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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주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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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다음 날인 지난 4일부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추가적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예고하는 행보를 며칠째 계속하고 있다. 단거리 미사일 발사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대북제재와 한·미 연합훈련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 같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강성 발언이 나온 뒤 북한은 연일 험한 언사로 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참수작전’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방사포로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도 했다. 남북 관계가 참으로 험악하게 꼬여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2일 북한은 난데없이 관영 조선중앙통신 논평 형식으로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외무상이 이미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기 때문에 조선중앙통신 논평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의 몇몇 전문가 발언과 해외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주장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북한은 왜 정세가 고도로 긴장된 이 시점에 미·북 평화협정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왔을까. 대내외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 얘기로 시작을 해 놓고 스스로 ‘핵보유국’이나 ‘핵대국’이라고 자처하면서 “우리의 자위력은 그 무엇으로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자신감을 과시했다. 이건 36년 만의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의 강력한 리더십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미 연합훈련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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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혹한 정세 상황에서 나온 북한의 이번 미·북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일단 패착이라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정책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어떻게 인지(perception)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어떤 행위자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자기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인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 요체는 진정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한의 행동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일괄 협의’하자는 중국의 협조를 받아 내는 데도 당장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한국 국민의 여론에도 안 좋게 작용할 것이다. 군 정찰총국장 출신인 김영철 대장이 노동당 대남비서가 되더니 평소의 가락이 나온 것 아닌가 싶어 앞으로의 남북 관계가 걱정된다.

김정은 위원장한테 꼭 전해졌으면 하는 얘기가 있다. 남북 관계가 안 좋으면 미·북 관계 개선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미국만 결심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미국이 한국을 빼고 북한과 양자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건 ‘김정일 유훈’에도 어긋난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과정에 한국이 당사자로 참여하기로 2007년 10월 3일 베이징 6자회담 공동보도문에 명시돼 있다. 그 다음 날 합의된 10·4 남북 정상선언에도 그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을 빼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북만의 평화협정은 중국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야 그렇다 치고,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말 미국이 뉴욕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하고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의의 우선순위를 논의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2010년 이후 “북한이 먼저 비핵화의지를 행동으로 보여 줘야만 6자회담에 나가겠다”며 완강하게 버티던 미국이 비핵화 문제를 평화협정 테두리 내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건 우리 정부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대한 정책 변화다. 미·북이 첫 접촉에서 접점을 못 찾았을 뿐이며 이를 완전히 꺼진 불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북한의 이번 제안은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내려는 부채질이 아닌가 싶다.

한편 중·러 쪽에서 이미 제재가 치밀하게 이행되지 않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대북제재가 좀 더 시들해지면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일괄 협상’ 쪽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미·중이 외교적으로 타협해야 할 다른 문제도 많기 때문에 중국이 주도하는 국면 전환에 미국이 협조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이 다르고 북핵 문제의 정책적 우선순위도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이런 국면 전환 상황에 대비할 준비도 해야 한다. 말로만 “한·미는 모든 걸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하지 말고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관계도 이렇게 경색 쪽으로만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가 막히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우리 입지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남북 왕래와 교류·협력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외교적 이득이 만만치 않다. 박 대통령은 북한을 탓할지 모르지만 남북 관계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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