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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도쿄서 만나는 우리 문화재 300여 점, 조선 백자에 반한 야나기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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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직금니장식흑칠함(왼쪽)과 백자 청화초화문각병.


여기 작은 백자가 있다. 높이 12.8㎝, 팔각 모양의 청화초화문각병(靑華草花文角甁)이다. 단출하면서도 은은한 자태가 일품이다. 이 백자 하나가 한 사람의 운명을 돌려놓았다.

일본 민예운동 창시자로 불리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1914년 이 도자기를 만난 이후 조선의 공예품에 흠뻑 빠져들었다. 1916년 이후 한국을 21차례 방문했다. 무명의 한국 장인이 만든 기물(器物)에 매료된 그는 서양이나 일본과 구분되는 한국의 미에 천착했다. 1936년 일본 도쿄에 일본민예관도 열었다.

 다음달 2일 도쿄에서 민예관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이 개막한다. 6월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자리에는 한국문화재 300여 점이 나온다. 야나기가 수집한 1600여 점 중 대표작을 골랐다.

특히 민예관에 있는 한국문화재 1600점 전체를 우리가 조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 지난 3년간 작업했다. 재단 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씨 등을 현지에 보내 목칠공예품 10여 점을 보존처리하기도 했다.

뜻밖의 성과도 있었다. 일본 측이 몰랐던 고려시대 ‘초직금니장식흑칠함(草織金泥裝飾黑漆?)’의 가치를 새롭게 찾아냈다. 섬세·화려한 고려 공예를 대변하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조선시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야나기가 한국을 처음 찾은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불국사·석굴암 등에 감화돼 한국 미술에 뛰어든 그는 “조선의 물건에는 외설스럽거나 추한 부분이 없다. 죄가 많아 지옥에 갈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예찬했다. 일제의 한국인 탄압, 광화문 철거 움직임 등에도 날 선 비판을 했다.

한국미의 특질을 ‘비애(悲哀)’로 파악한 것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20세기 한국미술사에 미친 그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역사·영토 문제로 갈등하는 한국과 일본을 문화로 잇는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 사회에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화재 환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실태 파악이 우선일 것이다. 해외 문화재 연구는 그 자체가 발굴일 수도 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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