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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사건 빨리 잊어” 재촉 금물 심호흡·안전지대법 효과

생활 속 트라우마 극복하려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김희연(가명·서울 광진구)양은 큰 트라우마가 있다. 어렸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다 동생이 바로 앞에서 차에 치이는 것을 봤다. 평소 명랑했던 김양은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다 침울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취업준비생 안모(26)씨는 어릴 때 계부 밑에서 학대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계부는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각목을 들고 온몸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안씨는 가늘고 길게 생긴 나무 막대기만 봐도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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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입으면 대뇌 전측두엽 부분 변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외상을 입는다. 손에 상처가 나듯 정신 영역에도 외상을 당한다. 의학적으로는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말한다. 왕따처럼 강도는 약하지만 지속적인 경험부터 지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 같은 큰 충격까지 다양한 트라우마가 뇌를 공격한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재난충격회복 연구협의체 대표)는 "실제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의 뇌를 찍으면 감정을 처리하는 전측두엽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흥분돼 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스트레스와는 다르다.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이주현 원장은 "트라우마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설명했다. 결정적 사건이 정신적 충격(트라우마)으로 이어지면 신체·정신적 장애가 나타난다.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은 보통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의식 영역’이 사라지고 '무의식 영역'이 작동한다. 사건을 떠올리는 작은 자극에도 평소에는 쓰지 않는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고 눈빛이 달라진다. 아예 넋을 잃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뇌가 혈류를 뇌와 근육에 최대한 집중시키기 때문에 손이 덜덜 떨리고 어지럼증이 생긴다. 이 원장은 "트라우마 후 바로 이런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수 개월이 지난 후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일생 동안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남성은 60%, 여성은 50% 정도다. 이 중 남자의 8%, 여성의 20%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진다. 채 교수는 "최근 세월호,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 재난 사고가 줄을 잇고 아동학대·살인 사건이 빈발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도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후 한 달 이내가 치료 골든타임

상처가 나면 빨리 소독하고 약을 발라야 깨끗이 치료된다. 정신적 외상도 처치가 빨라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지 않는다. 채 교수는 "트라우마 후 한 달 이내가 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원장은 "트라우마를 겪은 당시 신체 변화가 생기고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는 인체 내 ‘위기 탈출팀’의 활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기 탈출팀이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억지로 단축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원장은 "많은 가족·지인이 실수하는 게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에게 빨리 일상으로 되돌아 오라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말은 환자가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비정상적인 반응이라 인식하고 급기야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럴 때 가장 도움되는 말은 "울어도, 화가 나도, 몸이 떨려도 괜찮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몸이 스스로 치유하려 애쓰는 동안 좀 쉬어” 등의 위로다. 급격한 심리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빨리 잊어버리고 일어서야지” "크게 생각할 것 없어. 어서 힘내라” 등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비포옹법·안전지대법 등 치료법 큰 효과

트라우마를 받은 초기에 응급처치로, 전문의들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심호흡’이다. 몸을 이완시켜 마음을 안정시킨다. 숨을 끝까지 들이마신 후 잠시 정지하고 천천히 내쉰다. 숨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집중하며 긴장감도 함께 빠져나간다고 상상한다. 세 번 정도 반복하면 몸이 훨씬 편안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실제 연구에서도 한 번의 심호흡만으로도 뇌의 코르티졸(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크게 줄었다.

다음은 ‘나비포옹법’이다. 괴로운 장면이 반복해서 떠올를 때 시행한다. 두 팔을 X자로 만들어 가슴에 얹은 뒤 왼손과 오른 손을 번갈아 가며 양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이 원장은 "나비포옹법 치료 후 뇌 MRI를 찍으면 대뇌(변연계)의 항진된 부위가 가라앉는 등 강력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며

"트라우마가 생기면 우뇌와 좌뇌의 정보 처리 과정이 차단된다. 나비포옹법은 양측 뇌의 소통을 자극해 정보 처리 과정을 촉진시킨다”고 설명했다.

안전지대법도 있다.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린 뒤 그 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상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만 아는 신호를 주면 좋다. 이 원장은

"스포츠심리학에선 ‘루틴(Routine)’이라고 한다. 야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헬멧을 톡톡 두드리는 것처럼 무릎을 좌우로 톡톡 두드리고 시작하면 좋다. 매일 연습하다 보면 ‘파블로의 개’처럼 뇌에 조건반사 회로가 생겨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 뇌 신경 흥분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은 노출법이다. 트라우마 상황을 아주 경미한 수준부터 점진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예컨대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처음엔 보호자와 함께 3층, 두 번째는 5층, 세 번째는 7층, 그 다음은 혼자 타는 식으로 난도를 높여 가며 공포를 줄이는 방법이다.

이들 치료법은 스스로 사용해볼 수 있다. 단,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와 함께 시도해 치료법을 자세히 익히는 게 좋다. 특히 노출법은 섣불리 시도하다 공포감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밖에 부정적 생각을 봉인 상자 속에 넣고 땅 속으로 묻는 ‘봉인법’, 좋아하는 캐릭터를 소환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상상을 하는 ‘소환법’ 등이 있다.

치료 후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원장은 "트라우마를 극복해냈을 때는 그 크기만큼 업그레이드된 정신력이 내장된다. 실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이겨낸 히스토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참고 서적= 십대를 위한 9가지 트라우마 회복스킬(학지사)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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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