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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귀향' 신드롬 심층 분석

아무도 이 같은 선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귀향’(2월 24일 개봉, 조정래 감독)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어떤 점이 관객과 조응한 것일까. 영화가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고 400만 명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지금, 극장가 풍경과 흥행 요인 그리고 ‘귀향’을 둘러싼 쟁점들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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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귀향` 스틸컷]

누가 어떻게 보았는가
지난 3월 13일. ‘귀향’이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다음 날이자 개봉 후 맞이하는 세 번째 일요일이었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의 한 멀티플렉스는 주말을 맞아 영화를 보러 온 관객으로 북적였다.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조이’(데이비드 O 러셀 감독), 외화 블록버스터 ‘런던 해즈 폴른’(바박 나자피 감독), 심은경 주연의 한국영화 ‘널 기다리며’(모홍진 감독) 등 3월 10일 개봉한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빼곡한 신작 가운데에서도 3주차 상영을 이어가는 ‘귀향’의 선전은 빛났다. 이곳에서 만난 20대 커플 관객은 이날이 두 번째 관람이라며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여운이 오래 남아 한 번 더 보게 됐다”고 ‘귀향’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상영관에 입장하는 관객 연령대는 다양했다. 그중에도 이날은 부부 혹은 무리 지어 함께 온 중년층 관객이 적지 않았다. 친구들과 극장을 찾은 50대 여성은 “매달 한 편씩 친목 모임으로 함께 영화를 보는데 이번 달에는 모두 ‘귀향’을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좌석 곳곳에서 이따금 탄식이 터져 나온 120여 분이 지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상당수 관객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한 40대 여성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영화의 여운이 남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며 “막연한 거부감에 이 영화를 더 일찍 보지 않았던 게 아쉽고, 주변에 꼭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장년층 관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장기 흥행의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온라인 조사 회사 피엠아이(PMI)가 2월 마지막 주부터 3월 둘째 주까지 20~50대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귀향’은 3주 연속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22.7%)에 올랐다. 그중 50대 남녀의 응답은 30%에 육박했다.

물론 기자가 극장에서 만난 관객 중에는 “하도 화제라 보러 왔는데 지루하고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고 소감을 밝힌 이들도 여럿 있었다. 여느 화제작처럼 ‘귀향’에 대한 관객 평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개봉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이 현재 그 어떤 개봉작보다 뜨겁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귀향’을 관람한 관객만 남길 수 있는 평가란의 리뷰가 5500개를 넘어섰다. ‘귀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박스오피스 순위 다툼을 벌였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월 17일 개봉, 바이런 하워드·리치 무어 감독)의 경우엔 같은 항목의 리뷰가 3600여 개다. ‘귀향’의 관람평은 ‘영화가 끝나도 여운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든 영화’ ‘연출·연기·음악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잘 만든 영화’라는 평가부터 ‘소재와 의도는 좋았으나 그걸 넘어서지 못한 영화’ ‘지루한 전개와 툭툭 끊기는 흐름 때문에 몰입이 어렵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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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귀향` 스틸컷]

초반 흥행은 어떤 이유로 가능했나
중요한 건 스타 배우 한 명 출연하지 않는 이 영화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이후 17일간 줄곧 정상을 지키며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개봉 4주차에도 굳건히 박스오피스 1위를 재탈환하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개봉 후 2주 상영도 채 보장받기 힘든 상황을 떠올리면 이례적인 일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영화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한 시네드에피 김주희 대표는 “마케팅이 두드러지게 전면에 나선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관객이 먼저 움직인 경우라는 것이다. 여기엔 이 영화의 제작비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7만5000명의 개봉 전 움직임이 큰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마케팅 차원에서 영화가 상업적으로 비치는 방식은 철저히 배제하고 감독이 14년간 진정성을 가지고 만든 영화라는 점, 국민의 손(후원)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 정도만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영화를 먼저 보고 만듦새에 만족한 후원자들이 자연스레 입소문을 퍼뜨리면서 다양한 관객층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귀향’의 초반 입소문은 인터넷과 SNS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17일 생존 위안부 피해자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첫 시사회를 연 ‘귀향’은 이후 올해 1월 17일까지 국내 후원자 시사를 가졌다. 이후

1월 22일부터 30일까지는 미국 LA·애리조나·워싱턴·뉴욕 등에서 해외 후원자 시사회를 열었고, 1월 말부터는 SNS 손글씨 응원 캠페인 ‘허그 투게더!(Hug Together!우리 함께 안아주세요!)’를 통해 후원자들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주도했다. 언론 시사회가 열린 것은 그 이후인 2월 4일이다.

