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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교수의 대답


지금도 강연에 나서는 97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은 오랜 기간 강의와 글, 모범적인 생활로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줬다. 얼마 전 출판한 『예수』라는 저서에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벌써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로서의 하느님과 영혼의 친구로서의 예수를 찾았다”고 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자신의 생활에서 “하루도 하느님과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김교수님이 한 일간지 기자와 가진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교수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시지요”라는 질문에 교수님은 “그렇다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예수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리를 가르친 게 아니지요.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가치관이 돼야지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씀은 “예수는 좋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한 간디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서구 그리스도교가 사회적 힘을 잃어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양의 새로운 문화와 더불어 들어온 그리스도교는 당시 경직되어 있던 유교 문화권의 우리나라에 대화할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인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전파해 큰 매력을 발산했다. 그때 이 땅의 초기 가톨릭 신자들 중 1만 명이 넘는 수가 배교(背敎)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순교를 택하기까지 했다. 박해시대가 끝날 무렵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교육·의료·사회복지에 힘썼고, 일제 강점기에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독립운동에도 참여해 많은 사람의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그리스도교 교회에 다니는 행위는 지난 세기 대부분의 기간에는 주변에 자랑 삼아 말할 수 있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이 좋게 여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동네에 들어선 교회의 수가 많아지면서 때로는 분열되어 고성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교회로부터 염려를 받던 외부 세계가 적지 않은 수의 교회들을 염려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느님과 예수를 하루도 떠나지 않고 산다는 김형석 교수님과 같은 분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은 그분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보다는 교회가 개선할 점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진단해야 올바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신교·가톨릭·성공회 등 그리스도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불교· 원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파들도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종교 생활은 기성세대에 비해서는 많이 약해졌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리들이 좀 더 진솔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표시로 인식하고 싶다. 성직(聖職)을 편한 직업,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를 누릴 수 있는 상당히 괜찮은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김형석 교수님과 같은 사람의 수가 점점 늘고 있어서 애로가 겹칠 것이다.


 


전헌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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