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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800년 전 지은 원형극장서 지금도 공연 … 로마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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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에 지어진 아스펜도스의 고대 원형극장. 오늘날에도 본래 기능 그대로 오페라와 발레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터키 안탈리아의 그리스·로마시대 유적 탐방

터키 안탈리아(Antalya) 여행은 그리스·로마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다. 안탈리아 지방이 1500년 가까이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지만, 오스만 제국의 문화 포용정책도 무시할 수 없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은 터키에 남아 있는 기독교인에게 “오스만 땅에 사는 사람의 재산과 소유물을 모두 너희 것으로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슬람 제국에 세금만 내면 기독교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이 정책 덕분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대 유적이 오늘날 안탈리아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사용되는 고대 원형극장

안탈리아 여행은 고대 유적 탐방의 연속이었다. 주도(州都) 안탈리아 시를 기점으로 페르게(Perge)·아스펜도스(Aspendos)·미라(Myra)·라오디케이아(Laodikeia)·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등 내륙의 고대 도시 5곳을 돌아다녔는데 여행 주제가 모두 고대 유적 탐방이었다.

안탈리아 지방의 고대 도시는 이름과 크기만 다를 뿐 다 비슷비슷한 모습이었다. 아고라(광장)·원형극장·아크로폴리스(언덕)·신전·목욕탕·교회 등 그리스·로마 시대의 주요 건축물이 공통으로 다 있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문외한인 동양인의 눈에는 솔직히 그 도시가 그 도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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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데의 원형극장



그런데 이 심드렁한 여행자의 눈을 확 뜨게 한 유적이 있었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이었다. 서기 2세기에 지었다는 이 극장은 현재 터키에 있는 수많은 로마 시대 원형극장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적이라고 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1만 5000석 규모의 대형 극장이 정말 원형 그대로 유지돼 있었다. 관람석의 대리석 의자 몇 개가 교체된 흔적 말고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이때 가이드가 충격적인 설명을 해줬다. 1800년 이상 묵은 이 극장이 아직도 활용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도 이 극장에서 오페라와 콘서트, 발레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1800년이 넘은 유적을 관광객이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 유적이 원래 기능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은 믿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만지지 마시오’ ‘들어가지 마시오’ 따위의 경고문이 꼬박꼬박 붙어있는 우리 유적지를 떠올리니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료를 뒤져 보니 1994년부터 매년 9월 이곳에서는 ‘아스펜도스 국제 오페라·발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우리 국립오페라단도 이 곳에서 공연을 했다. 음향시설을 설치하지도 않았는데, 연기자의 목소리가 1만 5000개 객석 구석구석까지 전달된다고 했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무대에 올라서서 객석 맨 꼭대기에 있는 일행의 이름을 불렀다. 노래 부를 때 정도의 힘만 주고 불렀는데, 일행이 손을 흔들며 응답했다. 로마인의 건축술에 새삼 놀랐다.




세기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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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리 첨탑(오른쪽)과 시계탑은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모습이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고대 도시 시데(Side)는 안탈리아의 여느 고대 도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있어야 할 유적은 다 있었지만, 그래서 시데의 여행 주제도 고대 유적 탐방이었지만 짙푸른 지중해가 주는 청량함이 도시에 다른 색깔을 입혔다.

시데는 기원전 7세기 건설된 도시다. 한때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 열렸을 만큼 번창했지만,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가 점령하면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서기 10세기에는 큰 화재가 있었고, 남은 유적도 14세기 일어난 대지진으로 대부분 무너졌다. 그런데도 시데에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안탈리아 지방에 있는 고대 도시 중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데는 3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인 해안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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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굴을 파고 만든 동굴 무덤. 고대 도시 미라에 있다.

시데는 그리스어로 ‘석류’를 뜻한다. 시데가 들어앉은 해안 지형이 석류를 닮았기 때문이다. 시데 초입의 모습은 석류 껍질처럼 ‘맛’이 없었다. 절반쯤 파괴된 원형극장, 대리석 기둥만 남은 신전 등 고대 유적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야 석류 알갱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듯이 ‘시데의 알갱이’도 도시 깊숙이 숨어 있었다.

