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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건설법안” 1초 발언…2표 차 당선자…3일짜리 의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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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성 기자

야당 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화제가 됐습니다. 야당의원 38명은 지난달 23일 오후 7시 6분부터 3월2일 오후 7시32분까지 192시간26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습니다. 국회 개인 최장 연설 기록도 47년 만에 경신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시간31분 간 연설을 했습니다. 국회에는 다양한 기록이 많습니다. 국회 진기록관과 국회보 등을 통해 각종 기록을 정리해봤습니다

Special Knowledge<615>진기록으로 본 국회
최장수 국회의장은 이효상
분당 468자 ‘속사포’ 김선태
김영삼 25세 최연소 의원 당선


◆최단기 국회의장은 이승만=최단기 국회의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제헌국회 의장으로 1948년 5월31일~1948년 7월24일까지 55일 동안 국회의장직을 맡았다. 이 전 대통령은 1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의장직을 신익희 의원에게 넘긴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 첫 사회이기도 했는데 당시 국회법이 최고령자가 사회를 맡도록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의 당시 나이는 74세였다. 이 전 대통령은 첫 사회를 본 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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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국회의장은 6대와 7대 국회에 걸쳐 의장을 맡은 이효상 국회의장이다. 이 의장은 1963년12월17일~1967년 6월30일(6대), 7대 국회 1967년 7월10일~1971년 6월30일(7대)까지 총 7년 6개월 7일 간을 의장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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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사흘 후 국회해산=역대 최단기 국회의원은 5대 국회의원인 정인소(무소속, 충북 음성)·김사만(민주당, 충북 괴산)·김성환(무소속, 전북 정읍)·김종길(민주당, 경남 남해) 의원이다. 이들은 1961년 5월 13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선거 다음날인 5월14일 중앙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받았지만 이들의 당선증은 3일간만 유효했다. 5·16으로 인해 국회가 해산됐기 때문이다. 이들 4명 의원들은 금배지도 달지 못하고 본회의장 단상에서 의원선서도 하지 못했다. 세비도 한 푼 받지 못했다. 실제 시간상으로 의원직을 유지한 게 48시간도 안 되기 때문에 ‘48시간짜리 국회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들 의원들과 함께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3일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해 6선 의원이 됐다. 나머지 네 명은 재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5일짜리 의원도 있었다. 6대 국회의원인 박중한·우갑린 의원이다. 두 의원은 신민당 전국구(비례대표) 후보 17·18번이었는데, 같은 전국구 의원인 류진·임차주 의원이 탈당하며 1967년 6월26일 의원직을 승계했다. 이들의 재임기간은 제6대 국회 임기 만료일인 6월30일까지였다. 단 5일만을 재임했지만 국회의원 한 달 세비 20만원을 수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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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9월에 준공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9자 발언도 화제=가장 짧은 발언으로 국회 기록관에 오른 의원은 3대 국회의 하을춘(경남 창원) 의원이다. 하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단 4 글자만 발언했다. 발언시간은 1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하 의원은 본 회의에서 건설법안 심의 때 등단해 “건설법안”이라며 말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기붕 국회의장이 법안 일괄 통과를 선포하는 바람에 발언대에서 내려왔다.

다음으로 짧은 발언은 3대 국회의 김동욱(무소속·부산정)이 한 9자 발언이다. 김동욱 의원은 무소속 김선태 의원(전남 완도)의 구속에 항의하기 위해 발언대에 오른 뒤 국무위원들을 향해 “왜 잡아갔어, 왜 잡아가!”라고 큰 소리로 질타한 후 단상에서 내려왔다. 9글자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은 알짜 발언이었다.

