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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왜 신사동 그 길만 가로수길로 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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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신사동 가로수길의 모습. 가로수길을 따라 심어진 140여 그루의 가로수가 보인다. 80년대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로 조성된 이 길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명소가 됐다. 김경록 기자



강남은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구획된 격자도시다. 길은 폭에 따라 광로, 대로, 소로로 나뉜다. 하지만 비슷비슷해서 초행자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격자형 도시에서 폭은 길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지 못한다. 이따금 길을 막아서는 건 도로를 잇는 횡단보도다. 격자형 도시 강남엔 유독 횡단보도가 많다. 보행자가 단 몇 분이라도 멈추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요행이다. 판에 박힌 강남의 길, 하지만 그중에서 ‘율법’을 거스르는 길이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2차선 소로에 심은 가로수 140여 그루
좁은 도로, 낮은 건물로 거목처럼 보여
간판 가린다 독특한 풍광 훼손 말아야



토요일 오후 신사동 가로수길. 얼어붙은 건물들 사이로 실낱같이 파고든 봄볕을 즐기러 나온 방문객들이 길을 막아선다. “저기요,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며 인파 사이를 유영한다. 과거와 다르게 지금 가로수길은 번화한 아케이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로수길은 뉴욕의 소호에 비견할 만한 문화거리였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나 청담동 갤러리 거리와는 달랐다. 럭셔리한 멤버십 회원들이 아닌 세련된 단골들이 대포 한잔을 기울이는 곳이었다. 이색적인 편집숍과 카페가 즐비하고 다양한 그룹이 무리 지어 다니며, 골목골목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문화를 일궈냈다.

그 효과는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고 삽시간에 대기업 광고판과 유명 브랜드의 쇼윈도가 가로수길을 장악했다. 지금은 한류를 타고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과 쇼핑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곳은 과거와는 다른 범주의 도시공간으로 변화했다.

 
겨우 폭 11m 길에 발달한 독특한 상권

도시적 관점에서 볼 때 가로수길처럼 좁은 도로에 상권이 발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도시에서 길의 폭은 사람의 통행량에 비례한다. 그래서 명동 거리처럼 큰길은 자연스레 중심 상권이 된다. 그러나 가로수길은 특이하게도 통행량과 도로가 비대칭이다. 왕복 2차선의 소로에 불과하다. 실제로 가로수길에 인접한 도산대로 11, 15길은 가로수길과 유사한 규모지만 시장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도산대로와 가로수길의 차이는 가로수의 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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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가로수는 1970년 이후 강남 개발과 함께 조림됐다. 대부분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대로변에 식재됐다. 강남에서 가로수가 소로까지 확대되지 않은 것은 강남이 차를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은 남북으로 700m 정도, 낮고 노후화한 건물과 신축 건물이 혼재한 폭 11m 남짓의 소로다. 그리고 소로를 사이에 두고 어깨를 맞댄 은행나무가 회랑처럼 줄지어 있다. 강남의 도로 체계상 소로에 가로수를 심은 것은 의외다. 가로수는 대로를 중심으로 조림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의 반전은 80년대 현대고의 신설과 현대아파트·미성아파트로 부유층이 유입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 140여 그루의 은행나무를 조림한 것도 이 시기다. 강남에 정착한 이들에게 인접한 가로수길은 그들의 유일한 산책과 여가 공간이었다. 그 덕분에 가로수길은 수령 30년 이상인 은행나무가 즐비한 길이 되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가로수길은 강남의 평범한 소로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이 떠오르는 착시 공간

일부 전문가들은 가로수길이 명소가 된 것은 잘 정비된 가로수와 도시 조직(fabric), 이색적인 건물을 앞세운 유명 브랜드가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말은 타당하다. 하지만 강남에서 신사동 가로수길보다 더 웅장한 규모의 가로수와 대규모 상업 공간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의 진단이 정확하다면 강남은 죄다 가로수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강남에서 유일하게 가로수길로 불리는 곳은 신사동 가로수길뿐이다. 왜일까. 가로수길의 은행나무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가로수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에서 본 변화무쌍한 착시 공간을 떠올린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육체를 잃고 꿈과 현실의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곳에 ‘드림 머신’이 있다면, 그것은 길을 압도하는 가로수다. 가로수의 존재감은 보행자에게 왜곡 현상을 경험하게 한다. 소인국의 걸리버처럼 도로의 가로수가 거목으로 둔갑한다. 걸리버도 주변의 조건에 따라 신체적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던가.

