치 요시카즈(川口由一·77·사진)다. 그는 1970년대 농약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밭도 갈지 않는 자연농을 시작했고, 91년에는 자연농을 가르치는 ‘아카메(赤目) 자연농학교’를 열었다. 지난달 18일 나라현 사쿠라이(櫻井)시에 있는 그의 밭을 찾았다. 잡초로 뒤덮인 덤불에서 그가 무와 당근 등을 뽑아낸다. “공기와 태양의 힘으로 자라는 작물의 생명력을 믿는 것이죠. 잡초에 지지 않고 자란 채소는 아주 맛이 좋습니다.”

자연농은 농법이라기보다 삶의 자세다. “무엇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뺄셈의 인생관이다. 가와구치는 “자연에 순응하며 스스로의 삶에서 ‘족(足)함’을 누리는 것이 자연농의 철학”이라고 했다.

미에·나라(일본)=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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