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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오달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천만 요정, 1억 배우, 1000만 관객 영화 최다 출연 배우…. 사람들은 숫자로 오달수(48)의 별명을 지었다. 평범한 조연 배우 같은 이가 수많은 관객을 모은 데 대한 찬사다. 오달수는 신기한 배우다. 어떤 상대 배우를 만나도 120%의 시너지를 내고, 역할에 꼭 들어맞으면서 결코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지 않는다. 얼마나 신비로우면 하정우가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이라 했을까. 스크린에서 숱하게 보아 왔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가 ‘대배우’(3월 30일 개봉, 석민우 감독)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그것도 자신과 똑 닮은 역할로. ‘배우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배우’가 혹시 진짜 오달수를 볼 수 있는 창이 아닐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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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대배우’는 20년 동안 대학로에서 연극을 해 온 무명 배우 장성필(오달수)의 이야기다. 어린이연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 파트라슈 역을 맡아 열연 중이지만 관객 수는 무대 위 배우보다 적다. 툭하면 술 마시고, 밤에는 생계 때문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내 지영(진경)과 아들을 사랑하지만, 부양의 책임과 연극을 향한 열망이 시시때때로 부딪친다. 영화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영화배우가 되려는 성필의 ‘웃픈’ 수난기를 다룬다. 긴 시간 연극배우로 산 오달수는 장성필과 퍽 닮았다. 영화에서 희비극적 재미를 한껏 끌어올리는 요소 역시 오달수가 가진 페이소스와 코믹함이다. 당사자는 무척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웃음이 빵 터지는 ‘오달수표 유머’의 결정체다.

1 그는 웃기기 위해 연기한 적이 없다.
“한 번도 웃기려 작정하고 연기한 적 없어요. 상황이 웃기니 관객이 웃는 거죠. 많은 사람이 한 박자 느린 제 호흡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건 제 타고난 리듬이 느린 거예요. 그걸 어떻게 계산하고 연기하겠어요.” 돌이켜 보면 오달수의 코믹 연기 토대는 진지함이었다.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2015, 김석윤 감독)에서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이 행글라이더에 몸을 싣는 장면. 서필이 잔뜩 겁에 질려 “이거…, 뜨… 뜨긴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웃지 않고 배길 수 없다. 그뿐이랴. ‘베테랑’(2015, 류승완 감독)에서 조태오(유아인)와 최후의 격전을 마친 서도철(황정민)에게 오 팀장(오달수)이 “괜찮아, 빨간 약 바르면 나아”라 위로할 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오달수는 “욕심내지 않고 상황에 자신을 툭 던져야 슬픈 감정이든 기쁜 감정이든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스크린 밖의 오달수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려 영화 출연 계약서에 ‘예능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은 적이 있었을 정도. 오달수는 자신의 코믹 연기를 두고 “편안해 보이지만, 사실 대단히 연극적인 연기”라 말했다. 관객 1억 명을 웃긴 연기의 밑바탕에는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꽉 채워 연기하진 않는다. 덜어낼 건 다 덜어내 더없이 차분해 보일 정도다. “젊은 시절, 이윤택 연극연출가에게 연기할 때 관객의 몫으로 30%를 남겨 두라고 배웠어요. 관객이 상상할 수 있게요. 그래야 관객을 더 잘 설득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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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배우` 스틸컷]

2 그는 ‘연기는 과학’이라 믿는다.
인터뷰 중 오달수가 자주했던 말은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이었다. 인물을 연구하며 300개의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그가 마음에 품은 연기 교과서에 나온 태도다. “연기는 과학이에요.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500만 개의 경우의 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저도 다양한 인간 유형을 분석합니다. 그 인물이 살아오며 어떤 직업을 거쳤는지, 취향은 어떤지, 혈액형과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까지.” 그렇게 만든 캐릭터는 소름 끼치는 악인부터 선량한 소시민까지 스펙트럼이 넓을 뿐 아니라 대단히 입체적이다. ‘베테랑’의 오 팀장을 예로 들어 보자. 정의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도철을 인간적으로는 아끼지만 상부의 지시에 “적당히 좀 해”라며 말린다. 그 짧은 순간 중간 관리자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결국 도철의 뜻을 지지할 땐 내게도 저런 상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든다.