역설적으로 가로수가 없어야 할 규모의 공간에 가로수가 들어서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오히려 보행자에게 특별한 공간 경험을 준다. 가로수의 낯선 비례감과 좁은 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유명 브랜드, 대기업의 간판이 혼재되어 이국적인 도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보행자가 가로수길에 매혹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걸리버와 같은 은행나무가 열병해 있다.

 
가로수에 번호나 이름을 달아준다면

얼마 전 가로수가 가게의 간판을 가리고 은행나무 열매가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몸통을 제외한 가지와 줄기를 몽땅 베어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소식에 나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 등장하는 ‘쓸모없는 나무’가 떠올랐다. 소요유 편에서 혜자는 자신에게 비틀어진 가죽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서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투덜댄다. 이 말에 장자는 “왜 당신은 도끼로 베어 쓰는 것만을 나무의 쓸모라고 보는가. 광활한 들판에 심으면 그늘이 되고, 그 아래서 자고 쉬고 놀 수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 나무는 비틀어진 덕에 베어질 걱정도 없다”고 답한다. 이 말은 쓰임에 대한 인간의 편협된 시각을 꾸짖는다.

가로수의 가지와 줄기를 잘라내 가게 간판이 눈에 더 잘 띌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길의 폭이 넓어지지도 않고, 걸어 다닐 때 인파에 밀리며 느끼는 불편도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그늘도 없는 건조한 도시 공간만 남을 뿐이다.

만약 가로수길에서 가로수를 베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가로수가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나무의 다양한 쓸모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의 쓰임은 무한하고 다양한 용도로 재생됨으로써 도시 공간과 교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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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옆에 벤치를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건축가 곽희수가 그려본 벤치가 있는 가로수길의 모습이다.


가로수에 벤치를 설치하는 것은 어떨까. (스케치 참조) 거리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람 중심의 길이 되고 문화가 생긴다. 가로수 아래 벤치는 단순한 의자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거리의 정류장이 되고, 거리의 휴게소가 되고, 거리의 관람석이나 놀이터가 된다.

또 다른 쓰임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로수가 거리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무에 번호를 매기거나 이름을 붙이는 거다. 만날 약속을 하면서 “3번 가로수 앞에서 만나자”고 하는 게 “○○가게 앞에서 만나자”라고 하는 것보다 낭만적이지 않을까. 빼곡한 건물 틈에 숨어있는 간판을 찾는 일은 가로수를 정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가로수에 식별 가능한 번호나 이름을 붙인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도시의 나무와 공원의 나무, 그리고 산의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목적과 쓰임새가 있다. 도시의 나무는 사인, 가구, 조명 등 그 쓰임에 따라 다양한 장소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장소에 따라 쓰임이 바뀌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나 중동 지역에서는 2m 높이의 포도·무화과·올리브 등 유실수를 거리에 심어 굶주린 시민들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100리마다 소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를 심어서 이정표로 삼았다. 싱가포르와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거리의 나무에 이름표를 달고 그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나무를 가꾸도록 유도한다.

도시의 나무는 단순히 조경을 담당하는 도구가 아니다. 거리를 지나는 도시민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주고 사람들 간의 화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 속에 나무 한 그루의 쓰임을 잃어버렸다. 나무 한 그루의 쓰임새를 찾을 수 있을 때 도시는 수많은 가로수길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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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곽희수(49)는 루트하우스(원빈 집), 테티스(고소영 빌딩)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모켄(MOKEN) 펜션 등으로 대중과 친숙한 건축가이다. 현재 이뎀도시건축 대표다. 서울시건축상·한국공간문화대상·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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