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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빨리 버리자’서 ‘모았다 쓰자’로 바꿔야


봄에는 가물어 댐에 담긴 물이 부족해 농사도 못 짓고 산불이 날까 걱정한다.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그토록 소망하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황사비, 산성비라며 모두 다 피하고 버린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유역에 내린 빗물을 한꺼번에 강으로 내려보내 하류에서는 홍수가 난다. 비를 다 버리고 난 다음 정작 쓸 물이 없다. 하늘이 주신 선물을 허투루 쓴 결과다. 
비 맞으면 대머리? 과학적 근거 없어고질적인 우리나라 가뭄과 홍수의 원인은 “비는 빨리 버려서 없애야 한다”는 잘못된 빗물 관리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아주 간단한 과학 상식으로 풀 수 있다. 모든 비는 대기오염 정도에 관계없이 산성이다. 지붕에 있는 먼지에 묻으면 금방 알칼리성으로 바뀌고, 하루만 있으면 중화된다. 콜라나 주스 같은 음료는 산성비보다 100~500배 더 강한 산성이지만 피부에 묻었다고 큰일나는 경우가 없다. 산성비 때문에 대머리가 된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산성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초등학생도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자연계의 물 순환을 살펴보자. 비가 오면 산에서 계곡을 따라 물이 내려오면서 강을 만들고 하류로 내려가면서 바다로 흘러든다. 내려가는 도중에 생활하수, 공장폐수 같은 여러 이물질이 들어간다. 이물질의 양은 물 1L를 끓인 후 남은 고형 물질의 무게(㎎)를 재면 된다. 빗물 속 이물질의 양은 5㎎/L이고, 바닷물 속엔 3만5000㎎/L이 있다.


 비가 내려 이동하는 거리를 빗물의 ‘마일리지’라고 부르자. ‘마일리지’가 늘수록 오염물질의 양도 늘어나는 셈이다. ‘마일리지’가 짧을수록 마실 수 있도록 처리하는 비용은 싸진다. 도시 건물의 지붕에서 받은 물은 ‘마일리지’가 짧다. 황사, 먼지, 새똥, 대기오염물질이 있지만 간단한 침전 처리만 하면 허드렛물로 사용할 수 있다. 약간의 이물질만 걸러내면 마시는 물로도 만들 수 있다. 이물질의 양이 많은 강물이나 바닷물을 음용수로 만드는 기술에 비하면 매우 간단하다.


 최근 들어 전통적인 수원인 강물이나 지하수가 부족해 해수 담수화, 하수재이용수, 빗물 등의 대체 수자원이 고려되고 있다. 비가 적은 사막의 바닷가에서는 해수 담수화가 유일한 대안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내륙지방에서는 하수를 걸러서라도 마셔야 한다. 여러 가지 수원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에너지와 자연에 대한 피해다.


 물 1㎥를 생활용수 등으로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는 물속에 녹아 있는 이물질이 많을수록, 운반 거리가 멀수록 많이 필요하다. 해수 담수화는 4~10Kwh, 하수재이용수는 1~2Kwh, 광역상수도는 0.2~0.4Kwh, 지하수는 깊이에 따라 다르지만 0.1~3Kwh가 든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받아 수세변소수나 청소용 물로 사용하면 0.0012Kwh만 든다. 빗물을 사용하는 만큼 에너지가 절감되니 빗물을 많이 사용할수록 지구온난화를 줄여주는 셈이다.


?빗물을 사용하면 강물을 덜 가져와도 되므로 그만큼 자연환경도 보호하고 더 긴급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당장 쓸 곳이 없으면 빗물을 땅속에 집어넣어 지하수에 보충하면 된다. 빗물을 지붕, 산지, 평야처럼 떨어지는 자리의 특색을 살려 잘 관리하면 식수나 생활용수, 지하수 충전 등의 일석 5조, 10조의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빗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창조적으로 돈을 버는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이나 샤워한 물은 하수도로 들어간다. 모두 다 쓰레기로 간주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39동에는 ‘빗물-저농도 오수 하이브리드 시설’이 있다. 빗물은 깨끗하지만 불규칙적으로 내리는 반면, 저농도 오수는 약간 더럽지만 규칙적으로 발생한다는 특성을 이용했다. 이 물을 변기세척수에 사용하면 1년에 3000㎥의 물이 절약된다. 그만큼 한강물을 아낄 수 있고, 사용하는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쓰레기로 생각하고 버렸던 빗물과 오수가 알뜰한 수자원이 되는 것이다. 빗물 재활용해 연간 3000㎥ 물 절약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넓은 지붕이 참 많다. 역사, 공항, 공장, 축사, 비닐하우스, 관공서 지붕 등은 공짜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상수도 수원이 되는 것이다. 광명 KTX역사 지붕 4만4000㎡에서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수자원 양은 최대 5만5000㎥나 된다. 화장실용수를 자급할 수 있는 양이다.