사람의 성품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출 때도 마찬가지다. 김명민은 그를 “사랑스러운 아내 같다”고 말했고, 황정민은 “믿음직한 아버지 같다”고 표현했다. ‘암살’(2015)의 최동훈 감독은 “누구도 이기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 말했다. 말은 모두 다르지만 그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명민과 황정민은 기질적으로 달라요. 명민씨는 살갑고 순한 인품을 지녔어요. 정민씨는 현장을 야생마처럼 누비는 배우죠. 그에 따라 내 리액션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주연 배우를 잘 받쳐 주는 게 조연 배우의 역할이니까.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상대를 빛나게 해야 본인도 빛납니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금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간을 좀 봅니다(웃음). 지금 만났는데 오래 친한 사람처럼 굴 순 없잖아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레 섞일 텐데요, 뭐.” 무심하고 느긋해서 절로 편안해지는 말투. 상대 배우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까지 녹이는 요술은 이런 게 아닐까. 놀라운 건 다양한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매번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낸 점이다. “연기 방식은 다양해요. 배우가 자신과 역할을 분리시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기법, 배역에 완전히 빠져드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식의 메소드 연기법 등등. 자신에 맞게 응용해 개성적 연기를 완성하는 거죠. 난 배역을 내 앞에 데려와 함께 놀며 연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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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소윤(STUDIO 706)]

3 그는 영화배우를 꿈꾼 적이 없다.
오달수가 스무 살에 연극 팸플릿을 돌리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한솥밥을 나눠먹는 극단 사람들을 보며 “맞아, 삶은 남루한 것이었지”라는 생각에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 2000년 “젊은 연극인들의 아지트를 만들어 주고 싶어”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차렸고, 지금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선다. 스물한 살 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힘쓴 1년을 빼곤 연극밖에 모르고 산 ‘연극 바보’다. “‘대배우’ 대본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감독은 어떻게 연극계를 속속들이 알고 썼을까. 나는 성필과 많이 닮았어요. 극 초반의 그처럼 성공에 무관심했죠. 영화배우가 되기 전엔 남들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연극에 매달렸어요. 연기도 잘 못하면서(웃음).” 연기를 못했다고? 오달수가? “사투리도 있고 대본도 늦게 외우고(웃음). 그래도 ‘나는 관객을 위해 무대에 서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큰 인정을 못 받아도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컸어요. 하루는 공연 끝나고 집에 가는데 어떤 분이 연극을 정말 잘 봤다면서 술 한잔 사고 싶다 하더라고요. 그런 행복한 순간이 쌓이면서 무대를 떠날 수가 없었어요.”

오달수는 ‘해적, 디스코 왕 되다’(2002, 김동원 감독)의 단역 콧수염 난 로미오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 후에도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하진 않았다. “그땐 연극은 연극인이 하고 영화는 영화인이 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안 그러지만. 알음알음 감독님들을 찾아뵙긴 했어도 공개 오디션은 본 적 없어요. 낯부끄러워 그걸 어떻게 해.” 그는 여전히 “내 가족은 연극계와 극단”이라 말한다. 흔히 연극은 배우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오달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정통적 연기로 영화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배우를 못했다면 노숙자가 됐을 것”이라 할 정도로 배우의 삶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의 삶은 철저히 자기를 버리는 길이에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한 인물을 떠나보내며 아주 공허해지죠. 그게 얼마나 힘들면 고(故) 추송웅 선생이 ‘배우는 전생에 죄 지은 이’라 했겠어요.” 그럼에도 오달수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난 막걸리가 있으니까(웃음). 취미는 음주 수련입니다. 오래오래 즐겁게 술 마시며 연기할 수 있도록.”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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