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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응원글] 취모검객 이세돌과 괴물기사 알파고

[이세돌 응원글 | 최승호 시인]

알파고는 바둑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세돌을 이기고 있다.

바둑판의 중심은 태극(太極)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천원(天元)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태극은 바둑판뿐만 아니라 태극기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태극은 우주만물을 내놓는 근원이자 그것을 움직이는 힘이다. “나는 태극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허공은 물론 천하를 굴리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바둑을 도가(道家)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몇 천년을 사는 신선(神仙)들의 놀이가 바로 바둑이었다고 말이다. 팽조(彭祖)는 팔백 살을 살았는데, 팽조는 요절했다고 장자(莊子)는 말한다.

바둑을 신선놀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바둑을 두면 세월 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선계에서 바둑을 두다가 속세로 내려와 보면 마을 사람들이 이미 다 늙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서울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나 인간계를 무척 시끄럽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알파고를 괴물기사라고 부르는 까닭은 알파고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알파고는 로봇기사의 모습으로 이세돌 9단과 마주앉아 바둑을 두어야 했다. 그것은 기사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다. 왜냐하면 바둑은 서로를 존중하며 머리를 숙이고 마주앉아 검은 돌 흰 돌을 놓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불패소년 이세돌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세돌은 수많은 슈퍼컴퓨터로 연결된 살아 있는 괴물계산기, 모습 없는 괴물기사 알파고와 혼자 싸워야 했다. 마치 무시무시한 전력을 갖춘 핵잠수함과 싸우는 한 마리 순진한 돌고래처럼.

이세돌은 쎈돌, 불패소년 등의 애칭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세돌은 비금도 소년이 아니다. 그동안 나는 이세돌의 바둑을 보면서 그를 무림의 고수처럼 생각해 왔다. 이세돌의 바둑에서는 피가 튄다. 혈흔이 낭자해도 물러나지 않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만만이 이세돌의 기풍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리한 취모검(吹毛劍)을 들고 늘 전쟁터를 향하는 이세돌의 바둑은 비장하고 인간적이다. 그런 이세돌 9단을 나는 ‘취모검객’이라고 불러본다.

◇취모검=털이 날라와 닿기만 해도 잘라질 정도로 날카로운 검을 뜻한다. 불교에서 빼어난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머리카락을 올려 놓기만 해도 잘라지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이란 뜻이다.

◇최승호=1977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현실 비판에서 문명비판, 생태주의 등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 넓은 작품 활동을 해왔다. 82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대설주의보』,『회저의 밤』『그로테스크』『북극 얼음이 녹을 때』 등의 시집을 펴냈다. 베스트셀러 ‘말놀이 동시집’도 출간했다. 54년 춘천 출생.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 수상.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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