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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알파고 때문에 불안해진 30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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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 믿으세요, 인생 데이터베이스의 농축된 정보랍니다

Q. (결단력 있던 제가 결정장애 걸렸어요) 30대 중반 직장 남성입니다. 학생 때부터 결정과 판단을 잘하는 편이라서 친구들이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저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기획 파트에서 일했는데, 판단과 결정이 빨라 일의 추진력이 좋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입사 동기보다 승진도 가장 빠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무엇을 결정하기가 어렵고 매사에 우유부단합니다. 결정을 위해서는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데 내가 자기계발을 등한시했나 싶어 자기계발서부터 인문학 서적까지 탐독하고 있지만 결정을 망설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바둑을 좋아해서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대국에 관심이 많았는데 예상외로 인공지능이 승리하는 걸 보고 나서는 인공지능이 나를 대체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합니다.

A. (불안감에 우유부단 심해졌네요) 입스(Yips) 증후군은 골프에서 쓰는 용어로 프로선수가 샷을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윙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실력의 문제는 아닌 게 자기가 우승했던 코스에서 입스가 찾아오니 말입니다.

   강박적 느림(obsessional slowing)이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불안이 만드는 완벽에 대한 집착에 사고와 행동이 병적으로 느려지는 것이죠. 책 한 장을 넘기는 데 30분이나 걸립니다. 빼놓고 안 읽은 부분이 없나 불안한 마음에 수도 없이 같은 페이지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병적인 현상은 아니더라도 우유부단도 일종의 불안 현상입니다.

 우유부단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과감한 결정으로 멋지게 회사를 키운 경험 많은 CEO가 갑자기 아무 결정도 못 내리겠다고 합니다. 이를 ‘경영 입스’(Executive Yips)라 부르기도 합니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 때는 느낌에 따라 과감한 결정을 내렸던 CEO가 회사 규모가 커지고 결정에 따른 위험도가 커지면서 결정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온 것이죠.

   그러다 보니 결정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객관적 분석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쉬운데요. 이것이 직감에 의한 결정력을 약화하고 우유부단이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이성보다 더 이성적인 직감

우유부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속마음과 직감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직감은 내 삶의 경험이 데이터베이스로 농축되어 나오는 빠른 결정이죠. 한 기업을 살리는 결정이 CEO의 직감에서 나오는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영어로 직감을 gut instinct라 부르기도 하죠. gut는 내장이라는 뜻이니 직역하면 내장의 직감인데요. 그만큼 원초적이고 빠르면서 본능적인 감각을 뜻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직감은 내장의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 뇌가 만들어 내는 느낌입니다.

 직감을 많이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직감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생각하여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논리적인 판단이 더 정확할 것 같은데 의외로 직감에 따른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기업을 이룬 창업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주변 참모는 다 반대하는데 자신의 직감에 의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그것이 대박이 나서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직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 뇌는 새로운 사건, 선택, 그리고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들을 그간 경험한 사건 기록과 함께 붙여 기억 저장 장치에 저장합니다. 예를 들어 A를 만났다면 A를 만난 기억과 그 느낌을 함께 붙여 기억하는 것이죠. 그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게 되면 논리적인 분석 이전에 자동으로 직감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도 왠지 저런 스타일의 사람이랑은 같이 일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느낌이 찾아오는 것이죠.

 직감은 논리적 분석을 우회해서 일어나는 빠른 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직감적 결정이 없으면 생존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우리 삶엔 적지 않습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직감적 결정 시스템이 발달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직감보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더들도 자신의 직감을 가능한 배제하고 복잡하고 과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결정하고 있죠. 사실 직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니깐요. 직감만 믿다간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신 뇌과학은 사람의 직감이 가치 있는 정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 데이터베이스에서 만들어지는 정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영 아니란 느낌이 계속되면 그 직감적 느낌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작정 그 느낌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의사 결정의 중요한 한 정보로서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찬찬히 내 마음을 살펴볼 필요는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우린 왜 인공지능을 두려워할까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고, 그래서 직감적인 판단이 중요한 바둑에서 알파고가 처음 3연승을 할 때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충격이 컸습니다. 대국 전에는 거의 대부분 이세돌 구단, 즉 사람의 완승을 예측했죠. 알파고가 이길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바둑이 시작되니 크게 예상은 빗나갔죠. 인간이 이겨야 한다는 기대 심리가 너무 크다 보니 전문가들조차 상황을 객관적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이겨야 한다는 기대 심리가 컸다는 것은 그만큼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에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는 아예 기계가 사람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신경망에 환상을 불어넣어 꿈을 꾸고 있는 세상을 현실인 양 착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적인 공포보다 실질적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인공지능, 그리고 그 지능을 탑재한 로봇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다 빼앗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저도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대결을 보면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외과의사 로봇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정신과학 영역도 힐링 컴퓨터가 나를 대신해 사람들을 치료하지 않을까 하는 공상에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에 사람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아이러니죠. 어찌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삶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상식적 믿음이 있다면 과도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것은 없죠. 하지만 이 기술이 소수를 위한 부의 축적과 통제력 강화의 도구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인공지능이 저를 심각하게 만드네요.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는데요, 오늘은 알파고의 친구들인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조금 멀리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봄처럼 따뜻한 감성 소통을 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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