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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테헤란로의 새 주인은 누구인가

테헤란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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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은 지난 24일 오후 테헤란로 선릉역 근처 홈플러스 사옥에서 바라본 테헤란로입니다. 사진 오른쪽은 사무실 창문에 비친 테헤란로의 모습이고요. 둘을 한 화면에 담으니 마치 변화의 기로에 선 테헤란로를 상징하는 테칼코마니 작품 같습니다. 테헤란로는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1990년대~2000년대 수많은 벤처기업을 배출한 IT산업의 요람이었던 이곳에는 대기업들까지 진출하며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 지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요즘의 테헤란로는 어떤 모습일까요. 테헤란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알아봤습니다.


삼성전자·넥슨·엔씨 떠났지만 … 여전히 매력적인 벤처 생태계
 
1984년 테헤란로를 따라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순환선이 건설된 것이 시작이었다. 테헤란로가 강남뿐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지구로 자리 잡게 된 기반이 이때 마련됐다. 벤처 붐을 거쳐 2008년에는 테헤란로 서쪽 끝 강남역 인근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입주하며 테헤란로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이곳에 있던 삼성 직원 대부분이 판교·수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테헤란로 일대에 있던 대기업들도 최근 4~5년 새 강북이나 신도시로 이전했다. 벤처 기업 일부는 구로디지털밸리, 판교창조경제밸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테헤란로가 이제 새로운 기능을 찾아야 할 때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노후 건물, 높은 임대료에 교통 이점도 줄어
GS건설 일부, 한국MS, 네오위즈 등 떠나
대기업 떠난 자리에 보험·금융사가 들어서


돈 줄 되는 벤처캐피탈 절반이 테헤란로에
스타트업 지원 기관도 잇따라 문 열어
“IT·금융 결합한 핀테크, 새 성장동력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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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이전이 한창인 삼성그룹 서초동 사옥에서 사무실 집기를 옮겨나가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6시 서초동 삼성 사옥. 정장이나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삼성 직원들이 삼삼오오 퇴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오후 7시가 되자 발길이 아예 끊기며 로비는 텅 비었다. 한때 2만여 명에 달하던 서초동 삼성 사옥의 직원 수는 현재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상태다. 지난해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 5000여 명이 경기도 판교로, 삼성전자 디자인센터 직원 약 2500명은 서울 우면동 ‘삼성 서울 R&D 캠퍼스’로 옮겼다. 지난 18~20일엔 삼성전자 경영지원 인력 400여 명까지 수원 삼성디지털시티 본사로 이전했다. 이곳에는 삼성생명 등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올 하반기부터 차례로 옮겨올 예정이다. 근처 커피전문점 직원 김모(25)씨는 “삼성에 직원들이 많았던 때엔 오후 내내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테헤란로 선릉역 근처 홈플러스 본사 사옥은 이사 준비로 분주했다. 건물 곳곳에는 서류와 책이 가득 담긴 주머니와 박스가 쌓여 있었고, 직원들은 각자의 서류를 정리하고 개인 사무용품을 챙기느라 바빴다. 1997년부터 19년 동안 이곳에 있던 홈플러스 본사는 다음 달 초 강서구 등촌동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모(33) 대리는 “그동안 회사랑 가까운 역삼역에서 자취했는데 막상 강서로 옮긴다니 기분이 이상하다”며 “멋진 레스토랑이 많은 강남과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붐비지 않아 훨씬 여유로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건물에 새로 들어오는 건 현재 삼성동 한국전력 건물에 임시 입주해 있는 현대글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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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서초동 사옥(왼쪽 B동, 오른쪽 C동) 사잇길.


 
대기업, 구도심·수도권 새 사옥으로 이주

강남역에서부터 삼성역까지를 잇는 4km 길이의 왕복 10차선 도로인 테헤란로. 한때 첨단 IT산업을 비롯해 금융·건설·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강남을 대표하는 오피스타운이 바로 테헤란로였다.

