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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120억 주식 대박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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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탐욕은 음습하다. 여간해선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다르다. ‘욕망해도 괜찮은 곳’이다. 탐욕이 유통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긴장과 흥분 속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거란 환상과 오해가 교차한다. 이들에게 돈은 처절한 승부의 대상이다. 그 속엔 맹목적인 애정이 작동한다. 장세를 낙관하며 희망과 기대에 부푼 사람, 내밀한 정보에 솔깃한 사람, 차트 분석을 자신하는 사람…. 저마다 꿈에 부풀어 주식을 사고 판다. “돈은 결코 잠들지 않으며, 탐욕은 악이 아니라 선한 것”이라는 역설이 통하는 곳이다. 그러나 돈을 벌었다는 사람보다 잃었다는 사람이 휠씬 많은 곳이 주식시장이다. 시장은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한 검사실. 부장검사가 직접 후배 검사실을 찾았다.

“용돈 벌이나 하지. 증권 계좌 있나?”

부장검사와 후배 검사 세 명의 은밀한 거래가 시작됐다. 검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도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탐욕의 자본은 무자비했고, 웬만해선 극복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줬다. 사건이 터지고 이들은 특임검사의 조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고수이거나 운이 좋거나, 확실한 정보를 쥔 관계자들에 불과하다. 금감위와 검찰,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나서지만 ‘공정한 게임’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 곳이 이 바닥이다.

“FIU가 닭 잡는 칼이 아니라 소 잡는 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04년 FIU에 검사 신분으로 파견됐던 진경준 심사기획팀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FIU는 기업의 불법적인 자금 흐름과 외화의 불법 유출입을 감독하는 곳이다. “검찰 등에 통보된 정보를 일일이 공개할 수 없지만 FIU가 수사기관에 통보한 것 중 30%는 범죄 혐의로 확정됐다.” 조직과 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그가 최근 ‘주식 대박’으로 궁지에 몰렸다. FIU 파견 근무를 끝낸 이듬해 넥슨 주식을 갖게 된 것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검사장급으로 승진하면서 보유주식 전량을 126억원에 팔면서 사달이 났다. 대중의 관심은 크게 세 가지다. 주식 취득 경위 및 매입가, 자금 출처, 직권 남용 여부 등이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식을 같이 매입했던 친구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이라고 한다. 주식 매매 과정에서의 세금 납부 여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욱 기괴한 것은 법무부의 태도다. “조사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심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을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란 직책이 조직의 신뢰를 담보로 할 만큼 요직도 아니다. 세 가지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검사들에 대한 부실한 검증시스템을 인정하는 게 싫은 것 같다. 미·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출장 중인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데 대한 부담도 있을 것이다. 이번 파문이 선거 국면에 이슈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상황을 거꾸로 돌려 보자. 만약 진 본부장이 금융수사에 밝은 검사가 아니었다면 그만큼의 주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 만약 그가 기업의 저승사자 역할을 했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2부장을 하지 않았다면 주식을 그 정도의 고가에 팔 수 있었을까.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직이 굳건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정의에 대한 열정과 희생 때문일 것이다. 검찰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처럼 ‘임기추상(臨己秋霜) 대인춘풍(對人春風)’ 말이다.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리처럼 엄하게 하고, 상대방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해라.’ 진 본부장의 120억 주식 대박은 ‘사건’이다. 향긋한 봄 내음이 콧잔등에 내려 앉는 계절,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선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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