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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알파고도 내 돈은 못 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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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퀀트 A에게 물었다. “금융판 알파고가 나오면 누구나 돈을 버는 세상이 올까?” A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노(NO).” (퀀트는 퀀터테이티브(Quantitative)의 약자다. 보통은 금융공학적 투자기법을 말하지만 금융공학적 투자분석·자문가를 일컫기도 한다. 요즘 국내 자산시장에서 뜨고 있는 금융판 AI(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의 원조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우선 그만한 수퍼 지능을 만들려면 큰돈이 든다. 웬만한 금융회사로선 투자하기 어렵다.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문제다. 한 증권사가 수익률이 40% 넘게 나는 AI 투자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뭐하러 고객에게 수수료 5%만 받고 돈을 굴려주겠나. 자기 돈만 열심히 운용할 것이다.

전례도 있다. 미국은 이미 주식 거래의 70% 이상이 AI 투자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곳이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다. ‘퀀트의 전설’로 불리는 설립자 제임스 사이먼스는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출신이다. 1982년 회사를 설립해 30년간 연평균 3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용되며 아무 고객이나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익의 대부분은 직원이 가져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이먼스는 2014년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88위(13조3000억원)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은 102위(약 11조9000억원)였다.

규모도 걸림돌이다. 아무리 완벽한 AI라도 무한대의 돈을 굴려 늘 40% 넘는 수익을 올릴 수는 없다. 예컨대 수익이 연 40% 나는 1억원짜리 상가가 하나 있다면 1억원만 굴릴 수 있을 뿐이다. 10억원을 고객에게 받아봤자 9억원은 40%의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AI가 등장한들 누구나 돈을 버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A는 한국 퀀트 1세대다. 2005년 국내 처음 발족한 D증권사 금융공학팀에 입사했다. 2007년이 전성시대였다.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붐으로 퀀트 품귀 사태가 벌어졌다. 연봉이 웬만하면 억대, 몇 억원씩 받는 고수 퀀트도 등장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퀀트로 돈을 굴리던 펀드들이 일제히 크게 까먹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퀀트펀드’의 수익률은 -1.25%로 사람(주식형펀드 수익률 -0.45%)에게 많이 뒤졌다.

A는 “알파고가 퀀트를 되살렸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를 비롯해 3~4개 증권사가 금융공학팀을 만들고 있다. AI 투자 붐이 불면서 다시 국내 퀀트들의 몸값이 들썩거리고 있는 것이다. 알파고가 일자리를 빼앗기는커녕 되레 늘려준 셈이다. A는 “짧게는 5년 안에 알파고급 투자프로그램이 나올 것”으로 봤다. 그 프로그램은 그간의 연산 착오와 투자 오류까지 수정했을 것이며 최적의 가격과 매매 타이밍까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A는 그러나 인간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급등장에서 정리하는 냉정(지혜)과 급락장에서 버티는 뚝심(배짱)은 오로지 인간의 영역”이라며 “이는 AI가 ‘딥러닝’을 통해 익힐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기야 알파고의 예를 봐도 그랬다. 이긴 건 알파고지만 뜬 건 이세돌이다. 역시 전례가 있다. 97년 IBM의 딥블루가 당시 체스 세계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다. 딥블루는 1초당 110억 회의 연산을 수행했다. 당시 컴퓨터 공학으론 불가능한 수준, 그래서 기적으로 불렸다. 하지만 딥블루는 체스만 잘 뒀다. 지능(IQ)검사에선 0점을 받았다. 그러자 경기 후 관심은 카스파로프에게만 쏠렸다. 딥블루는 인터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I 과학자들은 그때 깨달았다. 엄청난 계산 능력이 지능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A가 안심하기는 이르다. 알파고가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양날의 칼이다. 한쪽 날은 가난과 질병과 무지를 잘라내면서 다른 한쪽 날은 자신의 창조주인 사람의 목을 겨누고 있다.” 이론물리학계의 거장 미치오 카쿠의 말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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