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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까지 당 이끌어 달라더니… ” 앙금 남은 인·인 관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6일 전남 순천대학교에서 열린 ‘더 드림 경제콘서트’에서 “특정인의 욕망에 편승해 호남에서 야권의 분열을 야기하는 세력이 있다. 오히려 정권교체를 방해하고 있다”며 “이번 총선은 분열로 나타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시스]


4·13 총선을 치르는 야권의 한복판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 있다. 당내에선 “이번 총선은 철저하게 김종인 선거”(이철희 전략기획본부장)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주 새누리당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무소속) 의원이 친박 패권주의와 맞섰다면 김종인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로 불리는 당내 기득권과 벼랑 끝 승부를 벌였다.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지만 결국 그는 비례대표 2번을 받았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비례대표 5선’이란 초유의 기록까지 보유하게 됐다.


“국회의원은 물론 경제수석과 장관까지 한 번도 먼저 자리를 달라고 한 적이 없다”(김 대표의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말처럼 그가 아닌 권력자들이 그를 먼저 잡아당겼다. ‘배짱의 리더십’으로 불리는 김종인표 정치가 일사천리로 더민주를 장악했지만, ‘비례대표 셀프 공천’ 파동에서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를 삼고초려했던 문재인 전 대표와의 사이에도 ‘불신의 틈’이 생겨났고, 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는 시각차가 확연해졌다. 비례대표를 고리로 총선 이후에도 당에 남게 된 김 대표와 더민주의 진짜 주인인 문 전 대표의 관계는 총선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야권 지형을 규정하는 최대 변수가 됐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입당 권유차) 처음 와서 제안한 게 ‘비례대표 2번’이다. 그분이 제안하신 거였다. 비례대표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놓고 김 대표가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시니… (김 대표가 화가 난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간판으로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달라’고 해서 (옆자리에 있던 내가) ‘남편이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면 보나 마나 철새니,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니 하며 분명히 구설에 휘말릴 텐데 괜찮으시겠냐’고 했더니 문 전 대표는 ‘문제가 터지면 책임지고 다 막아드리겠다’고 했다.”


김 대표 부인 “그만두더라도 명예롭게” 조언김 대표의 부인 김미경 교수는 24일 중앙SUNDAY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저희는 거의 (대표직을) 그만두려고 했다. 저도 죽겠고, 이런 당인 줄 몰랐다. 이렇게 심할 줄은…”이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지난 22일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의 서울 구기동 자택에 찾아와 대표직 사퇴를 만류할 때도 김 교수는 이런 서운함을 대놓고 표출했다고 한다. 김 교수가 전한 당시의 대화 내용이다.


▶김 교수=“책임지고 다 막겠다는 약속하지 않으셨냐. 그런데 결과가 이게 뭐냐.”


▶문 전 대표=“이해찬 의원 말고는….” (※이해찬 의원 공천 탈락 외에 정청래·강기정 의원 탈락 때는 당내 반발을 막아줬다는 의미)


▶김 교수=“아니, 비례대표 2번도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대선까지 당 간판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문 전 대표=“김 대표에게 비례대표 전략공천권을 드렸으니….”


▶김 교수=“그게 아니죠. 2번으로 추대를 해주시던지. 이렇게 ‘노욕’으로 매도하는 건 아니죠.”


김 교수는 남편 김 대표에게 “당 대표를 그만두더라도 명예롭게 그만둬야 한다. 당에 있어도 명예롭게 있어야 된다. 이렇게 그만두고 나면 도망간 사람으로 비친다”고 조언했다고 했다. 결국 그 조언이 효과를 본 것인가. 김 대표는 당무에 복귀했다.


주변에서 보는 김 대표는 ‘자존심의 사나이’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김 박사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했다. “구질구질하게 부탁하는 건 이 양반한테 있을 수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 국회의원, 장관 시켜주십시오’ 이런 건 절대 없다”(부인 김 교수)고 한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는 얘기인데, 김 대표가 비례대표 논란이 일었던 중앙위 파동 때 가장 격분했던 부분 역시 ‘셀프 공천’이라는 비난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 스스로도 21일 기자들에게 “내가 무슨 (비례대표) 욕심이 있어서 비대위원장 하려는 사람으로 다루는 것이 제일 기분 나쁘다”고 했었다.


사실 이런 자존심은 대중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도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선 별로 개의치 않는 스타일, 강한 신념과 자존심이 몽니로 보일 수도 있다”(측근인 주진형 총선정책공약부단장), “비민주적으로 보이는 독자적 리더십은 친노·비노 할 것 없이 용인하기 힘들 것”(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의도를 관철하는 방식에서 한국 정치의 풍토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윤여준 전 장관)는 진단들이다.