하지만 최근 테헤란로의 모습은 과거와 달라졌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대기업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며 여기 처음 둥지를 틀었던 IT 기업도 테헤란로를 떠났다.

테헤란로를 떠난 대기업 일부는 종로구나 중구 같은 서울 구도심에 새로 들어선 고층 빌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령 역삼역 근처 GS강남타워에 있던 GS건설의 플랜트본부와 발전환경사업본부는 2014년 종로구 청진동에 새로 들어선 ‘그랑서울’ 빌딩으로 옮겼다. 역삼동에 있던 한국마이크로소프트도 2013년 말 광화문에 새로 지어진 빌딩 ‘더케이트윈타워’로 사옥을 옮겼다.

사세를 키운 게임업체들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분당이나 판교 등 신도시에 새로 사옥을 짓고 이사했다. 실제로 2010년 삼성동 아셈타워에 있던 네오위즈가 분당 신사옥으로 옮겨갔으며, 넥슨코리아와 엔씨소프트는 2013년 판교에 새 사옥을 짓고 테헤란로를 떠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기업들이 넓고 쾌적한 수도권 사옥을 마련하고 협력업체도 함께 입주해 집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판교 테크노밸리,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마곡업무지구, 송도국제신도시 등 다양한 업무지구가 형성되면서 여러 가지 기업 유인책을 제시하는 것도 이유다. 실제 신도시로 옮겨간 이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지난해 테헤란로에서 판교로 옮겨간 이모(33)씨는 “처음엔 강남에서 일하다가 경기도 신도시로 간다는 게 불만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여유 있고 쾌적한 근무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에 들어선 신규 빌딩 역시 파격적인 조건과 각종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좁고 노후한 건물에서 높은 임대료를 감수할 이유가 없어진 기업들이 속속 도심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동열 어반에셋 이사는 “강남의 주요 건물 중 오래된 것은 완공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반면 도심의 신규 빌딩은 렌트 프리(일정 기간 임대료 무상 계약)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이 좋다는 테헤란로의 지리적 이점마저 약해졌다. 2011년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판교·분당 지역에서 강남으로 접근하기가 쉬워졌고, 지난해 3월 9호선 언주역·선정릉역·삼성중앙역·봉은사역이 추가 개통되면서 주변 중소형 빌딩 공급이 늘었다.

 
뜨는 강남·삼성역, 조용한 역삼·선릉역
 
역삼역과 선릉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던 테헤란로 오피스타운은 그 무게중심이 서쪽 끝인 강남역·강남대로 일대와 동쪽 끝인 삼성역·영동대로 인근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강남대로는 신사역·논현역·강남역·양재역 등 지하철역과 가깝고, 인근에 광역버스 정류장이 있는 데다 지하철 9호선 연장으로 경기권에서 오가기 편리하다. 앞으로 강남역과 신사역을 잇는 신분당선도 추가 개통 예정이다. 남효준 교보리얼코 파트장은 “최근 강남대로 지역에 빌딩 매매 및 임차 계약이 집중되고 있다”며 “대형빌딩 공급이 없는 지역이라 임대료도 올라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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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매입한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삼성동 한전 부지에 현대차 본사가 들어오고 나면 삼성역과 영동대로는 더욱 발달할 전망이다. 한전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에 현대차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 공사를 시작한다. 센터는 연면적 약 93만㎡의 105층짜리 메인 건물과 6개 동으로 구성된다. 현대차 계열사와 협력업체가 입주하고 전시·컨벤션홀, 공연장, 호텔, 쇼핑몰이 들어선다. 서울과 경기도를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교통망도 이 지역에서 교차하게 된다. 함 센터장은 “서울시가 MICE(전시·컨벤션) 산업에 집중하고 있어 추후 테헤란로의 중심이 삼성역 주변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테헤란로의 오피스 빌딩은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3년 3분기 6.9%였던 강남권 오피스 빌딩 공실률이 2015년 4분기 11.5%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오피스 공실률은 10.2%였다.

