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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치 밀린 건보료 고지서···"그동안 병원 안 갔단 증거"

가난한 죽음, 변사 현장 가다
강서·구로·양천구 990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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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죽음, 변사 현장을 가다
<상> 국과수 72시간 동행 취재
프로바 모르템, 죽음을 입증하라

‘평균 나이 62세. 열에 아홉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던 무직 남성’.

최근 1년간 서울 강서·양천·구로구에서 발생한 변사(變死)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들 3개 구에서 ‘시신 현장 검안’을 하고 작성한 990건의 시체검안 데이터를 본지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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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 이 지역 변사자 10명 중 9명(95%·943건)은 무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였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가난에 시달리던 저소득층이 많았다. 가장 어린 변사자는 만 1세 여아로, 생후 53일 만에 숨졌다. 13년 만에 얻은 첫아이를 친모가 남편과 육아 문제로 다투다가 익사시킨 경우였다. 변사 990건 중 타살·자살·사고사 등 ‘외인사’는 351건, ‘병사’는 325건, ‘사인 미상’ 312건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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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변사자 네 명 중 한 명(242명·24.4%)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절망과 좌절로 인한 죽음’이 많아 세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과수 이한영 법의관은 “1년간 현장 검안을 하면서 부잣집은 딱 두 번 가봤고 나머지는 사회적 약자였다”며 “그들은 죽을 때도 소외돼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바 모르템(proba mortem·죽음을 입증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원장 서중석) 법의관들은 매일 변사자들의 사인을 입증하기 위해 사건·사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생의 마지막 문턱을 넘은 망자의 곁에서 시신을 살피고 죽음의 원인을 규명한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고독사 시신부터 살해당한 시신까지. 본지가 국과수 법의관들의 72시간을 동행 취재했다.
 
 

지난 2월 15일 오후 2시57분. 양경무(48) 법의관이 서울 양천구의 국과수서울연구원 사무실에서 부검감정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끄러운 휴대전화 벨 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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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경찰서 형사팀 소속 경찰관이 다급하게 “변사 사건 발생. 40대 남성이 이대목동병원 후송 후 사망했다”며 출동을 요청했다. 검안 장비를 챙긴 양 법의관이 건물을 나섰다. 뒤따라 국과수 차량에 몸을 실은 기자에게 그는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1초라도 빨리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5분 뒤 도착한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시신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응급처치를 위해 메스로 잘라낸 옷가지, 심폐소생술 장치, 입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침상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마지막 순간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었던 걸까. 키 1m65㎝, 마른 체격의 강모(44)씨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두 눈을 감고 있다.

그는 서울 목동의 한 낡은 동네 의원 1층 계단에서 발견됐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숙인 채였다. 응급실로 후송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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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법의관이 가방에서 12㎝ 길이의 핀셋을 꺼냈다.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 상태를 확인한 뒤 몸에 나타난 시반(屍斑·사망 후 생기는 자줏빛 반점)을 체크했다. 손발이 뒤틀린 시신을 곧게 펴자 관절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옆에 있던 경찰과학수사대(과수대) 검시관이 입을 열었다.

“발견 당시 옷에서 약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휴대전화와 지갑이 없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 법의관이 강도 사건일지 모른다며 시신의 후두부와 몸 곳곳을 살폈다. 하지만 시신은 깨끗했다. “상처는 없지만 급사로 단정 지을 수만은 없죠.”

30여 분 뒤 검안이 끝나자 양 법의관은 곧바로 사건 현장인 동네 의원으로 이동했다. 이어 걸어서 2분 걸리는 강씨 집(다세대주택)으로 향했다. 방바닥엔 한 달치 약 봉투와 천식 흡입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강씨는 7년 전 이혼 후 여기에서 노모와 살았다. 최근 고혈압·호흡기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했다고 이웃들은 증언했다. 양 법의관은 시체 검안서의 사인란에 ‘미상’이라고 적었다. 검찰·법원의 판단에 따라 부검 여부가 결정된다.

“마지막 남은 아들까지 이렇게 가면 저는 어찌 삽니까.”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노모가 흐느꼈다. 노모는 강씨를 포함해 “자녀 3명이 모두 지병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집을 나서던 양 법의관이 마음에 걸렸는지 발을 돌려 노모의 휴대전화에 향후 절차 등을 적어줬다. 노모의 휴대전화 화면엔 숨진 아들의 가족사진이 무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 서울 화곡동 D여관, 16일 오전 10시40분

9.9㎡(약 3평) 남짓한 여관방엔 시취(屍臭)가 가득했다. 침대 위의 함모(39)씨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입과 코에선 피 거품이 계속 흘러내렸다. 복수가 차 부풀어 오른 배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시트를 적셨다. 방안을 살피던 이수경(43) 법의관이 침대 옆에 놓인 부탄가스 버너를 발견하고 가스가 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밸브는 단단히 잠겨 있었다.

함씨는 이 방에서 1년간 장기 투숙했다. 최근 두 달치 방값이 밀린 데다 이틀간 기척이 없자 여관 주인이 열쇠로 방문을 열었고, 시신을 발견했다. 그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방 안엔 먹다 남은 소주병 3개가 뒹굴었고 먼지투성이 작업복도 눈에 띄었다. 그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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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쪽에 건강보험료 체납을 알리는 누런 고지서가 눈에 띄었다. 연체된 금액은 10년치, 총 248만원. 이 법의관은 “10년간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부풀어 오른 배를 볼 때 음주로 간 손상이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 뒤 이뤄진 부검에서 밝혀진 함씨의 사인은 간경화와 심장질환. 이 법의관은 “한 번이라도 병원을 찾았다면 죽진 않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신월동 다세대주택, 17일 오전 5시42분

잠옷 바지에 왼손을 넣은 채 반듯하게 누운 천모(37)씨의 시신은 평온해 보였다. 시신 옆의 감색 넥타이만이 이곳이 살인 현장임을 알려줬다. 부인 정모(35)씨는 세 시간 전 남편을 넥타이로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재혼 이후 남편이 의붓딸을 함부로 대해 앙심을 품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남편 천씨는 어린 딸을 늘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시신을 살피던 이수경 법의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이 졸린 시신엔 저항 흔적이 있기 마련인데, 마치 편안하게 잠을 자는 모습이네요.”
 
이 법의관이 시신의 혈색을 확인하더니 “만취 상태인 사람을 누가 목을 조르면 저항도 못하고 사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천씨의 집 식탁에선 먹다 남은 소주병이 여럿 발견됐고 혈액 분석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로 확인됐다. 이 법의관이 목 주변에 난 상처를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상처가 일자 형태로 깔끔하게 나 있습니다. 보통 몸부림 때문에 불규칙한 형태로 나타나죠. 의식이 없을 때 살해당했단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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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최진실·세월호 시신 검안…가족인 것처럼 가슴 아팠다
② 저소득층 다세대·임대, 변사 사건 몰려 있네 

 
검안을 마친 이 법의관과 현장을 나섰다. 살인의 현장과 불과 20m도 떨어지지 않은 바깥 세상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 법의관이 입을 뗐다. “저희는 매일 죽음을 목격 하고, 이유를 찾습니다. 이 일은 망자가 아니라 산 사람들을 위한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살다가 갑자기 죽은 것도 억울한데 죽은 이유조차 모른다면 유족들 심정이 어떨까요. 그런 복장 터지는 진짜 억울한 죽음은 제가 허락지 않을 겁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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