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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박근혜 정치' 어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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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YS(김영삼)의 말이 떠올랐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때문이다. YS의 대통령 퇴임 뒤인 2001년. 나는 김정원 박사(전 외교부 본부대사)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 저녁자리에 YS 부부가 참석했다. 전직 대통령은 그의 45년 정치를 회고했다. 비사가 섞였다. 그는 자신의 사주운명 얘기도 꺼냈다.

 나는 내각제 각서 파동을 물었다. 1990년 그 파동은 나의 특종기사로 시작했다. 그해 10월 각서 사본이 보도됐다. 그때 YS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당 총재는 대통령 노태우였다. 각서는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인의 내각제 약속이다. YS는 각서 존재를 부인했다. 그것은 진실 덮기다. YS는 위기에 놓였다. 그는 고향 마산으로 내려갔다. YS는 "마산 갈 때가 고비였지”라고 기억했다. 그는 문득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단의 용기… 결단해야 할 때 안 하면 정치와 정치인 모두 불행해져요.”

 정치는 불확실한 게임이다. 승패는 명분과 동정심에서 갈린다. 그 요소는 언어로 작동한다. 동정심은 아픔의 동질감이다. 역사의 전진에 동행하는 유대감이다. 한국인은 대체로 약자 편이다. 약자에다 겸손과 저항, 분투(奮鬪) 이미지가 붙으면 필승이다.

 각서 파동은 정치사의 주요 게임이다. YS 승리는 동정심 확보로 가능했다. YS의 첫 대응은 초점 이동이었다. 그는 "정권이 나를 고사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 직설은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분당을 각오했다. 그 승부수는 핍박받는 인상을 키웠다. 노태우의 민정계는 허술했다. 각서 서명의 진실게임으로 몰고 가지 못했다. 민정계는 봉합의 무승부로 나갔다. 때문에 그들의 말들은 평범했다. 상황은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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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새투쟁은 그 장면의 모방이다. 김무성은 YS를 정치적 아버지로 삼는다. 새누리당 공천 결말은 김무성의 역전극이다. 김무성은 부산 영도다리에 섰다. 김무성은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했다. 그 다짐은 26년 전 YS의 말이다. 대구 동을은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이다. 김무성의 판정승 덕분이다. 그것은 박근혜 정치 어젠다의 좌절을 의미한다. 그 어젠다는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서 시작했다. 응징 대상은 유승민이다. 마무리는 황당하다. 유승민의 귀환은 쉬워졌다.

 박근혜 어젠다는 당의 재구성이다. 새누리당의 재정렬이다. '진실한 사람들'로 바꾼다는 것이다. 대열의 자격은 대통령 철학과 신념의 공유다. 올해 초 어젠다가 실천에 옮겨졌다. 진박 감별사가 등장했다. 최경환 전 부총리가 나섰다. 그는 TK 지역을 돌았다. 그는 "의원들이 대통령을 뒷받침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박 마케팅은 엉성했다.

 선거는 심리전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다. 그의 유세 언어는 비감을 주입한다. 그의 삶의 애잔한 역정과 말은 얽힌다. 그 순간 잔잔한 동정심이 생산된다. 하지만 최경환의 말은 그렇지 못했다. 그의 발언은 윽박지르기로 들렸다. "TK 의원들이 왜 대통령을 돕지 않느냐”는 야단치기로 비춰졌다. 그런 인상은 반감을 유발한다. 역효과는 서울부터 나타났다. 주요 친박들이 경선에서 떨어졌다.

 공천위원장 이한구는 "국회의원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신념의 투사는 정교해야 한다. 단호함만으론 안 된다. 고뇌의 겸허함이 곁들여져야 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독선의 질주였다. 그에게 완장 냄새가 났다. 완장의 평판은 정치판에서 독소다. 호가호위의 으스댐은 경멸을 낳는다.

 이한구의 목표는 유승민 퇴출이었다. 유승민의 반격 수단은 언어다. 그의 말은 헌법·정의다. 그 단어는 지루한 듯하다. 하지만 재생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한국적 정서는 실용보다 명분이다. 이한구가 꺼낸 단어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새누리당에 익숙하지 않다. 그 말의 느낌은 배제와 분열이다. 헌법이란 통합적 어휘에 밀린다. 유승민은 언어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한구는 때를 놓쳤다. 그는 유승민의 탈당을 유도했다. 그것은 비겁했다. 국민적 야유를 받았다. 그것은 김무성의 기습을 가능하게 했다. 결행할 때 미루면 불행해진다. YS의 말은 명쾌하다. 박근혜 어젠다는 한심하게 마무리됐다. 그것은 대통령 사람들의 기량 부족 때문이다. 친박그룹은 정치 작동 요소에 아직도 둔감하다. 아마추어적 미숙함은 정권에 상처를 입혔다. 박근혜 권력은 얕잡아 보이게 됐다.

 김무성은 행동반경을 축소한다. 그는 박 대통령과 맞서려 하지 않는다. 휴전은 시한부다. 대회전은 4·13 총선 이후다. 총선 후 새로운 진박들이 국회에 진입한다. 하지만 이들이 대통령의 남은 국정을 제대로 뒷받침할까.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전투력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고참의 선수(選數) 위주다. 초선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20대 국회 임기 중에 대선이 있다. 그들 내부의 줄서기 혼선도 불가피하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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