 서울 광진구의 한 주상복합건물 B동의 지하 4층에는 3000㎥짜리 다목적 빗물 탱크가 설치돼 있다. 이것을 1000㎥짜리 3개의 통으로 나누어 각각 홍수방지용, 수자원 확보용, 비상용수용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단지 안에 내리는 초기 100㎜의 빗물을 모두 잡도록 설계돼 있어 하류 사람들은 홍수 걱정이 없고, 주민들은 빗물로 아름다운 조경을 즐기면서도 한 달에 300원도 내지 않는다. 주위에 화재가 나면 10㎥짜리 소방차 100대분의 물을 사용할 수 있고, 단수가 돼도 화장실용수나 식수로 이용해 10일은 버틸 수 있다. 이러한 다목적 시설은 1년에 한두 번 큰비가 올 때만 사용하는 홍수방지용 빗물펌프장 시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적이다.


 서울시는 이 성공사례를 통해 신축 건물에 빗물시설을 만들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조례를 제정했고, 국내외의 많은 도시에서 이러한 조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기상이변이 있을 땐 빗물을 흘려보내는 하수도나 하천의 용량이 부족해져 광화문이나 강남역 부근에서 일어난 것처럼 도시 침수가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수도 용량을 키우거나 지하에 대규모 저장공간을 만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 대신 지역의 건물마다 빗물을 잠시 모아두어 천천히 내려가도록 하면 기존의 하수도시설을 증설하지 않고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짧은 시간 내에 기상재해에 대비할 수 있다. 이것은 수능 날 아침 교통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도로를 넓히는 대신 시차제 출근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서울대학교 35동의 옥상 녹화는 내려가는 빗물의 양을 줄여 홍수 방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교직원, 학생, 시민들이 함께 꽃과 채소를 즐기고, 열섬 현상도 방지한다.


 상수도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에서 수돗물이 안 나오면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화장실 용수다. 집중형 상수도 공급 시설에서 물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건물 가까이 빗물을 모으는 시설을 만들어 두면, 비상시 적은 비용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전 세계는 10억 명이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여성과 어린이의 피해가 가장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 개발 목표를 만들어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마을은 식수 문제가 매우 심각하지만 정부단체의 지원이나 구호의 손길은 너무 멀다. 지붕이 있고, 비만 온다면 식수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비소로 오염된 지하수를 먹는 베트남의 한 초등학교에 기업의 지원으로 20㎥짜리 빗물 탱크를 만들어 안심하고 마실 물을 1주일 만에 해결해 주었다. 그들의 오랜 숙원이 이뤄졌다.


빗물 식수화 기술, 개도국 틈새시장이처럼 기업의 공유가치를 창조하고 홍보효과를 이용하는 정책을 잘 만들면 적은 비용으로 모두가 윈-윈하는 방법이 나올 수 있다. 필자가 과거 10년간 베트남에서 빗물 식수화 사업과 교육을 전개한 결과 빗물 이용에 관한 법이 제정됐다. 그 공로로 베트남 정부기관에서는 지난 1월 필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 가면 새마을운동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의 국격도 높아지고 한국 제품도 잘 팔린다. 새마을정신으로 직접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국익과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빗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그들에게 심어준다면 다른 기업의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 경제는 물론, 국익을 높이는 상승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것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빗물을 버리는 정책에서 모으는 정책으로 바꾼다면 우리나라의 가뭄과 홍수는 줄어들 것이다. 빗물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 같은 빗물 관리는 다행히 선진국에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개도국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식수 문제를 빗물로 해결해 주어 마음을 사고, 그 다음 경제적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사용하자. 최악의 자연조건에서 최고의 기술이 발생하듯이 가장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빗물 관리 기술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한무영 교수?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my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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