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동독 국유기업, 사회주의 벗고 ‘히든 챔피언’으로

1 독일 켐니츠의 프라운호퍼 연구소 IWU에서 연구 중인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공존하는 공장’의 모습. 주변에서 작업하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로봇이 자동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지난 6~11일 독일연방학술교류처(DAAD)의 초청으로 ‘동독 지역의 연구와 혁신’이라는 주제로 프레스 투어를 다녀왔다. 1990년 통일 뒤 옛 동독 지역의 변화상과 ‘연구 혁신(R&I)을 통한 혁신 경쟁력 유지’라는 독일의 국가 발전전략을 살펴볼 기회였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있던 동독 지역이 26년 동안 시장경제에 어떤 전략으로 편입됐는지 궁금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지금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2 켐니츠의 프라운호퍼 연구소 IWU에서 무인공장 시스템을 연구 중인 엔지니어. [사진 Thomas Trutsche] 3 독일 드레스덴 헬름홀츠 연구소의 드라코 레이저 시험 시설. [사진 HZDR/Oliver Killig]


지난 8일 독일 동부 튀링겐주 예나. 세계적인 광학회사 ‘카를 차이스(Carl Zeiss)’가 탄생한 지역답게 인구 10만 명의 이 도시엔 그 이름을 딴 광장·거리가 곳곳에서 보였다. 축구팀도 FC 카를 차이스였다. 이 회사의 예나 공장에 갔더니 카를 차이스란 이름보다 ‘직원만 출입 가능’ 표시가 더 자주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를 준비하는 첨단 연구시설”이라며 사진 촬영은 물론 접근조차 금지했다.


생산시설을 돌아보는데 직원이 드문드문 보일 뿐 한산한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 갔더니 자리의 10분의 1도 차지 않았다. 이 회사의 울리히 지몬 연구기술 담당 부사장은 “현재 예나 공장에는 2000여 명이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연구·개발(R&D) 인력”이라며 “공장 자동화와 경영 합리화로 생산인력은 줄고 미래를 열어 갈 혁신 연구 중심으로 인력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 켐니츠 공대의 연방 우수 클러스트인 ‘MERGE’에서 개발한 초경량 금속. 5 켐니츠 공대 ‘MERGE’에서 금속과 플라스틱을 결합해 개발한 초경량 재료. [사진 Hendrik Schmidt]


광학기기를 영화·교육과 결합한 상품도1848년 광학자 카를 차이스(1816~1888)가 예나에서 창업한 이 회사는 고품질 현미경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독일 분단으로 회사도 동서로 나뉘었지만 통독 후 다시 합쳐졌다. 문제는 사회주의 체제에 있는 동안 생산성이 떨어진 예나 본사였다. 예나 공장이 특히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급격한 체제 전환의 충격파 속에 시장경제 체제와 국제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예나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 경제·경영학과의 비즈니스 동력·혁신 및 경제 변화 담당 교수인 미하엘 프리치 박사는 “옛 동독 시절 3만 명에 이르던 직원이 통독 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부분 회사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인구 10만 도시에서 3만을 고용하던 기업이 기울어지자 지역공동체 전체가 기우뚱했다.


이 회사는 지역 대학·연구소와 손잡고 생존을 위한 전략을 새롭게 짰다. 연구를 통한 기술 혁신이 답이었다. 지몬 부사장은 “대학과 연구소는 시장을 위한 연구를 하고 기업은 기술 연구에 기반을 둔 상품 개발에 주력했다”며 “기존 광학제품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현재는 다양한 혁신적인 렌즈는 물론 레이저에 의료기기 제작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광학식 망원조준경·거리계·야시경 등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놨다.


이뿐만 아니라 돔형 천장을 스크린으로 삼아 천문 영상이나 천체의 모습과 변화를 상영하는 천체 투영극장을 개발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광학기기를 영화·교육과 결합한 융합형 상품이다. 지몬 부사장은 “광학과 다른 과학기술 분야를 접합한 의료기기·전자기기·레이저 등 다양한 관련 기술과 상품 개발에도 나서고 있으며 심지어 관련 AI까지 연구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업으로 완전 변신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몬 부사장은 “예나의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과의 산학연 공동 연구를 통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면서 쓸 만한 기술이 나오면 벤처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이 사람 알아서 피하는 기술 개발 중”프리드리히 실러 대학 아베광학센터의 토마스 페르치 교수는 “이 과정에서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산학연 연구 프로그램(STIMULATE)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산학연 합동 기술 개발을 통해 예나 지역의 광학 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업·연구소와 공동으로 광학 자체뿐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는 레이저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필요한 응용기술의 개발”이라고 지적했다.


