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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① 덧셈과 뺄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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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레슨을 받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깨 힘 빼라’입니다. 전성기 때의 어니 엘스나 박세리의 스윙을 보면 참 부드럽습니다.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것 같지만 거리도 많이 나갑니다. 정확성도 뛰어납니다. 공이 자석처럼 착착 달라붙듯이 깃대 근처에 떨어집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맞추고, 세게 치려고 긴장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근육이 경직돼서 스윙이 뻣뻣해지고 뒤 땅을 치거나 빗맞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골프는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주말 골퍼에게는 힘 빼고 부드럽게 스윙하는 것이 평생의 숙제입니다. 어디 골프만 그럴까요. 우리네 삶도, 예술도 그렇습니다.

근육의 힘을 뺀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다루는 데서 비롯됩니다. 긴장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잘 하려고 조바심을 갖다 보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무슨 일이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해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옷을 벗고, 다리를 뻗고 앉는다’

‘해의반박(解衣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자(莊子)의 ‘전자방(田子方)편’에 나오는 말로 ‘옷을 벗고, 다리를 뻗고 앉는다’는 뜻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때 송의 원군(元君)은 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공을 초청해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다들 일찍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먹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늦게 온 화공 하나가 원군에게 잠시 허리를 숙인 뒤 거침없이 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방약무인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군이 사람을 시켜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보게 했더니 “옷을 벗고 다리를 뻗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원군은 무릎을 치며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화공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해의반박은 자연을 따르고 세속적인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유교가 ‘치자(治者) 철학’이라면, 도가사상은 예술가의 철학입니다. 동양의 시(詩)·서(書)·화(畵)의 세계에서 해의반박은 예술가가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해의반박의 경지가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가 산수화입니다. 호방하고 자유로운 붓질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사상이 잘 드러납니다. 애써 꾸미지 않지만 사실적이고, 수묵화에서도 색이 느껴지고, 여백조차 사유의 공간이 됩니다.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대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녹아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는 대개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치며 성장합니다. 첫째는 사람이나 사물의 형상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동양미술에서는 이를 형사(形似)라고 합니다. 그 다음은 대상 자체에 담겨있는 고유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사(神似) 또는 전신(傳神)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상에 화가 자신의 뜻을 부치고(寓意·우의), 정을 펴내는(抒情·서정)것입니다.

그리고 표현 기법에서는 처음에는 정교하고 현란한 것으로 시작해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평이하고 담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는 서양화에서 말하는 구상과 추상의 개념과도 비슷합니다. 동양화 이론에서는 이를 ‘熟(숙)’과 ‘生(생)’으로 표현합니다. ‘熟(숙)’이란 ‘익을 숙’자 입니다. 오랫동안 기본기를 닦아서 형사(形似)가 일정 경지에 오른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生(생)’이라는 한자의 개념이 재미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날 것’ 또는 ‘설익었다’는 뜻인데 이를 그림의 최상위 개념으로 둔 것입니다. 동양철학과 동양미학의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른바 마음의 근육, 감성의 근육에서 힘을 뺀 자유로운 경지를 말합니다.

비슷한 말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 있습니다. ‘큰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졸(拙)은 역설적으로 사용된 말입니다. 정말 좋은 그림은 마치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설 익은 듯한’ 구석이 있다는 뜻입니다. 추사의 세한도를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소나무 밑에 있는 집을 자세히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서툴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세한도를 보면서 집을 잘못 그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사진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사진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덧셈이란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많은 요소를 넣고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달리 뺄셈은 화면을 단순화시켜 추상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덧셈이 ‘숙(熟)’이라면 뺄셈은 ‘생(生)’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좋은 구도는 사진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하나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뺄셈의 사진은 압축되고 정제된 어느 한 부분을 포착해 전체를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감상자는 이미지에 살을 붙여가며 보이지 않는 장면까지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감상의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풍경에 압도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덧셈의 사진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저것 다 넣다 보면 구도의 틀이 무너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체도 보고, 부분도 봐야 합니다. 풍경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흥을 형용사 한마디로 정리하거나 연상되는 뭔가를 떠올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덧셈에서 뺄셈으로, 추상성이 강조됩니다.

감상자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게 만들어야

몇 년 전 가을, 전북 임실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옥정호에서 피어 오른 물안개가 산을 타고 넘습니다. 물안개는 운해가 돼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아찔한 풍경을 연출해 냅니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운 풍광이 넓은 지역에 걸쳐 펼쳐졌습니다. 어느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렌즈의 화각이 자꾸만 넓어졌습니다.

잠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다시 풍경을 살폈습니다. 일정한 농담의 차이로 첩첩이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수화에서나 볼 듯한 아스라한 풍경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의 깊이감이 느껴졌습니다.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모노톤의 사진이 수묵화 분위기가 납니다. 이 사진은 우리의 수묵화가 얼마나 사실적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사진에 ‘선(線)’과 ‘선(禪)’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주기중기자 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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