 
“테헤란로만의 새 기능을 찾아야 할 때”
 
테헤란로가 상업지구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1980~90년대 정부 정책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84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순환선이 테헤란로를 관통하면서 여의도와 강북 도심까지 연결했고, 역세권마다 상업용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이 지역을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하고 경제·금융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95년 포스코가 테헤란로에 포스코빌딩을 세웠다.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철강 및 중공업 기업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90년대 후반부터는 IT 벤처 기업들이 테헤란로에 둥지를 틀었고,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 주도로 시작된 IT 붐은 테헤란로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테헤란로는 종로, 중구에 이어 탄생한 서울의 신도심”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예전 같지 않은 테헤란로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테헤란로만의 독자성과 장점이 상실됐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기능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 160개 팀 모인 스타트업 밸리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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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를 알리는 표지판.


테헤란로의 새로운 기능은 무엇이 될까. 일부에선 대기업으로 발전한 IT 벤처들은 테헤란로를 떠났지만 신기술 중소 벤처기업들의 요람으로서의 테헤란은 여전하다고 본다. 작지만 강한 벤처기업들이 포진해 젊은 인재들이 항상 몰린다는 주장이다.

벤처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벤처에 자금을 지원할 벤처캐피탈이 이곳에 있어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벤처캐피탈 협회에 등록된 100여 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테헤란로에 있다”며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업계 관계자나 투자자들과 교류하기 좋다”고 말했다. 역삼동에서 모바일 서베이 기업 ‘아이디인큐’를 창업한 김동호 대표는 “교통이 편리하고 판교보다 1인 가구가 거주할 만한 주택이 충분해 인력 유치가 쉽다”고 했다.

초기 벤처인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도 테헤란로 인근에 속속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선릉역 근처에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만든 스타트업 지원 기관 ‘디캠프’(D camp)가 문을 열었다. 2014년에는 아산나눔재단이 만든 창업지원공간 ‘마루180’가 역삼동에 들어섰다. 구글은 지난해 삼성역 근처에 ‘구글캠퍼스 서울’을 열고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네이버는 역삼동 메리츠 타워에 ‘D2 스타트업 팩토리’를 열었다. 신기술 개발 벤처 육성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도 테헤란로 지원에 나섰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테헤란로 일대를 ‘하이테크 스타트업 밸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5월 역삼동에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창업타운’을 열었다. 중기청은 이곳에 내년까지 160개 창업팀을 여기에 입주시킨다는 계획이다.

 
금융업체 2010년 551개→2014년 87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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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포스코사거리에 있는 KDB대우증권 역삼동 지점. 최근 이 거리에 금융사 입주가 늘었다.


한편에서는 금융업이 테헤란로의 새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떠난 서초동 삼성 사옥에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삼성의 금융계열사가 입주할 예정이라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IT 벤처 기업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상당수는 금융 회사들이다. 넥슨이 떠난 역삼동 빌딩에는 교보생명의 일부 조직이 자리를 잡았으며, 엔씨소프트가 있던 테헤란로 NC타워에는 창업투자 회사인 SBI인베스트먼트가 입주했다.

서울시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역삼동·삼성동 일대의 보험·금융업체 수는 2010년 551개에서 2014년 871개로 늘었다. 이곳에 있는 한 PB센터 관계자는 “큰손 부자 고객들이 오가기 편리하고,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광고 효과도 누린다”고 말했다. 남효준 교보리얼코 파트장 역시 “강남권에서 가장 임차 계약이 많았던 업종은 IT와 보험사”라고 말했다.

테헤란로에 포진한 스타트업이 IT와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실제로 33조원 규모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한 영국의 경우 핀테크 기업이 시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기업이 밀집한 카나리워프에 위치해 긴밀하게 협력한다. 남 교수는 “영국 정부는 런던 동부의 침체된 구도심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테크시티’(Tech-City)로 지정하고 정부 지원을 집중해 이제는 1300개 스타트업이 밀집한 지역이 됐다”며 “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김광현 디캠프 센터장은 “요즘 테헤란로에서는 대기업이 투자팀을 신설해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 지역이 주는 후광효과도 있어 벤처기업 유입은 꾸준하다”며 “대기업은 여기를 빠져나갈지 몰라도 계속 풍부해지는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 지역의 강한 동력원”이라고 말했다.


