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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유권자는 ‘얼라’가 아니라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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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지역뉴스부장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시대 배경은 여말선초(麗末鮮初) 난세였다. 그 시대가 낳은 최고의 영웅을 꼽으라면 단연 정도전(鄭道傳)이다. 역성(易姓)혁명 사상을 신봉한 그는 살아 있는 권력인 군주보다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민초를 더 주목한 민본(民本)주의 혁명가였다. 배우 조재현이 열연한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이방원은 “고개 숙이고 신하가 돼라”며 정도전을 회유·협박한다. 하지만 정도전은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民爲貴,社稷次之,君爲輕)”고 설파한 맹자(孟子)의 가르침을 내세워 민본의 대의를 굽히지 않는다.

▶정도전=임금은 이씨가 물려받았지만 재상은 능력만 있으면 성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 나라의 성씨를 모두 합쳐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이방원=뭐요?

▶정도전=백성(百姓)이다.

▶이방원=나라의 주인은 군왕이오.

▶정도전=틀렸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이방원=그대가 생각하는 나라의 임금은 뭐요.

▶정도전=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다.

이 말에 격분한 이방원의 칼을 맞고 정도전은 최후를 맞는다.

여야 정당들의 공천 활극을 보면서 정도전과 이방원이 맞짱 뜬 2년 전 사극 속 명장면이 떠올랐다. 정도전의 얼굴 위로 유승민 의원의 얼굴이 얼핏 겹쳐졌다. 유 의원이 23일 새누리당 탈당 및 무소속 출마(대구 동을)를 선언하면서 헌법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외친 장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천의 전반적 과정은 사극 ‘정도전’의 감동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사극 속 봉건군주국인 조선의 정치인들은 백성을 위한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회 모순의 해법, 도탄에 빠진 민생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놓고 목숨 건 논쟁을 벌였다.

반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정당들의 공천 과정은 심히 실망스러웠다. 지켜본 유권자들의 눈에는 권력자를 추종하는 세력과 그에 맞선 정치인들이 구원(舊怨)을 놓고 벌이는 치졸한 감정 다툼만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최근 만난 한 유력 정치인은 여권의 유 의원 ‘공천 왕따’ 배경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외교부 국정감사 때 유 의원의 ‘청와대 얼라들(어린애의 경상도 사투리)’ 발언이 결정적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공당의 공천에 사적 감정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공천은 정당들이 정치시장(선거)에 쇼핑(투표) 나온 정치소비자(유권자)에게 최고의 제품(인물)을 선보이고 경쟁하는 자리다. 따라서 지역 주민과 유권자·국민을 우선하지 않은 이번 공천은 여든 야든 모두 무책임했다.

내각제를 주장해 온 김종필 전 총리는 ‘국민은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4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호랑이의 야성을 살려 정치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면 좋겠다.

장세정 지역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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