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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택시기사와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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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김택시. 남편이 내게 붙인 별명이다. 그만큼 택시를 자주 탄다. 사건이나 사람 찾아 다니는 게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한번은 신용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짧은 시간에 택시요금이 집중 결제돼 카드 분실이 의심된다며. 택시를 탈 땐 “빨리 가주세요”란 말도 꼭 붙인다. 이런 말에 화가 난 택시기사가 반포대교를 내달린 뒤 손님을 끌어내려 때렸다는 뉴스를 내 손으로 쓴 뒤 한동안 조심했지만 조급병이 금세 도졌다.

며칠 전 그다지 서두를 일 없는 퇴근길에도 그랬다. “반포동요. 빨리 가주세요.” 습관적인 부탁에 중년의 택시기사는 자신의 운전경력부터 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이른 나이에 운전대를 잡았으며, 이 일로 벌어 먹여 아들딸을 키웠다는 흔하디흔한 스토리였다.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이 시간에는 올림픽대로가 나아. 노들로로 빠지면 엄청 막혀요.” 짜증을 내기보단 약간 들뜬, 자신감에 넘치는 목소리였다.

그때였다. “잠시 후 우회전, 노들로를 경유하는 길입니다.” 익숙한 ‘언니 목소리’가 택시 안을 울렸다. 내가 휴대전화 통신사 내비게이션 앱을 켠 게 문제였다. 무음으로 돼 있는 줄 알았는데 아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다. “걔가 뭐래요?” 기사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노들로로 가라네요. 올림픽 중간이 많이 막히나 본데….” 끊임없이 ‘우측도로’를 외쳐대는 내비 소리에 그 말 많던 기사는 입을 굳게 닫았다.

최적길이라더니 이놈의 내비. 노량진 수산시장 쪽 차량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휴대전화 내비의 도착 예상시간이 슬금슬금 늘어났다. 양해를 구하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한동안 직진 서행길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늦어 늦어. 요즘 인공위성이니 실시간이니 해도 사람보다 판단이 늦어요.” 내비의 패배에 생기를 되찾은 기사는 요금까지 100원 깎아줬다.

알파고와의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의 미소를 보며 이날의 택시기사를 떠올렸다. 둘에게 모두 고마웠다. 어마어마한 인공지능에 당당하게 맞서줘서, 때로는 승리할 수 있다는 기쁨을 나눠줘서. 미국 뉴욕타임스와 중국 신화통신에서 이미 인공지능 로봇이 기사를 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5장(1000자)짜리 기사를 1분 안에 써낸다고 한다. 기자인데도 유난히 손이 느린 내가 1시간 정도 걸릴 분량이다. 나는 이세돌 9단과 택시기사처럼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삶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기사 쓰는 로봇 ‘드림라이터’보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미생에 나온 대사처럼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니까.

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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