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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도 포데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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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지난주 끝난 집권당의 공천 막장드라마를 본 사람은 생명력을 다한 한국 정당정치의 공동 목격자가 됐다. 권력자의 공천 아닌 사천(私薦), 주인만 바라보는 마름들의 완장질, 끝 모르는 정치보복을 장기로 하는 정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표를 내기란 불가능해졌음이 명백해졌다. 대(代)를 거듭할수록 더 초식이 노골화하고 파렴치해지며 독해져 가는 걸 보면 앞으로 나아질 조그마한 희망도 찾기 어렵다.

야당은 더 한심하다. 도무지 수권(受權) 의지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스스로 한계를 느껴 체질 개선한다고 영입한 대표를 끌어내릴 시기만 저울질한다. 당겼다 놓은 고무줄처럼 총선만 끝나면 ‘도돌이 민주당’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제1야당의 ‘권력’이 충분히 즐길 만큼 막강한 까닭이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집권세력을 향해 “실정(失政)”과 “무능”만 외치면 그만이다. 그래도 일정한 지지층이 뒤를 받친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발목 잡는다”고 공격하면 된다. 이 또한 고정 지지층의 지원을 받는다. 소모적 정쟁만 반복하는 거대 양당의 과점적 지배체제가 갈수록 견고해지는 악순환의 이유다. 이를 깨겠다 큰소리쳤던 제3당도 외국어 공부하며 욕 먼저 배우는 학생 같다. 어떻게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양당 체제의 캐스팅보트를 쥐는 게 지상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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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들에게 국가의 미래, 덜 거창하지만 더 현실적으로 내 미래를 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 받는다. 정치혐오가 커지고 정치적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대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순리다. 우리 정당들에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게 분명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정당들이 존재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생명 연장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먼저 대안을 제시해 정당들에 달라지거나 사라지거나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참고할 만한 대안 실험이 스페인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은 여러모로 한국과 닮은 나라다. 우선 성마르고 흥분 잘하는 국민 기질이 닮았고, 경제 규모(지난해 GDP 한국 11위, 스페인 14위)나 인구(한국 약 5100만 명, 스페인 약 4800만 명)도 비슷하다. 오랜 독재정권을 겪은 뒤 양당제 민주주의 체제를 이끌어온 것도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나라 정치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창당한 지 2년도 안 된 대안정당 ‘포데모스’가 지난해 총선에서 69석을 얻어 단숨에 3대 정당에 뛰어올랐다. 지난 30여 년간 스페인을 좌지우지해온 우파 국민당과 좌파 사회노동당은 전체 350석 중 123석과 90석으로 추락했다.

스페인어로 ‘우린 할 수 있다’는 뜻인 포데모스(podemos)의 기초조직 단위는 지역구가 아니라 ‘시르쿨로스(서클)’라는 회비도 없는 오프라인 대중모임이다. 지역단위가 중심이지만 보육이나 농업, 또는 음악 같은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조직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서클 활동인 셈이다. 30~40명씩 모이기도 하고 300명이 넘는 곳도 있다. 현재 900개가 넘으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시르쿨로스들을 하나의 정치결사로 묶는 것은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다. 정책토론과 의견수렴은 물론 후보나 당 집행부 선출 역시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당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포데모스의 5대 목표인 공교육 개선, 부패 근절, 주거권 보장, 공공의료 개선, 가계부채 조정도 그렇게 채택됐다.

당 운영 자금도 시민 모금 방식인 크라우드 펀딩으로 충당한다. 온라인 기반인 만큼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창당 100일 만에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데모스는 다른 정당이 200만 유로 넘게 쓰는 선거비용을 10만 유로로 줄였다. 그러고도 8%의 득표율을 올려 스페인에 할당된 54석 중 5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표당 겨우 0.12유로(약 150원)가 든 셈이었다.

당 대회를 치를 때도 2만3000유로(약 3000만원)면 충분했다. 소속 의원들의 세비 역시 최저임금의 3~4배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당 사업 비용에 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개별 모금도 진행한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가 바스크 분리주의 테러단체 ETA와 연관돼 있다는 국민당 고발에 대응하기 위해 3시간 만에 1만6000유로가 모이기도 했다. 수입지출 내역은 온라인 회계장부에 투명하게 공개된다.

27% 실업률로 대변되는 경제위기가 가장 큰 이유지만 이 같은 투명한 의사결정과 예산집행 과정으로 국민의 정치혐오를 극복한 것이 포데모스의 성공 원동력이다. 대학교수 출신인 이글레시아스 대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정당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참여한다”고 단언한다. 포데모스가 풀뿌리 여론을 수렴해 정책결정으로 이끌어내는 미디어 정당을 자처한 것이다.

포데모스의 선거 구호는 “당신이 희망을 가지고 투표한 마지막은 언제인가?”다. 이 구호는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그들이 포데모스 지지자가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투표한 마지막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런 변혁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도 포데모스(할 수 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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