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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강봉균의 돈 안 쓰는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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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공약은 돈 쓰는 것인 줄만 안다. 예산만 끌어오면 다 공약인 줄 안다. 이번 4·13 총선에서도 그런 얘기 하고 다니는 후보가 많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최근 동료 후보 행사장에서 “제가 비록 경제부총리를 관뒀지만 지금도 내가 임명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 우리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전관예우를 발휘해 확실히 예산을 내려보내겠다”고 말했다. 국고 낭비를 막고 국민 경제를 일으키라고 재정경제부 장관에 내보냈더니 실컷 자기 사람만 심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공정사회의 적인 전관예우를 저렇게 대놓고 해보이겠다고 하니 과연 친박 권력의 실세요, 차기 당권 주자다운 거침없는 언변이다.

친박실세가 마치 나라 곳간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새누리당에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나타났다. 그는 집권당의 권력 지도를 바꿀 수 있는 정치 실력자가 아니다. 하지만 집권당의 권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예지자다. 강봉균은 선대위원장에 취임하기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 공약안을 쭉 살펴봤는데 전부 돈이 들어가는 것들뿐이다. 이렇게 총선을 치르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큰 선거를 치른 뒤 경제가 거덜나는 것을 내가 바로잡겠다.”

실제 변화가 있었다. 김우철(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발표(건전재정포럼 정책토론회)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내년부터 4년간 주요 공약 집행에 4조4000억원의 예산을 쓰기로 했다.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의 소요 재원은 60조원이었다. 새누리의 15배다. 더민주는 이와 별도로 국민연금에서 매년 10조원씩 10년간 총 100조원을 빼 쓰겠다고 한다. 어린이집과 공공임대주택 확충 같은 공공 인프라 건설용이란다. 세금으로 충당할 일을 국민 개개인의 적립금에서 꺼내 쓰겠다는 뜻이다.

2012년 19대 공약 발표 때 새누리당이 4년간 투입하겠다고 잡았던 예산은 89조원이었다. 과거 새누리당이나 지금 더민주와 비교하면 20대 총선에서 건전재정을 지키려는 강봉균의 집념은 특별하다. 그는 마치 ‘돈을 안 쓰겠다는 것도 공약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는 듯하다. 전화로 “돈 안 쓰는 공약도 공약이냐”고 물어봤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당은 승리할지 모르지만 나라가 망하면 어쩔 건가.”

-선대위원장이 당의 승리를 얘기해야 하지 않나.

“돈을 퍼붓겠다는 약속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애국심과 진심이 중요하다. 큰 지도자는 나라의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겠다는 얘기는 그만해도 된다. 국민에게 희생과 자제를 요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강봉균은 유권자에게 표를 구걸하는 선대위원장이 아니다. 당이 제시하는 비례대표 자리도 거절했다. 딱 20일만 선거일을 봐주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건전 재정’ ‘반(反)포퓰리즘’ ‘구조조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신을 퍼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강봉균이 집권당에서 벌이는 선대위원장 실험은 그가 야당 출신의 이방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3선 의원이던 강봉균은 4년 전 한명숙 대표의 민주통합당 공천 심사에서 운동권적 정체성이 흐릿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강봉균은 그보다 훨씬 전인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을 지냈다.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을 때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신념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체험했다. 대우그룹 해체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재벌 신화는 종지부를 찍었다. 거기엔 강봉균식 ‘관료적 정의’도 빛을 발했다.

국회는 국가 재정의 최종 수호자다. 포퓰리즘 정치 때문에 국고가 바닥나고 빚더미에 올라 앉은 나라, 달콤했던 복지의 추억이 순식간에 사라진 3류 국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나. 강봉균의 돈 안 쓰는 공약이 재정 수호자로서 정치권의 의무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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