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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공포를 알린 이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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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자벤템 공항에서 테러 직후 희생자의 모습. [케테반 카르다바, AP=뉴시스]

이 노란 자켓을 입은 여성의 사진이 벨기에 브뤼셀 테러의 상징이 됐다. 찢겨져 나간 노란 옷과 한 짝 밖에 남지 않은 신발. 얼굴에 흐르는 피에 더해 공포에 휩싸인 눈은 ‘테러’라는 말이 단순히 단어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와 중앙일보 등 세계 다수의 언론은 이 한 장의 사진을 벨기에 테러를 상징하는 1면 사진으로 썼다.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시리아 난민의 비극’의 상징이 됐듯, 브뤼셀 테러라고 하면 자벤템 공항에서 찍힌 이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2일(현지시간) 이 한 장의 상징적 사진이 나오게 된 스토리를 보도했다. 사진을 찍은 이는 동유럽의 소국 조지아 공영방송의 특파원 케테반 카르다바(3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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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공영방송의 케테반 카르다바 특파원

카르다바는 테러 당시 스위스 제네바로 가던 길이었다. 러시아와 그녀의 조국인 조지아와 관련된 리포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폭발이 발생했다. 문이 부서지고 창문이 깨져서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카르다바는 “먼지와 연기가 가득했고 내 주변에 사람들의 다리도 사라져 버렸다. 피가 낭자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카르다바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만져봤고 다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녀는 의사의 도움을 외쳤지만 근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폭발 소리가 들렸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나 또한 안전한 장소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며 “달리면서 기자로써 이 현장을 찍어서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현장에 있는 기자는 나뿐이라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브뤼셀 테러의 상징이 된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카르다바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 노란 자켓의 희생자 사진이었다. 카르다바는 “그녀는 쇼크를 받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총격소리도 사라졌고 울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고 타임지에 말했다. 카르다바는 그녀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희생자를 돕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며 “당신이 기자라면 의사를 찾는 것보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테러 현장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어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현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전 벨기에 농구 선수인 세바스티안 베린의 사진도 찍었다. 카르다바는 “다리를 다친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었고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사실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촬영 후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폭발... 도와줘"라는 글을 올린 후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카르다바는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며,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고 되뇌며 공항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리포트를 취소하고 브뤼셀에 남아 테러 이후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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