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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중드의 매력에 빠지고야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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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요즘 스스로 놀라고 있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10회까지 몰아보고도 유 대위님(송중기)의 신묘한 매력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나 따져 보자면 이 역대급 완벽 남주(남자 주인공)로부터 온전한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때마침 새로운 ‘덕질’의 대상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다름 아닌 벼락처럼 찾아온 중드(중국 드라마) ‘랑야방-권력의 기록’(이하 랑야방·중화TV 사진 참조)이다.

“개작두를 대령하라”가 귓가에 울리는 ‘판관 포청천’ 이후 중드라고는 본 적이 없다. 어느 밤 “요즘 나의 화두는 ‘랑야방’이니 만나기 전 준비토록 하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인터넷TV로 1화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가상국가인 양 나라를 배경으로 황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54부작 정치 사극. 장국영과 유덕화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주인공 매장소(호가)가 등장하는데, 그는 원래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걸로 알려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 얼굴을 감쪽같이 바꾸고 강호를 뒤흔드는 지략가가 돼 나타난다. 가족의 원수를 갚고 옛 친구 정왕(왕개)을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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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만 보면 한국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합쳐놓은 셈인데 ‘랑야방’은 호방하고도 우아하다. 주인공은 강호의 고수답게 막후에서 고요하게 움직인다. 이야기의 플롯은 단단하고, 무술 장면은 아름다우며 적절한 유머도 있다. 화려한 세트와 의상은 ‘중드’ 하면 떠오르던 ‘왠지 촌스럽네’란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시대물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은 남자 못지않은 기개를 지녔고, 남녀 관계보다 남·남 관계에 집중해 ‘BL(Boys love)물’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건 또 얼마나 트렌디한지. 지난해 중국 방영 당시 50개 도시에서 시청률 1위였고 온라인 드라마 사이트에선 3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대륙을 휩쓸었다.

‘랑야방’이 증언하는 중드의 놀라운 약진에 한국 드라마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엔 경찰서에서도, 병원에서도, 재난 현장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놀라운 신공이 있지 않은가.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랑야방’ 54부를 몇 주에 걸쳐 끝낸 지금은 드라마 속 복식을 분석한 블로그를 탐독 중이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많은 일이 곧 인공지능(AI)에 맡겨지고 말 터이니, AI가 절대 도전하지 않을 ‘잉여력 발휘’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닌가 하며.

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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