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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72시간 대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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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균
JTBC 경제산업부문 기자

‘노트북 교체 대상자입니다. 자료 백업하시고 정보도움방에서 교체하시기 바랍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문자가 내게도 온 건 지난달 말이었다. 날아갈 듯 기뻤다. 언젠가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입사와 동시에 지급받았던 노트북은 5년째가 되니 고화질 동영상은커녕 인터넷 금융거래도 버벅댔다. 나보다 1년 먼저 노트북을 바꾼 동기들에 대한 부러움은 어느새 역전되어 있었다. 최신형 노트북으로는 괜히 기사도 더 잘 써지는 느낌이었다. 키보드가 너무 인체공학적이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더 빨리 타이핑해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전자기기 덕후다. 중학생 때부터 용산 전자상가를 돌며 그래픽카드를 골랐다. 결혼 전까지는 최신형 태블릿 사는 게 취미였다. 업무용 노트북이 바뀌니 집에서 쓰던 3년 된 컴퓨터가 고물처럼 보였다. 최신 부품들의 성능을 비교해가며 지갑 사정과 타협해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최신 게임을 위한 고성능? 문서작업 전용의 무소음? 아니면 저전력? 결론에 도달한 건 3일 만이었다. 예산 부족으로 온라인몰 장바구니에 담겼던 부품들과는 다음을 기약했다.

지난주 스마트폰을 바꾸면서도 과정은 비슷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릿속에서 삼성과 LG·애플의 3파전이 반복됐다. 엣지스크린이냐 배터리 교체냐, 또는 FBI에도 협조하지 않는 보안이냐. 왜 모든 것을 다 갖춘 스마트폰은 만들지 않는 건지. 고민 끝에 대리점에 들어가 한참이나 이 폰 저 폰을 손에 쥐어보고 나서야 맘에 드는 모델을 골랐다. 요금제와 부가서비스만 수십 분 걸려 결정한 건 당연한 이야기다.

새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덧 총선이다. 정치는 전자기기의 반만큼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정알못’(정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빨간색·파란색·초록색·노란색인 건 확실히 안다.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몇몇 인물들도 눈에 익숙하다. 딱 거기까지다. 기자라는 직업이 민망할 정도로 각 당이 내놓은 정책들의 차이점이나 후보들의 공약은 모른다. 매일 출퇴근하며 보는데도 내 지역구 출마자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컴퓨터 부품은 생산 시기까지 따져보면서, 투표소에 들어가기 전 제대로 고민해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꼭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친구는 오히려 뭘 그런 것까지 고민하느냐며 타박한다. 덜 싫어하는 당 출마자들만 찍으면 된다나. 선거하러 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 신문 1면에 실린 설현의 투표 독려 기사에 두 번째로 호감이 많이 찍힌 댓글, “그놈이 그놈인데 설현이 자꾸 투표하래서 안 할 수가 없네…”다. 이번만큼은 나도 좀 고민을 해볼 생각이다. 컴퓨터, 자동차, 명품 가방 살 때 고르는 정성의 일부라도 들이면, 더 좋은 우리의 대표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손광균 JTBC 경제산업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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