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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적신 책 한 권] 시골살이 해볼까, 아니면 말고…보따리 싸 불쑥 내려간 싱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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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이봄
163쪽, 1만1500원

‘주말이니 즐겁게 보내세요.’ 금요일 오후, 이렇게 끝나는 메일을 받았다. 의례적인 인사인데 그날따라 그 말의 뒷맛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주말은 주중의 반대말이다. 주중이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거나 아무튼 생업에 종사하는 시간이라면 주말은 그 반대의 어떤 시간으로 인식된다. 얼마간의 여유시간이 나야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자연스럽게 주말로 미루어진다. 대형마트에서 일주일 치 장을 보는 일도, 어른을 찾아뵙거나 가족나들이를 가는 일정도 모두 다 주말로 연기된다.

언젠가부터 주말을 즐겁게, 그러니까 ‘주말답지 않게’ 보내게 되면 심심하다고 느끼게 되었을까? 아무 것도 안 하고 심심한 주말을 보냈다는 것이, 내가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도무지 무슨 상관일까? 주말이라는 단어를 삶으로 대체해 본다. 이번 주말에도, 그리고 이번 삶에도, 바쁘지 못해 안달하는 이 도시의 동지들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주말엔 숲으로』다.

만화는 서른다섯 살의 번역가이자 도시에 사는 싱글 여성인 하야카와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란 뜬금없이 ‘시골에 가서 살아 볼까’ 하는 것이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확고한 의지의 결심이 아니라 그냥 되는 대로 한 번 해’ 보는 것이다. 숲도 있고 밭도 있는 시골마을로 터전을 옮겼다고 해서 귀농은 아니다. 그녀는 농사를 짓지 않고 번역일을 계속하며, 농산물은 전국 각지에서 구입해 택배로 받아먹는다. 도시의 친구들이 선물로 들고 오는 화려하고 달콤한 디저트도 기꺼이 기다린다. 인생의 전부를 개조하겠다는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그저 삶의 한 방향을 슬그머니 바꾸었을 뿐이다. ‘아니면 말고’의 마음으로, 혹은 ‘아니면 또 어때?’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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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소설가

만화는 하야카와의 변하지 않은 듯 조금씩 변해가는 숲 속 생활과 함께, 친구를 찾아 가끔 주말에 숲을 방문하는 세스코와 마유미의 도시 생활도 보여준다. 숲의 일상과 도시의 일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것은 누가 보지 않아도 피어있는 눈 속의 물파초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간,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 나뭇가지를 발견하는 시간, 어둠 속을 걸을 때는 발밑이 아니라 조금 더 먼 곳을 보면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간들이다. 비어있지도 꽉 차있지도 않은 그 조금 심심한 ‘숲의 주말들’이 도시인들의 ‘주중’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 만화의 백미일 것이다.

정이현은 …

1972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계간지 ‘문학과사회’ 통해 등단. 소설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등. 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 등 수상.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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