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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신의 신선한 MLB] ⑦ “와썹 맨” 박병호의 영어 실력

지난주 박병호 선수는 ‘홀로서기’를 해야 했습니다. 통역원이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캐나다를 다녀오느라 이틀 동안 박병호 선수를 돕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10일 미네소타 트윈스 캠프가 있는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를 찾았는데요. 라커룸에 가보니 박병호 선수가 덩그러니 혼자 있더군요. 이 말을 전해들은 강정호 선수가 웃으면서 놀렸답니다.

“형도 왕따가 된 기분을 좀 느껴봐. ㅋㅋ”

통역원이 없으면 동료들이 말을 걸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죠. 야구를 할 때 필요한 얘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겠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었습니다. 박병호 선수는 “어쩌겠어요? 혼자 해야죠”라고 하더군요.

제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박병호 선수를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병호 선수는 왕따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칭 할 때도 옆 선수와 얘기하고, 수비 훈련을 할 때도 대화를 이어갑니다. 타격훈련을 할 때도 배팅케이지 밖에서도 쉴 새 없이 영어를 씁니다.
 
 

박병호 선수가 톰 켈리 수비코치로부터 포구 자세에 대해 배우고 있는 모습이에요. 통역원이 따로 없어도 대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요? 영어 잘하나 봐요.”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 엉터리 영어)예요.”

엉터리라고 해놓고는 ‘브로큰 잉글리시’라고 말하다니. 저런 표현도 가볍게 할 정도의 실력이니 통역원이 없어도 큰 불편이 없어 보였습니다.

미국 신문 '스타트리뷴'도 박병호 선수의 영어 실력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그 기사에서 박병호 선수가 인터뷰를 하다 ‘LOL’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주목했습니다. 인터뷰를 한 미국 기자는 “박병호는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LOL(Laughing Out Loud) 같은 온라인 용어도 적절하게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인터뷰를 하기 전에 미국 기자가 제게 통역을 부탁했는데, 이상하게 제가 '왕따'가 됐습니다. 통역 없이도 박병호 선수는 질문을 거의 알아듣고, 대답을 했거든요. “미국 와서 뭐가 좋은가?”라고 물으면 “스테이크”라고 답합니다. “한국보다 스테이크를 싸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라고 길게 말하지 않고 키워드만 정확히 전하는 거죠. 그럼 다음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박병호 선수의 영어 실력에 대해 팬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데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가장 잘하는 건 틀림없습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영어공부를 하긴 했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한 것은 더 오래 전부터라고 하네요.

“LG 시절부터 외국인 선수와 얘기하는 걸 좋아했어요. 콩글리시를 하다가 막히면 통역원에게 물어보면 됐죠. 영어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말이 통한다고 마음까지 통하는 건 아닐 겁니다. 박병호 선수는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료 선수들의 풀네임과 개인적 성향을 암기과목 공부하듯 달달 외웠다고 합니다. 웬만한 트리플A 선수들까지 다 ‘공부’를 했다고 하네요. 이건 참 박병호 선수답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커룸에선 어깨춤도 춘다고 합니다. 흥이 많은 남미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왓썹, 맨(What’s up, man)”이라며 몸을 들썩였다고 하네요. 박병호 선수가 힙합리듬을 타며 어깨를 흔드는 장면, 상상이 되시나요? 이건 참, 박병호 선수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만큼 노력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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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마이어스 해먼드 스타디움에 용품숍에 있는 박병호 선수 유니폼입니다. 잘 어울리나요? [사진 김선신]


필 휴즈가 박병호 선수를 비롯한 동료들을 집에 초대한 사연은 다들 알고 계시죠? 구단 직원이 박병호 선수에게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파티를 즐기는 문화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팀에 빨리 녹아들 것”이라고 했답니다. 필 휴즈뿐 아니라 브라이언 도저 등도 박병호 선수와 교류한다고 합니다.

팀에 잘 녹아드는 건 야구를 잘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시범경기 첫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한 박병호 선수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메이저리그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의 베이스러닝까지 화제가 됐는데요. 10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내야 안타를 때렸고, 출루해서도 민첩한 주루를 보여줬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에 코칭스태프와 현지 미디어도 많이 놀란 것 같았습니다. 박병호 선수는 “잘 뛰지 못할 것처럼 생겨서 잘 뛰니까 수비수들이 당황해서 실책을 하는 거 같아요”라며 웃더군요.
 
 

수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병호 선수는 프랜차이즈 스타 조 마우어와 함께 1루 수비를 함께하는데요. 훈련하면서도 둘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마우어는 “병호, 트윈스의 내야 수비는 이런 걸 중시해. 이렇게 움직이면서 자리를 잡아야 하고…”라며 조곤조곤 얘기해줬습니다. 마우어도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국내외 언론에서는 ‘박병호가 지명타자로 기용될 것’, ‘마우어와 1루를 나눠 맡을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시범경기 성적이 좋으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요. 그러나 박병호 선수는 전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제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단장님이나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말이 전혀 없어요. 저는 제 입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계속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입장이에요.”

환경이 낯설고 어색해도, 홈런을 펑펑 쳐도 박병호 선수는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었습니다. “시범경기 활약이 좋으니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시범경기에서 잘 친다고 해도 전 절대 마음을 놓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시범경기에서 못 쳐도 ‘정규시즌에서 잘 치면 되지’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보다는 모든 상황에서 최건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제가 장타자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박병호 선수다운 대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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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을 입고 박병호 선수 앞에 섰습니다. [사진 김선신]


<플로리다=김선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사진·영상 김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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