도시를 가로질러 지중해 연안에 다다르자 기둥 5개와 벽면 일부만 남은 폐허가 보였다. 시데의 알갱이 ‘아폴로 신전’이었다. 지금은 폐허의 모습이지만 이 신전에서 세기의 사랑이 이루어졌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BC 69∼BC 30)와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BC 81∼BC 30)의 러브 스토리 말이다. 석양이 지는 이 신전 앞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고 클레오파트라에 반한 안토니우스는 결국 로마를 배신하고

클레오파트라의 품에 안겼다. 널브러진 신전의 잔해에 걸터앉아 아폴로 신전을, 아니 신전 뒤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바라봤다. 가이드의 설명처럼 안탈리아에서 만난 유적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가 유혹을 했어도 안토니우스가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그런 절경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지만 말이다.



이슬람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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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통과했다는 아치 형태의 문. 2세기 건축물이다.



아무리 안탈리아라고 해도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만 보고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래도 터키는 11세기부터 천 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온 나라 아닌가. 안탈리아의 이슬람 문화를 느끼고 싶어 안탈리아 시내의 올드시티로 향했다. 구시가지는 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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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아탈로스 2세 동상. 안탈리아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낡은 거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동상이었다.

“동상의 주인공은 로마 황제 아탈로스(Attalos) 2세입니다. 기원전 2세기 아탈로스 2세의 명에 따라 지중해에 항구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가 바로 안탈리아입니다. 안탈리아라는 지명은 로마 황제의 이름에서 비롯됐습니다.”

동상을 지나서 5분쯤 걸어가니 이번에는 대리석으로 된 아치 문이 나왔다. “서기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안탈리아에 왔을 때 통과했던 문입니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이것도 로마 시대의 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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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리아 구시가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펫 가게들.



하드리안 게이트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이슬람 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서너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에 터키 전통 장식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길바닥에 깔린 대리석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반질반질했다. 가게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삭스’라고 불리는 화려한 장식의 터키 전통 꽃병을 비롯해 큘륙(재떨이), 단소즈 크야페테(전통의상) 등 희한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손으로 짠 카펫을 파는 가게가 많았고, ‘악마의 눈’이라는 뜻의 부적 ‘나자르본주우’를 파는 상점도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내다 파는 서울의 인사동 골목이 떠올랐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이블리 첨탑(Yivli Minare)과 시계탑이 나타났다. 인터넷에서 안탈리아를 검색하면 대표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38m 높이의 첨탑은 13세기에 세운 것이라고 했다. 약 20m 높이의 시계탑 옆에 낮은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보였다. 원래는 교회였는데 13세기부터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레그넘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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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를 빠져나와 전망대 카페에 앉았다.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서 안탈리아 구시가지를 바라봤다. 지중해와 어우러진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다른 문화와 종교를 끌어안은 오스만 제국의 포용정책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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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우리나라에서 터키 안탈리아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터키항공(turkishairlines.com)이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주 11회 운항한다. 월∼수요일은 하루 한차례, 목∼일요일은 하루 두 차례 출발한다. 이스탄불에서 안탈리아까지는 터키항공이 하루 15번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반.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늦다. 터키 화폐 단위는 리라(TRY)다. 1리라는 3월 하순 현재 약 410원이다. 유로화도 통용된다. 안탈리아는 지중해에 접해 있어 연중 포근하다. 지난해 G20(세계 주요 20개국 정상 모임) 개최지였던 벨렉(Belek)은 안탈리아 주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세계적인 럭셔리 리조트가 몰려 있는데, 그 중에서 ‘레그넘 카리야 골프 앤드 스파 리조트(Regnumhotels.com)’가 G20의 메인 호텔로 사용됐다. 워터파크를 비롯해 골프 코스, 스파, 프라이빗 해변 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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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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