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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맛있는 음식처럼 바로 울림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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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는 꽃잎에서 찰나의 인생을 엿본다. 그 깨달음의 시집을 낸 김종해 시인.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파와 다진 마늘, 식초와 설탕, 아삭아삭 씹힐 정도로 잘게 썰어야 한다고 강조한 실파에 청양고추 …. ‘문단의 별미(別味)’로 소문난 김종해(75) 시인의 초고추장 레시피에 특별할 건 없었다. 오히려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신선한 재료와 그것들의 황금 배합비율을 선택하는 오랜 경험, 식도락 이력이 힘의 원천인 것 같았다.

75세에 열한 번째 시집 김종해 시인
2년 전 동생 김종철 시인 잃고
생성·소멸의 깨달음 시에 투영


시인은 시와 음식은 큰 상관 없다며 손사레 쳤으나 23일 오후 서울 내수동 자택에서의 인터뷰는 음식 얘기로 시작했다. 김씨가 최근 펴낸 열한 번째 시집 『모두 허공이야』(북레시피, ※하필 출판사 이름에도 ‘레시피’가 들어간다)는 그렇지 않지만 3년 전 열 번째 시집(『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을 그는 음식과 요리 얘기로 채운 바 있다.

손수 시장 본 생선회 안주에 흙냄새가 나서 좋아한다는 위스키 조니워커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1981년 전두환 정부 시절을 떠올렸다. 문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거 해외여행을 보내줬는데 입이 짧은 그는 음식이 맞지 않아 특히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여행 막바지 인도 뉴델리 한국대사관에서 한식 만찬을 베풀자 대사도 몰라볼 정도로 허겁지겁 배를 채운 후 느닷 없이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는 것. 부끄러움과 함께 우리 음식의 은혜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특별 반응은 고향 부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 체험과 관계 있다. 충무동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한 어머니의 잔치국수, 생선 내장 해장국 등을 혀끝이 아니라 가슴으로 맛보며 자란 탓이다. 식사는 그에게 정서적 체험이다.

말을 아끼던 그는 술기운이 오르자 비로소 털어 놓았다. 음식과 시의 상관 관계 말이다. “좋은 시는 두뇌로 만든 게 아니라 숙성이 된 거라야 한다”고 했다. 잘 익은 막걸리처럼 말이다. “입에 머금자마자 눈빛이 달라지는 맛있는 음식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즉각적인 울림을 불러 일으키는 시가 좋은 시”라고 했다. 시는 무엇보다 알기 쉬워야 한다는 것,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등 특유의 시론이 이어졌다.

이번 시집에는 2년 전 여름 세상을 뜬 동생 김종철 시인에 대한 시가 많다. 김씨는 “최하림·이문구·이성부·임영조·이탄 등 밤새 술마시며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죽어 사라질 때는 덜했는데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뜨자 죽음이 바짝 곁에 다가와 실체를 드러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마음이 내 시에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고 했다.

그 변화는 생과 사,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선(禪)적인 세계다. 대표적인 시가 첫 머리에 실린 ‘천년 석불을 보다’이다. 시인은 “그대 이생에서 몸 하나 가졌기 때문에/ 슬프고 기쁜 일 또한 그대 몫”이라고 생을 긍정한 후 “이생을 스쳐 간 사람들은 알고 있으리/ 그대의 몸 바깥에서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저문다는 것을”이라며 정 반대의 정황을 얘기한다. 차 있으면서도 텅 빈, 머리로 짐작은 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오묘한 세계다.

시인의 자택에서 멀리 보이는 서울시교육청 건물에는 마침 시인의 싯구절을 인쇄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 구절대로, 봄은 또 와서 흐르고 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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