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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의 낙원’ 야외서 매달 공연, 무료로 악기도 가르쳐준다

l 변화하는 서울 낙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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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역사의 낙원상가는 없는 악기가 없는 ‘악기 천국’이다. 최근 낙원상가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상가 2층에 카페가 문을 열었고, 4층에는 야외 공연장, 합주실도 들어섰다.

악기에 대한 낭만은 누구나 품고 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기타나 피아노를 배워보겠다는 말, 많이도 들었다. 용기를 내 낙원상가를 찾아가 기타를 샀지만 집안 한쪽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게 하는 사람도 많을 터이다. 비록 그 기타가 성가신 짐으로 전락했을지라도 음악 덕분에 설렜던 시절은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지난 3일 낙원상가를 찾았다. 오래된 악기를 구경하고, 50년 세월의 상가에 서린 이야기를 들었다. 낙원상가는 악기만 파는 상가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박물관이자 서울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낙원상가가 직장인을 위해 무료 강습과 야외 공연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팽개쳤던 꿈이 다시 꿈틀거렸다.
 
48년 역사의 악기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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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와 연결된 ‘ㅁ’ 자 형의 낙원아파트.

“낙원상가는 꿈에서 만져도 오금이 저릴 것 같은 온갖 비싼 악기들이 다 모여 있는, 말 그대로 뮤지션들의 낙원이다.”

악기 좀 만져본 이들은 소설가 손아람의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에 나온 이 문장을 이해할 것이다. 낙원상가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하는 이들이 선망하는 공간이다. 1000원짜리 트라이앵글부터,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을 위해 특수 제작한 1000만원을 호가하는 어쿠스틱 기타까지 없는 악기가 없다. 호황기인 1980년대에는 악기상 300여 곳이 밀집해 ‘세계 최대의 악기 상가’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종로 한복판에 낙원상가가 들어선 건 68년이었다. 지상에 종로와 율곡로를 잇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주상복합 건물을 올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현재 구조는 이렇다. 2∼3층은 악기 상가, 4층은 극장, 5층은 사무실, 6~15층은 아파트다.

낙원상가에 아파트가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1층 입구에 ‘낙원삘’이라 쓰인 현판과 탱크처럼 튼튼해 보이는 독일제 엘리베이터가 범상치 않았다. 아파트는 천정이 개방된 ‘ㅁ’ 자 형으로, 홍콩 영화에서 봤던 건물 같았다. 건물 중정(中庭)에 거대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건물을 지을 때 작업자가 새겼다고 한다.

낙원상가가 처음부터 악기 전문 상가였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옷가게·볼링장·당구장·카바레 등이 있었다. 몇 안 되는 악기점을 찾는 고객은 미 8군에서 공연하던 악사와 통기타 가수 정도였다. 79년 파고다(탑골)공원 담장정비사업의 여파로 인근 파고다 아케이드(83년 철거)에 입주해있던 피아노 상점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낙원상가는 악기 전문 상가로 거듭났다.

80년대에 낙원상가는 악기 상가인 동시에 인력시장이었다. 음악인들은 상가로 모여 소위 ‘밤무대’에서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렸다. 상가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자 터줏대감 상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60~70년대만 해도 악기 전문 수리점이 없었어. 종로 3가 금은방에 관악기 수리를 맡기고 그랬다니까(신광악기 지병옥(77) 사장).”

“태원(기타리스트 김태원)이, 무현(기타리스트 손무현)이가 자주 찾아왔지. 그땐 그들도 툭하면 고장 나는 싼 기타를 썼거든(세영악기 이세문(60) 대표).”

 
변신 거듭하는 낙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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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짜리 국수를 파는 지하 식당.

90년대 중반부터 낙원상가는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노래방이 등장하고 전자음악이 유행하면서부터다. 98년 외환위기 때는 상가를 떠난 상인도 많았다. 이후로 유행하는 음악이 바뀌면서 낙원상가도 변화를 거듭했다. 클럽에서 쓰는 디제잉 장비, 홈 레코딩 장비를 파는 업체가 부쩍 늘었다. 최근에는 아코디언과 우쿨렐레가 많이 팔려나간다.

종합악기점 ‘코스모스악기’는 최근 상가 3층에 아코디언 전문 매장을 열었다. 은퇴한 실버세대 사이에서 아코디언 연주가 유행해서다. 고영식(54) 이사는 “남는 시간에 등산만 할 수 없으니 악기라도 배워보자는 장년층이 늘고 있다”며 “아코디언은 휴대하기 좋으면서도 과학적인 악기여서 치매 예방에 좋다는 인식도 퍼졌다”고 소개했다.

실버세대의 영향력은 극장에서도 확인됐다. 69년 낙원상가 4층에 개관한 허리우드극장은 2009년 실버 영화관으로 변신했다. 아련한 옛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관객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다. 18일 현재 55년 개봉작 ‘줄리어스 시저’가 상영 중이다.

상가 지하에는 식당·슈퍼마켓·정육점 등 100여 개 점포가 모여 있다. 최근 TV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백반집도 있었지만, 허름한 국숫집에 더 끌렸다. 26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엄마김밥’의 정옥순(64)씨는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찾아오는 단골을 생각하면 가격을 더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의 마음처럼 국수 국물이 찐했다. 잔치국수·김밥 각 2000원.

현재 낙원상가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을 갖춘 4층 하늘공원에서 오는 26일부터 매달 2회 이상 공연을 진행한다. 주로 어쿠스틱 밴드가 출연할 예정이다. 직장인을 위해 무료로 악기·보컬 강습 이벤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유강호(50) 낙원상가 번영회장은 “꼭 악기를 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부담 없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낙원상가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연·이벤트 정보는 낙원상가 홈페이지(enakwon.com)에서 볼 수 있다.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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