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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璽 -옥새-


옥새(玉璽)는 황제가 쓰는 도장이다. 신하의 도장은 ‘印(인)’이라 했다. BC 228년 진시황(秦始皇)은 조(趙)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설의 옥(玉)인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넣는다. 그는 승상 이사(李斯)에게 화씨벽으로 황제의 도장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옥새다. 옥새에는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창성하리’라는 뜻의 ‘受命于天 旣壽永昌(수명우천 기수영창)’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옥새는 정통성의 상징이었다. 옥새를 갖고 있는 황제라면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명운이 다한 것(氣數己盡)으로 봤다. 반란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감추려 한 것이 옥새요, 반란군이 가장 먼저 손에 넣으려 한 것 역시 옥새였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옥새에 담겨있는 셈이다.


옥새가 진(秦)나라의 품에서 떠난 것은 시황제의 손자이자 3대 황제였던 자영(子?)때였다. 자영은 유방(劉邦)이 함양(咸陽)을 정복하자 패배를 인정하고 옥새를 넘겼다. 한나라에서도 반란은 끊이지 않았다. 왕망(王莽·BC 454~AD 23)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잠시 신(新)왕조를 건립하기도 했다. 왕망은 쿠테타 성공 후 자신의 고모였던 황태후에게 옥새를 넘기라 요구했다. 황태후는 ‘배은망덕한 놈’이라며 옥새를 땅에 내던졌고, 당시 용 형상의 손잡이 일부가 깨져나갔다고 야사는 전하고 있다.


옥새는 후한(後漢)말기 혼란기에 사라지고 만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옥새는 손견(孫堅·155~191)이 반란군 동탁(董卓)을 칠 때 우연히 우물가에서 발견된다. 손견은 이를 원술(袁術)에게 바쳤고, 원술은 이를 근거로 황제 행세를 하기도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조(曹操)손에 넘어간 옥새는 진(晉)왕조를 거쳐 후조(後趙)·동진(東晉)·수(隋)·당(唐)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5대10국 시기(903~966) 후당(後唐)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이종가(李從珂·885~936)가 반란군에 쫓겨 분신할 때 유실됐다. 그 후 옥새가 발견됐다는 얘기가 빈번했지만 모두 진품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제 권위의 상징물인 옥새는 권력 투쟁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그 속성을 다시 보고 있다.


 


한우덕중국연구소장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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