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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인터넷서 관심 끌고 허세·말싸움한다고 외로움 달래질까

전쟁 말고 사람들이 전부를 걸고 싸우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권력, 돈, 자존심이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인간의 본능에 깊이 박힌 권력욕, 재물욕, 명예욕의 현신이다. 그래서 이런 욕망이 서로 뒤섞인 선거, 주식시장, 말싸움은 늘 치열하다. 이 싸움은 사회가 규정한 법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지만, 워낙 강한 욕망의 싸움이다 보니 법과 질서를 넘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말싸움은 특히 인터넷에서 자주 벌어진다. 주먹이 오갈 리도 없고, 주식처럼 현금의 손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글로 치고받는 인터넷 말싸움이 죽기 살기로 심해질 때가 있다. 말싸움 도중 분을 삭이지 못한 쪽이 가끔 ‘현피’를 신청한다. 어원은 잘 모르지만, 현피는 현장 결투를 의미한다. 이렇게 만나서 물리적인 싸움을 하고 결국 경찰서에 붙잡혀 가는 것을 인터넷 은어로 ‘경찰서 정모’라고 한다. 경찰서에서 정기모임처럼 다 모였다는 뜻이다.

인터넷 말싸움이 꼭 소모적이거나 가치 없지는 않다. 때론 줄기세포 논쟁처럼 과학적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검증하기도 하고, 여야를 지지하는 정치적 견해를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하면서 숙의민주주의를 간접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준 높은 토론을 기대하기엔 글로만 주고받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제약이 많다. 네티즌들의 토론 경험도 부족하다. 그 대신 관심을 끌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인터넷에서 지나치게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사람을 정신병에 걸린 환자에 비유해 나쁜 말로 ‘관종’이라고 한다. ‘관심종자’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때로 사람들을 공분하게 하는 말로 시선을 끄는 경우가 있는데 ‘어그로 끈다’고 표현한다. ‘도발(aggravation)’에서 온 말로 자극적인 주장으로 시시비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PC통신 시절엔 올리는 글마다 제목에 ‘sex’를 넣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관심을 끈 뒤, 정작 본문 글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맨 아래 마지막 줄에 “제목의 sex는 오타였습니다”고 넉살을 부리기도 했다. ‘충격과 경악’ ‘속보’라는 자극적인 제목은 이제 너무 흔한 것이 됐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요즘에는 내용에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목 끝에 ‘jpg’라는 글자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본문 안에 사진이 있다는 뜻이다. 또 ‘주번나’라는 말머리를 붙이기도 하는데 “주변이 번잡하면 나중에 보세요”라는 뜻으로 주로 야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진을 소개할 때 쓰는 표현이다. 외국에서는 ‘NSFW(Not safe for work·회사에선 보지 마세요)’라는 단어가 있다고 하니 세상사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이런 인터넷 관심 끌기와 싸움에 대해 덧없음을 설파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까지는 아니더라도 알아듣기 쉬운 “아이고, 의미 없다” 수준의 유행어가 그것이다. 관심을 보일수록 오히려 점점 쓸데없는 자존심을 더 세우는 사람에게는 ‘허세’라고 한다. ‘허장성세(虛張聲勢)’에서 온 말로 자신을 과장해서 대담한 척하거나 아는 척할 때 주로 비난용으로 쓴다. 다른 말로 ‘근자감’도 있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심 끌기와 말싸움은 인터넷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니다. 세상이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인정받기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그나마 인터넷이 자기 생각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보니 그 안에서 뻐기고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 모든 것을 받아주긴 하지만 알파고가 그랬던 것처럼 기계가 우리 마음까지 해결해 주진 못한다.

우리 국민의 약 4분의 1은 이제 홀로 사는 가구다. 외로운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다. 권력을 위해, 돈을 위해, 자존심을 위해 싸우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알고 보면 모두 외롭다. 그 가운데 인터넷만이라도 서로를 보듬어 주는 따뜻한 곳이 됐으면 좋겠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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