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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익적 에너지정책과 전력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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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부문은 구조개혁이 늦어지면서 저유가 상황에서도 ‘시대적 책무’ 수행이 힘든 형편이다. 우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에 어려움이 많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 37% 감축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가스의 87%를 배출하는 에너지 부문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그 책임 완수를 위해 필요한 청정·신재생에너지 도입 등 저탄소 패러다임 구축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구조개편 차원을 넘어 수급 구조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더욱이 우리의 대외경쟁력이 아직 중화학, 대형 조립가공 등 에너지 다소비산업에 집중돼 있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의 대량 감축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또 석유·가스, 민간 발전 등 여타 에너지 부문은 저유가, 해외 투자 실패 등으로 투자 여력이 적다. 이에 전력 부문(한전)이 산업 부문과 여타 에너지 부문이 못다 한 감축 의무를 대신해야 할 상황이다. 한전은 2020년 파리협정 발효 후 매년 10조원 이상을 부담해 전체 온실가스 감축의 절반쯤(산업 부문의 2.5배)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온실가스 감축보다 더 중요한 에너지 부문의 공공책임은 제4차 산업혁명 기반 구축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지능 사회’를 통한 부가가치 대량 창출과 공유가치 위주의 새로운 문명체계다. 지식정보-에너지망(Grid) 완전통합에서 시작한 경제-사회 융·복합 패러다임이 보편화될 것이다. 따라서 정보-에너지기술 결합이라는 3차 산업혁명의 확대 적용이 4차 산업혁명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3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미흡해 4차 산업혁명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 물론 최근 전기차 등 신에너지산업을 3차 산업혁명 성공 사례로 추진하고 있으나 국가 혁신체계에 큰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에너지 수급체계의 인터넷화를 통한 궁극(killer) 비즈니스 플랫폼 구축과 같은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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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장기투자 선행 기간과 고도의 자본 집적도가 요구되는 에너지산업의 한계 극복은 필수적이다. 에너지산업은 시장경제 논리를 따르지만 그 수요는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공공재(公共財) 성격이 강하다. 무릇 시장기능과 공공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라는 이중의 위험을 내포한다. 가격기능이 자원 배분 효율화를 이루지 못하고 독과점 혁신 부족, 주기적인 수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란 공기업이 에너지 부문 해결 과제의 주축을 담당할 수 있을까.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유가 하락으로 적자경영 탈피 시점에 단발성 불로(Winfall)소득인 본사매각대금(10조5000억원) 유입에 의해 지난해 11조3000억원(연결 기준) 규모의 흑자가 나 한전 투자 능력에 대한 ‘과잉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전의 이익 중 매각대금을 제외한 순수영업이익은 3조8000억원이다. 그리고 2조원 규모의 고율배당(주당 3100원)을 실시했다. 배당에 인색하다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조치다. 여기에다 한전은 이미 언급한 온실가스 감축 외에도 신에너지산업(전기차·전력 저장 등) 육성과 다양한 정책비용(신재생에너지 의무 구입, 배출권 거래, 지역 보조 등)으로 향후 15년간 100조원 이상 추가 투자해야 한다.

필자는 올해 국제 평균유가가 배럴당 60 달러 이상에 이르면 원전의 사회 수용성이 대폭 제고되지 않는 한 한전의 공익투자는 부채 증가로 귀결될 소지가 크다고 본다. 이를 막는 길은 국민들이 전력 소비 편익의 일부를 희생하는 사회적 합의 도출뿐이다. 하지만 이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전력요금 조정 때마다 이를 입증하고 설득하는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산업의 에너지비용은 대략 원가의 3% 이내이지만 일부 산업과 서민 가계의 경우 더 높다.

따라서 전력요금을 무차별로 인하하자는 주장에 앞서 산업용 전력가격의 경우 업종별·규모별로 적정 가격수준을 차별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 또 전력기금 등 준조세 부담도 완화해야 한다. 가계의 경우 복잡한 누진요금제를 단순화하고 전력요금이 가처분소득의 일정 부분(예: 10%)을 초과하는 경우 과감한 감면 조치가 요구된다. 또한 스마트계량기의 완전 보급을 통해 소비자 전력소비량과 편익 창출 수준을 함께 파악하고 요금 조정에 반영해야 한다. 결국 공급 원가 회수를 위한 가격정책에서 개별소비자편익 보장 가격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 한전은 2030년 탄소 배출 1억t 절감, 신에너지산업 매출 10조원대 달성, 과감한 해외 전력시장 개척과 같은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한 창조적 경영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책임과 권한을 보장하는 지주회사체제로의 구조개혁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한전은 전력 안정 공급을 위한 정부의 대행자 수준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전력 판매에 앞서 소비자의 신뢰부터 얻고,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먹거리를 스스로 창출하는 공익기관으로 변신해야 한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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