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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관광객 한 명당 5만원…현대판 ‘인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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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2008년 터진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3개 브랜드가 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간 스마트폰 ‘갤럭시’와 자동차 브랜드 ‘HYUNDAI’가 우선 꼽힌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유커(遊客)’다. 중국 관광객은 빈사 상태로 빠져들 뻔했던 국내 서비스 업계에 신선한 피를 공급했다. 그 ‘유커 업계’에서 지금 별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달 초 A여행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의 현지 여행사로부터 20명의 단체 여행객을 받았다. 4박5일의 서울~제주 일정이었다. 여행 상품 가격은 900위안, 우리 돈 16만2000원이다. 하얼빈~서울 왕복 비행기 값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인두세(人頭稅)’ 때문이다. 정상대로라면 A여행사는 하얼빈 현지 여행사로부터 숙박·식사·교통 등 국내 관광 비용을 일부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거꾸로다. A사는 오히려 유커 1명당 300위안(약 5만4000원)의 돈을 중국 측에 줘야 했다. 돈을 주고 유커를 사오는 셈이다. 그 다음부터는 뻔한 일, 덤핑관광은 그렇게 시작된다.

‘덤핑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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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사들은 갑(甲)이다. 관광객을 보내 달라며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한국 여행사 중에서 인두세를 많이 주겠다는 업체를 골라 보내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황금상품(쇼핑 수익이 많이 나올 듯한 단체)’의 인두세는 700위안(약 12만6000원)까지 뛰기도 한다. 업계 경쟁이 중국 여행사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하얼빈의 송출 여행사는 전체 수입 1200위안(상품가격+인두세) 중 수수료 100위안을 먼저 챙기고 나머지 1100위안을 비행기 값으로 지출했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비용은 A사의 몫이다.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호텔은 서울 너머 수도권에 잡아야 하고 식사는 ‘배고프지 않은 수준’으로 때워야 한다. 이 회사의 이사로 일하고 있는 K씨는 “호텔·식사·교통·입장료 등에 최소한 27만2000원(약 1500위안)이 든다”고 말한다. 여기에 300위안의 인두세를 냈으니 결국 1800위안, 약 32만6000원의 비용이 든다. 무슨 수를 쓰든 유커 1명당 그 이상의 순익을 남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법은 하나, 쇼핑을 돌리는 것이다.

면세점 판매 수수료는 약 7%로 낮다. 그러기에 특약을 맺고 있는 일반 쇼핑점으로 유커를 몰고 가야 한다. 그곳 수수료는 인삼 제품의 경우 30%에 달한다. K 이사는 “사무실 임대료, 직원 월급 등 경상 경비를 합치면 적어도 1인당 150만원 이상의 쇼핑을 뽑아 내야 간신히 적자를 면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를 시켜 ‘쇼핑 몰이’에 나서는 이유다. 하얼빈 여행객들은 서울에 있던 이틀 동안 쇼핑센터를 여섯 번이나 들러야 했다.

가이드도 ‘좋은 손님(쇼핑 수익이 많이 나올 듯한 유커)’을 잡기 위해 경쟁한다. 돈 주고 손님을 사기도 한다. 하얼빈 손님을 받은 가이드 P씨는 관광객 1인당 100위안, 모두 2000위안(약 36만원)을 A여행사에 냈다. 그 역시 ‘투자’ 회수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가이드 경력 4년째의 조선족 동포 P씨는 “충실하게 문화를 설명하고 싶지만 쇼핑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부성 발언을 해야 한다”며 “모든 해설은 쇼핑에 유리하게 맞춰진다”고 말했다.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을 설명하면서 ‘왕비가 밤새도록 교태 부리던 곳’이라는 해설은 그래서 나온다. ‘인두세 생태계’에는 이렇게 유커-여행사-가이드-특약 쇼핑센터 등이 얽혀 있다.

‘한심(寒心)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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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들이 흔히 관광객을 유도하는 특약 일반쇼핑센터. 인삼, 헛개나무 등을 주로 판다.


