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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과잠’이 말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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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장년층 이상은 잘 모를 수도 있는, 과잠이라는 게 있다. 학과 잠바(점퍼)의 준말이다. 대개 몸통과 팔 부분의 색이 다른 야구 점퍼 스타일의 옷이다. 등에 대학교와 학과의 이름이, 팔에 학교 문장과 학번이 새겨져 있다. 요즘 지하철이나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옷이다. 신입생, 그리고 새내기와 구별되기를 원하는 2학년생이 주로 입기 때문에 봄이 제철이다. 그래도 뭔지 모르겠다면 영화 ‘검사외전’에서 사기꾼 강동원이 서울대생인 척하며 입었던 옷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 옷이 대학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가격은 개당 5만원 안팎. 찬 바람 부는 간절기에 입기에 안성맞춤인 두께라서 ‘가성비’가 뛰어나다. 학교·학과에 대한 소속감을 높여 준다는 게 핵심 가치다. 고교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학·학과의 이름이 새겨진 이 옷에는 ‘입결(입시 결과의 준말, 합격 커트라인을 의미)’ 서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터넷에는 이런 글들이 있다. “과잠은 나의 ‘가격표’였다. ‘OO대를 다니는 학생이니 수능 성적은 대충 3% 안에 들었다. 그러나 썩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라는 것을 과잠 하나로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학교 가기 위해 난 지하철 7호선을 탄다. 7호선이 지나는 역은 XX대역, △△대역 등 다양하다. ◆◆대생들은 XX대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지하철에 ◆◆대생이 과잠을 입고 나타나면 XX대와 △△대생들은 입었던 과잠을 슬그머니 벗는다.” 이런 글도 있다. “난 항상 과잠을 입고 다닌다. 안 그러면 XX대생인 줄 알 것 아닌가.”

최근 서울대에 출신 고교(평균 성적이 좋은 서울 강남의 한 학교) 이름까지 새긴 과잠이 등장했다. 일부 특목고생들이 ‘학잠’을 맞춰 입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방의 한 대학은 과잠에서 학교 이름을 빼버렸다.

신문에 실린 과잠 비판 칼럼에 한 학생이 이런 글을 달았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 들어간 학교에 소속감 좀 느끼고 싶고…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이게 뭐 별난 일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를 만들어놓은 건 지금의 대학생들이 아니라 어른들인데, 요즘 애들이 과잠 입고 좀 돌아다닌다고 왜 어쩌고저쩌고 구시렁대는 건지 모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 얄팍한 우월감과 괜한 열등감이 교차하는 이런 야만적 서열 사회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그래서 그 옷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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