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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싼 물건만 찾는 소비가 합리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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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통계청장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이 최저임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전 세계적으로 이론적, 실증적으로 논쟁거리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의 상승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로 아파트 경비원이 언급된다. 8여 년 전까지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제도의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법정 최저임금의 70%가 보장되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증가해 지난해에 최저임금의 100%가 적용됐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경비원분들에게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전자경비시스템의 도입으로 인력을 대체하여 경비원들의 고용감소가 관찰되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런 추세에 반하는 움직임들이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고, 전자보안시스템의 도입보다는 기존의 경비원을 계속 고용하는 사례가 여러 건 발생한 것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따뜻한 정과 유대가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다시 고용된 경비원들이 자발적인 노력으로 비용을 절감한다면 최저임금상승에 따른 부담도 만회하는 선순환 구조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과 아파트 경비원 고용문제를 생각하다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가 쓴 『슈퍼 자본주의』란 책이다. 슈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강해져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을 말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문제, 반복되는 금융위기 등의 원인을 세계적인 거대기업, 탐욕적인 금융회사, 부패한 정치권에 돌리는 방식으로 약자를 대변하면서 공감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는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들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에게 최선의 거래를 제공하고, 투자자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행동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월마트가 지역 상권을 무너뜨리고 근로자에게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을 강요한다고 비난을 하지만, 이는 결국 낮은 가격을 찾아 월마트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므로 기업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소비자로서의 혜택에 집착하다 보니, 근로조건의 악화를 가져오게 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라이시는 슈퍼 자본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 등 민주적인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근로자들의 합당한 대우와 적절한 지위 유지를 위해 소비자와 투자자들도 자신들에게 부여된 혜택을 일부 양보하는 민주적인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골목상권을 살리고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동네상점을 애용하고 가장 싼 점포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민주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올 봄의 최저임금 결정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선순환 되도록 모두가 양보하는 마음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유경준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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