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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기념해야 할 샤요궁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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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파리에 갔다면 에펠탑이 나오는 인증샷 한 장은 있어야 한다. 최고의 포토존은 트로카데로 광장과 맞닿아 있는 샤요궁(宮) 전망대다. 에펠탑 전체가 보이도록 구도를 잡기에 최적의 장소다. 샤요궁 전망대 양쪽에는 두 개의 대칭형 건물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늘어서 있다. 왼편에 샤요국립극장이 있고, 오른편에는 인간박물관과 해양박물관이 있다.

샤요궁은 한국인들에게 포토존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 제3차 유엔 총회가 열린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러 샤요궁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많아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1952년 뉴욕 맨해튼에 유엔본부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유엔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총회를 개최했다. 48년 3차 총회(사진)는 회의장으로 임시 개조한 샤요국립극장에서 열렸다. 그해 12월 12일 이곳에서 채택된 유엔 총회 결의 195호는 신생 독립국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43년이 지난 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안이 만장일치로 총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그에 앞서 유엔이 북한이 아닌 남한을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국제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국제사회가 공인한 날이기 때문이다.

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총선거를 통해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승인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남북한 동시선거를 통해 단일 정부를 구성하려던 유엔의 구상이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반쪽짜리 총선거로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유엔의 승인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장면과 장기영을 각각 수석대표와 차석대표로 하고 조병옥·정일형·김활란·모윤숙 등을 고문으로 하는 8명의 대표단을 파리에 급파해 사활을 건 외교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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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의 분위기는 신생 대한민국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소련을 비롯한 공산 진영 국가들의 방해 공작은 노골적이면서 집요했다. 안드레이 비신스키 소련 외상은 온갖 지연 전술을 동원해 승인안의 상정 자체를 막았다. 대표단은 3개월 동안 끈질긴 맨투맨 작전을 펼치며 논리와 눈물로 지지를 호소했다. 총회 마지막 날 가까스로 상정된 승인안은 찬성 47, 반대 6, 기권 1표로 결국 통과됐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샤요궁의 기적’이자 신생국 대한민국이 거둔 최초의 외교적 개가였다.

유엔 총회 결의 195호는 ‘대한민국은 유엔 임시위원단의 감시하에 총선거가 실시될 수 있었던 ‘그 지역(that part)’에서 통치권과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 정부’라고 규정했다. 이를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 합법정부로 해석할지, 38선 이남의 유일 합법정부로 해석할지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창설된 유엔이 대한민국을 합법정부로 공인했다는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홍구 전 총리는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희생을 당하고, 강대국에 의해 분단을 강요당한 한반도에 유엔 주도로 국가를 수립하고 이를 승인한 것은 유엔 창설의 취지에 부합하는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유엔이 북한의 남침에 맞서 유엔군을 파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대한민국의 탄생과 인연이 깊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은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파견된 김규식 박사 일행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란 이름을 걸고 활동한 곳도 파리였다. 이를 기념하는 현판이 파리 샤토됭가(街) 38번지 건물에 2006년 우리 정부 요청으로 새겨졌다.

샤요국립극장 로비에는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과 대량학살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대리석 현판이 붙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승인 사실을 알리는 현판은 없다. 카트린 파프귀에 샤요국립국장 대변인은 “나도 그 사실을 몰랐다”며 “프랑스 외교부 및 문화부와 협의해 현판을 붙이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말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불 리더스포럼에서 연세대 김명섭(국제정치학) 교수와 손우현 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한·불 리더스 포럼에 참석한 장 마크 에로 프랑스 외교장관은 “한·불 우정이여 영원하라”는 말로 기조연설을 마쳤다. 수교 130주년을 맞아 박 대통령이 프랑스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 기회에 제3차 유엔 총회의 대한민국 승인을 기념하는 현판 제막식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의 대불(對佛) 외교력을 기대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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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