전문가들은 초반 흥행몰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개봉 시기를 꼽는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가 한일 위안부 협상안에 동의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직후에 개봉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지난해 역사 교과서 파동에 이어 ‘외교 참사’라 부를 만한 한일 정부의 위안부 협상을 바라본 국민에게 이 영화는 분노와 부채의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역시 “‘귀향’의 흥행은 정부의 태도에 대한 관객의 무의식적 저항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귀향’은 유독 관객의 자발적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개봉 직후 현직 역사 교사가 사비로 극장을 대관해 무료 시사회를 열어 화제가 되는가 하면, 극장에도 대관 및 단체 관람 문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서울극장 측은 “개봉 후 시간이 흐를수록 좌석 점유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각종 단체와 학교 등에서 ‘귀향’ 단체 관람 및 대관 문의가 다른 개봉작에 비해 꾸준한 편”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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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귀향` 스틸컷]

‘귀향’을 둘러싼 논쟁
하지만 영화 한 편이 오직 이러한 화제성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저예산영화라는 점,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작품일 것이라는 편견 섞인 우려와 달리 영화의 만듦새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 300만 명 이상의 흥행이 가능했던 것”이라 진단한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순 없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치적 발언 대신 해원(解?)의 드라마를 통해 도덕적 만족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라는 점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극 중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뿐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 역시 일종의 감정적 해소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를 극영화로 만들 때 생길 수 있는 한계를 잘 극복했다”며 “위안소에 끌려간 여성에 가하는 남성의 폭력을 그저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국주의의 폭력’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 현재와 과거를 관통하며 같은 상처를 지닌 여성의 몸을 빌려 표현하고 치유하며 연대를 말한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귀향’에 대한 견해가 동일한 지점을 놓고 첨예하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폭력의 수위와 그것을 재연하는 방식이다. 위안소에서 폭력에 노출된 소녀들의 모습을 필요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그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서사를 어떻게 짜느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여성의 시점을 어떻게 재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위안소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필요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소녀들이 성폭행당하는 장면이 너무 과도하게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점으로 번갈아 카메라를 두는 방식이 극 중 인물들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기보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에게 또 한 번의 폭력을 행하는 것처럼 느껴져 고통스러웠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조정래 감독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묘사한 학대 수위는 증언집 사례들에 비하면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뉘앙스로만 전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위안부 ‘피해’의 정체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 기록이나 구술이 아니라 재연으로 보여 줘야 한다는 영화적 고민에 입각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라는 설명이다. 위안소 재연 장면이 관객에게 단순히 가학적 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방식이 죽은 사람의 언어를 빌리는 의식인 굿이라는 점, 영매가 되는 소녀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점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타국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위안부 20만 명의 이야기를 쓸어 담고, 어떤 식으로든 기념되지 못하는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죽은 사람의 말을 빌린 ‘굿’이라는 형태는 중요했다고 본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이 영화가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로 그리는 것이 아닌, 역사적 주체로 나서는 과정을 분명하게 그렸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조 프로그래머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꼭 비언어적·비이성적인 의식인 굿의 형태를 차용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완성도와 표현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지만, ‘귀향’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그나마 흥행에 성공했으니 위안부 문제 그리고 ‘귀향’을 둘러싼 담론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민족성에 호소하는 영화라는 편견을 넘고, 그 어떤 개봉작보다 뜨거운 반향을 이끌어 내고 있는 ‘귀향’이 더 다양하고 건강한 담론을 이끌어 내길 기대해 본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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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