이 생태계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의 국격이다. 지난해 10월 9일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의 지방 신문인 장시일보에 “한국 여행, ‘한심 여행(寒心游)’으로 끝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기사의 주인공인 차오(肖) 선생은 3919위안(약 70만원)을 내고 5박6일의 서울~제주 단체여행에 합류했다. 고가 상품이다. 그러나 이 상품 역시 ‘인두세 생태계’로 빨려들었다. 가이드는 집요하게 쇼핑을 강요했다. 그는 의도했던 쇼핑이 나오지 않자 버스를 출발시키지 않은 채 “물건을 사지 않은 사람, 지금 당장 내려 쇼핑센터로 가자”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덤핑 관행은 이제 고가, 저가를 가리지 않고 관광객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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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광객들도 저가 상품으로 왔으니 어느 정도 쇼핑을 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문제는 상품이다. 그들은 설화수·쿠쿠 밥솥 등 유명 브랜드를 기대했지만 가이드가 안내한 쇼핑센터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품뿐이다. 가이드는 사지 않는다고 구박을 주고 상품 매장에는 ‘듣보잡’만 있고…. 한국 상품 이미지는 그렇게 실추되고 있다. ‘한류(韓流) 여행’이 ‘한심(寒心·차가운 마음) 여행’으로 변하고 있다.

그동안 뒷짐만 쥐고 있던 문화체육관광부가 부랴부랴 나섰다. 지난주 ‘덤핑 대책’을 내놓고 탈법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대책은 강력해 보인다. 3회 이상 덤핑 행위로 적발되면 즉각 퇴출하는 ‘삼진 아웃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업계는 반신반의한다. 덤핑으로 연명하는 여행사들이 또 어떤 꼼수로 단속을 피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덤핑 관행은 뿌리 깊다.

업계·학계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고질적인 ‘인두세 생태계’를 바꿀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단속에 나서면 가격이 높아지고 기존 덤핑 손님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덤핑 정도가 덜한 일반 상품도 마찬가지다. 상하이의 한국 여행 상품 가격은 대략 2000~3000위안 선이다. 이에 비해 태국은 1000~2000위안, 일본은 4000~5000위안 선에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일본 상품 가격이 엔화 약세, 저가 경쟁 등으로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상품과 경쟁하려면 값을 오히려 내려야 할 판이다. 한화준 한국관광공사 상하이지사장은 “덤핑을 단속하면 어느 정도 관광객 유치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반드시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강력한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숫자병’

그러나 정부 당국의 관심은 오로지 ‘숫자’에 있다. 만족도야 어떻든 입국 관광객 수를 늘리는 게 최고 목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해외 관광객은 약 1323만 명. 이 중 598만 명(45.2%)이 유커였다. 문체부의 올해 목표치 역시 도전적이다. 전체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25% 늘린 1650만 명, 유커는 34% 증가한 800만 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한쪽에서는 덤핑을 단속하고, 또 한편으로는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며 관광공사 등 하부 기관을 채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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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들은 ‘숫자병’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목표 숫자에 집착한다면 덤핑 단속은 또다시 흐지부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연 유커 8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최노석 관광협회중앙회 부회장은 “한국 문화의 심장부였던 명동은 지금 떡볶이, 화장품 호객 등이 난무하는 싸구려로 변해 가고 있다”며 “유커는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존재라는 인식이 명동 상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병권 호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는 ‘철학’을 주문한다. 관광은 ‘산업’과 ‘문화’라는 이중적 속성을 갖는다. ‘숫자 실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관광은 오히려 국격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 한국여행업협회의 한 간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1000만 명이면 충분하니 이제부터는 관광 선진화 방안을 짜라’고 지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실무자들이 숫자 실적에 매달리지 않고 질적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바탕 위에서 10년 앞을 내다본 정책을 짜야 한다. 최노석 부회장은 “현재 크루즈 여행은 해양수산부에서, 의료관광은 보건복지부에서, 면세점은 관세청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이런 시스템으로는 유기적인 관광 정책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에서 국제 여행객을 담당하는 조직은 국제관광과 하나에 불과하다. 여행객 10만 명에 불과했던 30년 전 조직을 1000만 명 시대에서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관광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이를 중심으로 중국인 스스로 한국을 찾아올 수 있도록 선진국형 관광 인프라를 짜야 한다. 이웃 일본이 2008년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관광청을 신설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커는 우리 경제를 지탱해준 브랜드다. 한·중 양국의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인두세 생태계’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한류’ 브랜드를 ‘한심(寒心)’한 이미지로 실추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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