동독 지역의 경제 활성화 전략을 주로 연구해 온 프리치 교수는 “이 회사는 19세기에 당시로선 최첨단 아이템인 현미경을 연구개발해 세계적인 광학업체가 됐는데 이러한 혁신의 전통을 통독 후에도 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카를 차이스는 옛 사회주의권에 있던 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기술 혁신으로 기업 제품의 포트폴리오를 바꿔 생존에 성공한 사례”라며 “소비자 요구에 맞춰 기술을 혁신하고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 연구개발에 몰두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카를 차이스의 사례는 옛 동독 지역에서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옛 동독 땅에서 4차 산업혁명 준비 한창옛 동독 지역의 혁신 연구는 현재 필요한 실용화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미래 기술 개발도 한창이었다. 지난 9일 동독 지역인 작센주의 켐니츠에 자리 잡은 ‘프라운호퍼 기계 도구 및 형성 연구소’. 켐니츠 공대 구내에 자리 잡은 이 연구소는 독일 4대 연구단체 중 한 곳인 프라운호퍼가 운영하는 66개 연구소의 하나다. 미래 기계와 공장 연구에 특화된 곳이다. 완전 자동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무인공장 개발을 목표로 관련 기술을 맞춤형으로 개발하는 연구소다. 넓은 공장형 연구소에서는 분야별 연구가 한창이었다.


그중 한 곳은 독특했다. 생산용 로봇이 움직이는데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산업재해를 염려해 로봇이 움직이는 반경 안에는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상례다. 이 연구소의 전략 및 국제 담당인 미카엘 쿨 박사는 “생산 로봇이 AI를 통해 주변의 인간을 알아서 인식하고 스스로 안전조치를 취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쿨 박사는 “미래의 자동 공장은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아무리 AI와 로봇 기술이 발달해도 최종 문제 해결자로서 인간의 역할은 절대적이므로 인간과 AI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미래형 재료 개발도 한창이었다. 유리섬유나 플라스틱을 금속과 결합해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강한 미래형 자동차 재료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든 자동차 보닛은 들어 보니 책 한 권보다 가벼웠다. 켐니츠 공대와 프라운호퍼 연구소, 독일의 각 기업이 합작으로 이를 개발하고 있었다. 직원 중 한 명이 “여러분은 미래의 폴크스바겐 차체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여기서 개발한 재료를 완성차 업계, 항공기 제작사, 철도 관련 업체 등에서 받아들여 상용화하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철도 만드는 기계, 중국 주문 받아 제작”이렇게 산학연으로 개발된 기술은 어떻게 지역기업을 혁신으로 이끄는가? 부근에 있는 산업기계업체인 나일스-시몬스를 찾았더니 의문이 해결됐다. 동독 시절 ‘5월 8일 대형 회전기계 산업 콤비나트’라는 이름의 국유기업이었다가 통독 뒤 민간기업으로 되돌아간 공장이다. 이 회사의 켐니츠 공장은 대형 시설답지 않게 조용했다. 이 회사의 게로 마르텔 기술 담장 부사장은 “통독 전 7500명에 이르던 공장 직원이 지금은 4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마르텔 부사장은 “자동화로 직원 숫자는 줄었지만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으며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상품 개발로 시장은 더욱 커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산업 비밀이라며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면서도 눈앞의 기계를 가리키며 “철로를 만드는 기계인데 중국 동북 지역 철도 공장의 주문을 받고 제작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산업용 기계를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 회사 연구개발 목표”라며 “지역의 대학과 연구소가 힘을 합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계를 개발·제작하는 연구 혁신기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포함된 NHSH그룹은 2015년 전 세계적으로 3억15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기술 담당 모리츠 할레는 “항공·자동차·철도·산업용 기계·공구 등에 걸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의 하나”라고 회사를 소개했다. 그는 “지금도 남들이 하지 않는 저소음 공작기계 등을 산학연 합동으로 개발 중”이라고 했다.


켐니츠는 동독 시절 공산주의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카를마르크스슈타트’로 불렸다. 마르크스의 고향은 서독 지역인 트리어지만 동독 공산정권은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동독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인구의 켐니츠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도시 한복판에는 마르크스의 거대한 두상을 설치했고 지금까지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통독 직전인 90년 6월 공산당 정권의 통제가 느슨해지자 주민투표를 통해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통독 이후 이 도시는 이름뿐 아니라 전통적인 기계산업도시의 영광도 되찾고 있다. 프리치 교수는 “동독 지역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방법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과 연구 투자를 통한 기술 혁신으로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장인 정신의 복구”라고 지적했다.


 


 


마그데부르크·예나·켐니츠=채인택 논설위원?ciimccp@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태그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