그의 자존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10년 전부터 김 대표를 도와온 주진형 부단장은 “자신은 공익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믿음이 굉장히 강하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떳떳해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독일 유학 시절(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네오나치 집회에서 상식 밖의 주장을 펴는 연설 내용에 격분해 연설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내팽개쳤다는 일화도 있다. 60년대부터 친분을 쌓아온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김 대표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신념이나 생각에 맞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행동하는 행동파”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루기 힘든 까칠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치권이 탐냈던 이유는 지식과 안목 때문이다. 그의 학구열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김 대표는 저녁 식사 후 오후 9~10시쯤 잠자리에 든다. 새벽 4~5시쯤 일어나선 두세 시간씩 매일 책을 읽는다. 당 대표를 맡고 난 뒤엔 격무 때문에 독서를 거르기도 했다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김 대표와 절친한 과학기술계 전문가는 “경제 전문가인 김 대표의 요즘 관심사는 구글·애플 같은 플랫폼 경쟁력이나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이라며 “인공지능, 특히 알고리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기초)과 같은 수학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에 관련 전문가(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를 비례대표 1번으로 모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영 의원에 대한 책임감에 사퇴 접어어느 한 진영에 머무르지 않고 진영을 넘나드는 유연성도 그의 장점이다. 87년 전두환 정권에서 그는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다. 그랬던 그가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에 동참한 정운찬 전 총리를 ‘용기 있는 젊은 학자’로 눈여겨보고 먼저 연락해 만나 격려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의 측근은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전두환을 비판하던 교수를 격려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철저한 공직 마인드와 축적된 지식, 진영을 넘나드는 유연성 때문에 권력 핵심과 정치권의 러브콜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공천 국면에서 ‘셀프 공천’ ‘노욕’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당 잔류를 결정한 것은 ‘약속’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김 대표의 지인들 중에도 “지금 이렇게 그만두면 더불어민주당은 끝장이다. 당신도 처음에 대한민국이 잘 되려면 제대로 된 야당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더민주가 끝장나 버리면 대한민국에 좋은 일이겠는가”라는 만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김 대표를 주저앉힌 건 그가 새누리당에서 더민주로 영입한 진영 의원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김 대표의 참모는 “김 대표는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번에도 다 (대표직을) 던질 상황이었는데 마음을 돌린 것은 진영 의원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했다. 실제 김 대표는 당무 거부 중에도 진 의원과의 연락을 이어갔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관심은 이제 총선 이후 김 대표의 역할에 쏠린다. 특히 야권 내 대선주자 중 선두로 꼽히는 문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될 것이냐다. 김 대표의 당무 복귀 직후 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놓고 벌어진 김종인-문재인의 신경전을 총선 뒤 전개될 전면전의 예고편쯤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정체성 논쟁은 부질없는 일”(24일 손혜원 후보 개소식)이라는 문 전 대표의 말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은 요원하다”(23일 기자회견)는 하루 전 김 대표의 언급을 맞받아친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문 전 대표 측은 “최근 우리 지지자들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 나갔다. 김 대표와 전략적인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은 오히려 김 대표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김 대표 측은 달가운 기색이 아니다.


사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조기 등판과 선거 지원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자주 밝혀왔다. 사석에서 그는 “큰 정치인이 되려면 외롭고 괴로운 상황을 잘 참아내야 하는 데 정치인들이 그걸 잘 못한다”고 곧잘 말한다. 일단 한발 뒤로 물러난 문 전 대표가 자꾸 앞줄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특히 이런 문 전 대표의 행동이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반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김 대표 주변의 한 인사는 “비례대표 관련 홍역을 치르면서 문 전 대표와 김 대표 사이의 신뢰감이 적잖이 훼손됐다. 특히 문 전 대표가 당내 대리인들을 부추겨 자신을 견제하려 든다는 느낌을 김 대표가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총선 뒤엔 두 사람의 갈등이 노골화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홍국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문 전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김 대표는 꼭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주자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킹’을 노리는 문 전 대표가 ‘킹 메이커’ 역할의 김 대표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태곤 실장은 “문 전 대표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박근혜 대통령처럼 자신의 지지율을 압도적으로 높여 김 대표를 비롯한 다른 세력보다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할 경우 김 대표에게 계속 끌려다닐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겉으로 보면 문 전 대표의 당내 세력이 ‘김종인계’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지만 ‘문재인이 꼭 필요 없는 김종인보다 김종인을 묶어둬야 하는 문재인’이 을(乙)의 위치에서 고전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표는 26일 영암-무안-신안의 서삼석 후보 사무소 개소식에서도 “전 절대로 바지사장 노릇을 못 한다” “마치 대통령 후보가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런 생각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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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