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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아이는 지옥에서도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랑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이는 아무리 눌러도 자란다.
'조이'와 '룸'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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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룸` 스틸컷]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 학대의 결과물은 아마도 ‘싸이코’(1960,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일 것이다. 이 영화의 반전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스포일러를 감행하자면, 정신적으로 고장 난 주인공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는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다. 엄마와의 정상적인 관계 형성에 실패한 남자가 결국 이성을 대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다. 그 결과는 바로 살인이다. 초기 스릴러영화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인들에게는 이처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곤 했다. 말하자면 그 트라우마는 아동 학대의 흔적과 같은 것들이다.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했다거나 어머니가 방임했다는 식의 신체적·정신적 학대는 곧 인물의 정신적 고장으로 이어진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부모의 실수가 반드시 범죄자를 키워 내는 것은 아니란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꼭 부모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부모의 잘못된 교육이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좋은 가르침이 무조건 좋은 인간을 길러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교육으로 좋은 아이를 길러 내기는 더 어렵다.

요즘 신문 사회면이 시끄럽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경기도 부천 장기 결석 초등학생 사연이 세상에 밝혀지며, 그동안 사각지대에 머물던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마침내 볼 수 없는 아이들로 속속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개 가정에서 폭력이 자행되었고,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그 폭력 앞에 무너졌다. 할리우드 영화나 외국 소설에서 보았던 아동 학대 사건들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일본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1906~55)는 ‘아이는 눌러도 자란다’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필연적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눌러도 자란다’고 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놓고 다투었던 ‘조이’(3월 10일 개봉,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와 ‘룸’(3월 3일 개봉,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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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이` 스틸컷]

‘조이’는 속된 말로 ‘콩가루 집안’에서 가장 노릇을 해 온 여성 조이(제니퍼 로렌스)가 멋진 사업가로 성공하는 이야기다. 주목할 것은 그 콩가루 집안이다. 우선 조이의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는 일찌감치 어머니(버지니아 매드슨)와 이혼한 뒤 다른 여성들과 동거를 거듭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종종 조이의 집에 얹혀 살곤 한다. 조이의 어머니 상태는 조금 더 심각하다. 남편과 이혼 후 침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붙박이장처럼 자리 잡고 앉아 도무지 끝나지 않는 막장 드라마만 보고 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길 바랐던 조이의 결혼도 실패다. 나름 낭만주의자였던 전남편(에드가 라미레즈)은 현실을 책임지기엔 너무 무기력하다. 그런데 심지어 전남편까지 조이의 지하 방에 눌러앉은 상태다.

도대체 조이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많은 사람들을 업보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혼자 돈 버느라 전전긍긍하는 걸까? 수도관이 터져 물이 새도, 전화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끊겨도 다들 조이만 바라본다. 그런데 그에게는 단 한 명의 조력자가 있다. 바로 외할머니 미미(다이안 래드)다. 그는 이 복잡하고 고단한 상황에서도 조이가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켜 준다. 끊임없이 믿고 격려하며 사랑을 표현한다. 조이가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미미의 절대적 사랑과 신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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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룸` 스틸컷]

이런 상황은 ‘룸’에서도 발견된다. ‘룸’은 7년간 감금된 채 성폭행을 당한 여자 조이(브리 라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녀는 결국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까지 낳게 된다. 작은 방,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난 강간범(숀 브리저스)의 아이. 하지만 우려와 달리 영화 속 ‘방’은 어머니와 아들의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비록 남자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지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있을 때만큼은 그곳이 곧 천국이다. 그 방이 천국인 이유는 단 하나다. 엄마는 아들이 있어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끔찍한 현실이 아니라 언젠가 만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옥 같은 방도 천국으로 바뀔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지독한 현실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해 준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 준다면, 아이들은 그 속에서 쑥쑥 클 수 있다. 사랑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사랑이 아이를 키울 수도 있고, 한 사람의 폭력이 아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랑이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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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