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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클립] 젠 스타일, 차가운 모더니즘에 자연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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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의자로 유명한 조지 나카시마의 ‘라운지 암체어’.


화려함을 앞세운 19세기와 달리 20세기 모더니즘은 단순함을 추구했다. 벽은 온통 하얗게 칠하고, 내부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다 일본의 도자기와 불상이 서구에 전해지면서 모더니즘에 약간의 장식이 더해진 젠 스타일이 탄생했다. 젠(ZEN) 스타일은 ‘창백한’ 공간에 온도를 더해주고 동양을 동경하는 서양인들에게 색다른 멋으로 여겨졌다.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아 현대 건축물과 주거 공간에서 사랑받는 스타일이다. 


장식 없는 깔끔한 공간에 내추럴한 소품
흰색을 기본으로 간접 조명과 좌식 가구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유행 잘 안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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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무소 오유에이 김현희 소장이 설계한 젠스타일 집. 일본과 한국의 동양적 요소를 활용했다.


#서초구 염곡동에는 독특한 목조주택이 하나 있다. 짙은 갈색 미송나무를 건물 외벽에 둘러 얼핏 보면 일본의 고급 료칸(旅館) 같은 분위기가 난다. 정원에는 잘 다듬어진 나무 몇 그루와 가공하지 않은 돌덩어리가 조각상처럼 놓여 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고재로 된 나무로 만든 툇마루와 지하실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이 보인다. 계단 아래쪽 벽에는 나무로 만든 벽장과 도자기 작품이 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사무소 ‘오유에이’(OUA) 김현희 소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흰색이지만 곳곳에 나무 소재를 써서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게 이 집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거실 안쪽 다실 벽에는 격자무늬 창을 내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음영을 감상하기 좋다. 산의 능선과 노을 지는 풍경을 담채화처럼 녹여낸 벽지 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는 명상 공간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작품이 되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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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하얏트 광저우 스위트룸 욕실. 돌과 나무 등 자연 소재로 꾸몄다.


#2004년 서울 대치2동에 파크하얏트서울 호텔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이렇게 심심하고 밋밋한 디자인이라도 괜찮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호텔이 내·외국인 단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질리지 않고 편안해서 좋다”다. 14층에 위치한 파크 디럭스 룸의 바닥은 오크 나무로 돼 있고, 흰색 벽에서는 은은한 조명이 흘러나왔다. 벽에는 수수한 나무 프레임 액자에 무채색 사진 한두 점이 걸려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다. 욕실 벽과 바닥은 울퉁불퉁한 화강암으로 돼 있어 노천 온천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유행을 타지 않는 젠 스타일이 곳곳에 잘 녹아 있는 공간”이라는 게 호텔 측의 설명이다.

 
자연에 머무는 듯 편안한 공간 추구

젠(ZEN)은 한자로 선(禪)이라고 쓴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해서 깨달음의 경지를 얻는다는 불교 사상이다. 이 개념을 유럽에 전한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스(鈴木大拙)는 저서 『선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공간과 마음을 비워야 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젠 스타일은 이 개념을 도입했다. 장식은 최소한으로 하되, 그것도 자연 그대로의 것을 둔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어리, 붓글씨 한 점, 불상 하나 정도다. 요소가 너무 많으면 젠 스타일이라고 볼 수 없다.

건축사무소 오유에이 김현희 소장은 “젠 스타일에 특정한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공통 요소는 자연 소재를 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공하지 않은 돌이나 나무가 대표적이다. 이런 소재는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이 자연에 머무는 듯한 편안함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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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브랜드 칼한센앤선을 통해 출시한 안도 다다오의 ‘드림체어’.


젠 스타일에서 중요시하는 또 한 가지는 사람이 머무는 위치다. 선 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자연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도, 사물을 내려다봐도 안 된다. 그래서 좌식 스타일이 많다. 사물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상은 젠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흰색을 기본으로 갈색·카키색·녹색 등 자연의 색감을 주로 쓴다. 빛은 젠 스타일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창호지를 한 장 바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인들은 문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창호지 한 장, 나머지 한쪽은 두 장을 바른다. 창호지를 한 장 바른 문은 빛을 환하게 투영하고, 두 장 바른 문은 은은한 빛을 낸다.

젠 스타일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다. 그때 청담동의 고급 식당과 카페는 너도나도 젠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했다. 당시 청담사거리 ‘플라스틱’은 당시 서울에서 보기 힘든 젠 스타일 카페로 화제가 됐는데, 천장이 높은 트인 공간에 벽은 흰색으로 칠하고 테이블 사이사이 나무를 심었다.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처 대표는 “집안을 젠 스타일로 꾸미는 쉬운 방법은 벽을 하얗게 칠하고, 동양적이거나 자연 소재의 소품을 딱 하나만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장식이 화려한 집이 아니라, 발 쭉 뻗고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젠 스타일은 그에 걸맞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 집에도 젠 스타일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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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키친바흐의 ‘키친바흐7 601 햅틱오크’ 주방. 좌식 평상을 둬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샘 키친바흐의 ‘키친바흐7 601 햅틱오크’는 젠 스타일 부엌을 보여준다. 아일랜드 식탁 옆에 거대한 통나무 평상을 두고 그 위에 앉아서 식사할 수 있다. 경남 창원 풀만호텔 히노키 디럭스 룸도 젠 스타일을 응용한 공간이다. 블라인드나 커튼 대신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일반 가정집이라면 미닫이문을 별도로 주문 제작해 거실 창틀 앞에 설치하면 된다.

신사동 스시 전문점 ‘스시 마츠모토’는 커다란 나무판을 세워둔 출입구가 눈에 띄는 식당이다. 바로 그 옆에 어린 대나무를 10여 그루 심어놨다. 플로리스트 문윤주 실장은 “베란다 한쪽에 키 높은 대나무를 심어 젠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젠 스타일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는 조지 나카시마(1905~90)다.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디자이너로 서양의 실용주의와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을 결합한 젠 스타일을 추구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집에 있는 라운지 암체어가 그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청담동 가구전문점 ‘인엔’에서 조지 나카시마의 제품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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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통해 빛이 은은히 스며나오는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램프.


또 다른 대표 디자이너로는 이사무 노구치(1904~88)가 꼽힌다. 일본계 미국인 디자이너로 주로 나무·돌·종이를 활용한 디자인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50년대 일본 ‘아카리’ 조명이 있다. 일본 기푸 지역을 여행하던 중 강에 비친 고깃배의 등을 보고 디자인한 작품이라고 한다. 둥근 등에서 부드럽게 새어 나오는 불빛이 부드럽다. 독일 인테리어업체 ‘비트라’를 통해 출시한 조명으로 한남동 ‘비트라’ 매장에서 판매한다.

청담동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는 다구, 소반, 도자기 화병 등 젠 스타일 분위기 내기 좋은 소규모작품을 상설 전시·판매한다.



젠 스타일을 보여주는 국내 건축물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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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강원도 원주시에 지은 뮤지엄 산은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보여준다. 박물관을 둘러싼 거대한 인공 연못 위에 건축물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외벽은 자연석을 촘촘히 쌓아 올렸고 세로로 길게 분할한 창문이 추상화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인위적인 조형물과 장식물이 없어 공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명상하는 기분이 든다.


포도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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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중심부 서귀포시에 있는 포도호텔은 재일동포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이 지었다. 제주도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건축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포도 모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호텔 룸은 젠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천장은 서까래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뒀고, 격자무늬 미닫이문에서 빛이 부드럽게 새어 나온다. 좌식 탁자를 둬서 차를 마시기 좋은 차분한 공간이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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