테헤란로 역사
1984년 2호선 개통돼 발전
세제 혜택으로 벤처타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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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테헤란로 삼성역 일대의 전경(왼쪽)과 1996년 7월의 강남역 사거리 전경.



1980년대-도로만 넓은 허허벌판
 
테헤란로의 역사는 강남 개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69년 지금의 한남대교인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시는 한남대교부터 경부고속도로 양재동 분기점 사이 영동지구의 도로망을 개발했다. 영동지구 계획에는 폭 50m 이상의 간선도로들, 현재의 테헤란로인 삼릉로와 영동대로, 강남대로를 내부 간선망으로 구축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전답 외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폭 50m의 도로를 건설한다는게 황당했지만, 지금 테헤란로의 교통 혼잡을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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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27일 골람 레자 닉페이 이란 테헤란 시장이 테헤란로 명명식에 참석하여 구자춘 서울시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시는 72년 이곳을 삼릉로(三陵路)라고 명명했다. 인근에 있는 선릉과 정릉에 3개 봉분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77년 6월에는 서울시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이름을 테헤란로로 바꿨다. 70년대 후반에는 경기고·휘문고 등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옮겨오면서 강남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테헤란로는 건물도 사람도 없는 도로만 넓은 지역이었다.

테헤란로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84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순환선이 테헤란로를 관통하고 역세권마다 상업용이나 사무실 입주용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강북 도심에서 공간 부족으로 고민하던 기업들이 강남으로 오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해 의류수출기업인 신성통상이 12층 건물을 짓고 입주했고 한일시멘트도 18층짜리 사옥 건립에 나섰다.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서울 도시 계획 이야기』에서 ‘지하철 2호선은 서울에 혁명과 같은 지각변동을 가져다줬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테헤란로’라고 회상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테헤란로 개발의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88년 한국종합무역센터가 삼성동에 지어졌다. 무역센터의 일부로 지어진 55층 트레이드타워는 완공 당시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호텔·인터컨티넨탈호텔이 이 지역에 들어섰다.

 
1990년대-‘닷컴신화’의 성지
 
90년대 들어 정부는 이 지역을 경제·금융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과 한양금고 등 금융기업 본점이 테헤란로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벤처타운, 정보통신(IT) 산업의 메카라는 이미지가 생긴 건 90년대 중반부터다. 이동통신업체와 PC통신·휴대전화 업체 등이 테헤란로로 몰려왔다. 한글과컴퓨터·안철수연구소 등 ‘닷컴신화’를 쓴 대표 기업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97년 벤처기업들이 많이 입주한 빌딩에는 지방세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벤처기업특별법이 제정된 영향도 컸다. 야후코리아·한국IBM 등 외국계 업체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뉴욕 못지않은 마천루로 변신

2000년대 들어서는 테헤란로의 풍경이 또 한 번 바뀌면서 마천루가 즐비한 지금의 스카이라인이 완성됐다. ‘닷컴버블’ 붕괴에서 살아남은 벤처기업들이 사세를 확장하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고, 외환위기 여파에서 벗어난 대기업들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들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대형 고층건물이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2001년 완공된 스타타워(지금의 강남파이낸스센터)를 필두로 GS강남타워, 동부금융센터, 현대산업개발 본사사옥, 메리츠타워가 세워졌다. 세련된 새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자 강북 도심이나 인근 다른 지역에 있던 기업들까지 테헤란로로 눈을 돌렸다. 대기업, 금융기업, 외국계 회사의 입주가 이어졌다. 학군이 좋고 의료·문화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도 이곳을 선호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2008년엔 삼성전자가 중구 태평로 사옥을 떠나 서초동 사옥에 입주했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공학대학원 교수는 “테헤란로는 벤처 산업의 거점 역할을 거쳐 전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오피스타운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글=박미소·김민관 기자 smile83@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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