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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아이를 죽이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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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선 주변 야산을 개발해 주택가로 바꾸는 공사가 벌어졌는데 그곳에선 종종 땅에 묻힌 아이들의 백골이 나오곤 했다. 왜 아이들이 관도 없이 묘지도 아닌 곳에 묻혀 있는지는 궁금했지만 누구도 그들이 왜 죽었는지를 궁금해하진 않았었다.

부모들이 아이를 학대해 죽이고 야산에 묻었다고 했다. 창원의 일곱 살 여자 아이, 평택의 원영이, 청주의 네 살 여자 아이가 그렇게 죽고 묻혔다. 문득 40여 년 전 그 아이들의 백골이 생각났다. 그중에도 이런 사연을 가진 백골이 있지 않았을까. 이 아이들의 죽음도 그들처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가운데 묻힐 수도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벌어진 장기결석 아동과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연이어 나온 아동학대 사건에 경악하고 있는 사이에도 한 아빠는 3개월 된 아이가 운다고 바닥에 내팽개쳐 죽였고, 아이의 배를 걷어차 죽인 이모도 있었다. 석 달 남짓 동안 보도된 학대 사망 아동만 아홉 명이다. 학대로 죽어간 남의 집 아이들 얘기는 별다른 경각심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경찰은 올 입학 대상 아동 중 행방이 묘연한 19명, 4~6세 영·유아 중 예방접종 기록조차 없는 809명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조만간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대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이번 일로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동안 일각에서 주창해온 ‘아동학대에 대한 공권력의 적극 개입’과 ‘부모 교육’이 이젠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경찰은 아동학대 전담반을 만들었고, 아동보호시설도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지 여부를 지방자치단체에서 결정하기로 했고, 여성가족부는 부모 교육의 의무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뒷골이 당긴다. 제도적 장치만 마련한다고 아동학대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다. 그 이유는 먼저 폭력의 정도. 학대 아동이 죽음에 이른 방식은 끔찍했다. 거구의 아버지가 아이를 샌드백 치듯 때리고, 추운 겨울 아이에게 락스를 뿌려 목욕탕에 가두고…. 그런데 부모들은 죽을 줄 몰랐다고 항변한다. 그래서 살인죄 적용도 어렵게 한다.

얼마나 사람을 학대하면 죽을 수 있는지 무지한 것이다. 무지를 키우는 요인도 있다. 우리 사회엔 폭력성을 부추기는 콘텐트가 풍부하다. TV와 영화에선 폭력 장면을 빼면 볼 게 없을 정도다. 실제라면 다섯 번 이상은 죽을 정도의 폭력에도 주인공은 멀쩡하게 일어나 다음 날 또 다른 폭력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이런 미디어 폭력이 실제로 시청자의 폭력성을 증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1960년 이래 무수히 나왔다. 한쪽에서 폭력을 부추기면 다른 쪽에선 제지하는 메커니즘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치는 없다.

또 아동학대는 인류의 뿌리 깊은 유산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였던 정신의학자 앨리스 밀러는 “훈육을 위해 사랑의 매를 든다는 건 거짓”이라고 했다. 모세의 10계명 중 ‘부모를 공경하라’는 4계명 이래 부모가 비합리적 폭력을 행사해도 자식들은 이를 수용하고 부모에게 예속되는 학대의 사슬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훈육은 부모의 권리이고 아이는 부모의 사유물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 속에 인류의 습관이 되었고, 학대 가족도 훗날 용서와 화해로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신화를 재생산했다. 그러나 밀러는 “용서는 치유를 낳지 못한다”고 했다. 용서해야 할 일을 당한 사람은 그냥 병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은 멀다. 최악의 부모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물론 시급하다. 한데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아동학대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촘촘한 매뉴얼을 만들고 인류사에 면면히 내려온 아동학대의 유산을 뿌리뽑으려는 철학적 고민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아이와 부모는 각각의 객체로 존중해야 할 상대이지 서로 예속된 관계가 아니라는 의식개조 작업까지 이뤄져야 한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려선 안 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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