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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세기의 대국은 정말 불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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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 사례1

내 이름은 M, 테니스 선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나는 부정맥과 당뇨병 가족력 때문에 2006년부터 멜도니엄이라는 약을 먹었다. 지난해까지도 괜찮았는데 올해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이 약을 금지약물로 지정했다. 산소 흡수량을 늘려 지구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후원사들은 등을 돌렸고, 지금까지 성적은 소위 ‘약발’로 올린 게 됐다. 고의냐 무지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도핑이니까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좋다. ‘약발’로 뛰었다 치자. 세리나 윌리엄스에게 18연패 동안 한 번만 이겼어도 억울하지는 않겠다.

# 사례2

내 이름 O, 선천적 장애로 한 살 때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절단했다. 육상선수는 언감생심이었는데 의용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고성능 의족을 갖게 됐다. 내가 올림픽 출전의 뜻을 밝히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반대했다. 의족이 보조기를 넘어 인간 한계치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600만 불의 사나이’일 수도 있으니 인간과 겨루는 건 불공정하다는 거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간 끝에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입상하지 못했다. 다행인 것 같다. 메달을 땄다면 불굴의 인간 승리 대신 불공정한 로봇 승리가 됐을 테니 말이다.

# 사례3

내 이름은 C, O와 같은 남아공 출신 여자 육상선수다. 외모와 주법이 남자 같다는 이유로 성적 정체성을 의심받았다. 검사를 해 보니 유전자 이상으로 남녀의 특성을 모두 지니긴 했다. IAAF가 내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아 여자 선수들과 겨루는 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와 겨룰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내가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자 “성적 정체성 문제를 우려해 열심히 뛰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어렵게 나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부러 포기했다니.

# 알파고

사람들은 나를 바둑 두는 인공지능(AI)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따라 최적의 계산 결과를 구할 뿐이다. 이세돌 9단이라는 세계 바둑 최고수를 맞아 늘 하던 반복 연산을 했다. 첫날 내가 이겼다며 경악했던 사람들이 이튿날 불공정한 승부라고 비난했다. 내가 192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280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하고 있어 사실상 컴퓨터 2000여 대를 활용하는 셈이라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도 사람인데.

사례 1~3은 마리야 샤라포바,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캐스터 세메냐 얘기다. 승부 이후엔 진 쪽은 물론 이긴 쪽도 억울할 수 있다. 4차전에서 이기긴 했지만 이세돌 9단의 3패에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했고, 마음 한쪽이 시렸다. 그렇다고 불공정 승부로 몰아가면 위로가 되나. 승부란 게 원래 불공정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니던가.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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