역대 의원 중 가장 발언속도가 빨랐던 의원은 3·4·5대 의원을 지낸 김선태 의원이다. 김 의원은 1분당 약 468자의 속도로 발언을 했다. 의원들의 평균 발언 속도가 1분에 300자인 걸 감안할 때 ‘속사포’ 수준이었다. 당시 숙련된 속기사의 최대 속기능력은 1분에 320자였는데 김 의원의 발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회는 김 의원의 발언을 기록하기 위해 속기사 2명이 동시에 속기를 하게 했다. 지금도 국회는 2명의 속기사가 동시에 속기를 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은 제3대 국회 때 박영종 의원(전남 광주)으로 임기 4년 동안 450회를 발언했다.

◆1058표 얻어 당선된 의원도=최다 득표로 당선된 의원은 12대 국회의 신한민주당 김동규(서울 강동) 의원이다. 김동규 의원은 22만7598표(55.56%)를 얻어 당선됐다. 두 번째로 많은 표로 당선된 의원은 제10대 국회의 김수한(서울 관악) 의원으로 21만2061표를 얻었다. 19대 국회 때 가장 많은 표로 당선된 의원은 8만2582표를 얻은 새누리당 심윤조(서울 강남갑)의원이다.

가장 적은 표로 뱃지를 단 의원은 5대 국회의 손치호(경기 옹진)의원이다. 손 의원이 얻은 표는 1058표에 불과했다. 손 의원의 선거구의 인구수가 원래 작은데다 17명의 후보가 난립했기 때문이다. 손 의원에 이은 최소 득표자도 옹진에서 나왔다. 재선거에서 손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장익현 의원으로 1477표를 받았다. 5대 전석봉 의원(울릉) 1513표, 3대 최병권(울릉) 1741표 등이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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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소 표차로 당선된 의원은 16대 국회 한나라당 박혁규(경기 광주·사진) 의원이다. 박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문학진 후보를 3표 차로 꺾고 당선됐다. 당시 박 의원은 1만6675표, 문 후보는 1만6672표를 얻었다. 3표차로 떨어진 문학진 후보는 이후 ‘문세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 사람의 승부는 문 후보가 낸 당선무효소송으로 법원까지 갔으며 법원의 재검표 결과 표차는 2표로 더 줄었다. 문세표 별명은 ‘문두표’로 바뀌었다. 17대 국회 자민련 김낙성 (충남 당진) 의원은 1만7711표를 얻어 1만7702표를 얻은 열린우리당 박기억 후보를 9표차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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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세 첫 당선된 문창모 의원=최연소 당선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치러진 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당선된다. 만25세 5개월 28일의 나이였다. 전휴상 의원도 25살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보다 2개월 빨리 태어나 1위를 놓쳤다. 김 전 대통령은 최연소 기록 외에도 최다선 의원 기록도 갖고 있다. 3대, 5~10대 13~14대 국회까지 9선을 했다. 박준규 전 의장, 김종필 전 총리도 9선 기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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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국회의원은 제14대 문창모(사진) 의원이었다. 문 전 의원은 1992년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 소속 전국구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문 전 의원의 나이는 만 85세 1개월 8일이었다. 문 전 의원은 1995년에는 88세로 최고령 국회의원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계속 바뀌는 발언기록=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전 국회 최장 발언 기록은 7대 국회 때 박한상(서울 영등포)의원이 갖고 있었다. 박 의원은 3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1969년 8월 29일 오후 11시 10분부터 8월 30일 오전 9시 10분까지 10시간 동안 발언을 했다. 박 의원은 개헌지지 성명과 반대 성명, 헌법, 공무원법 등을 인용했다. 박 의원의 발언을 기록하기 위해 60여 명의 속기사가 동원됐다. 하지만 박 의원은 결국 국민투표법 처리를 막지 못했다. 박 의원의 기록은 본회의가 아니라 상임위에서의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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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있기 전까지는 본회의에서의 가장 긴 발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었다. 김 전 대통령은 6대 국회에서 자유민주당 김준연(전남 영암·강진)의원의 체포 동의안을 막기 위해 1964년 4월 20일 본회의에서 오후 2시 37분부터 오후 7시 56분까지 5시간19분 동안 발언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장시간 발언에 이효상 국회의장은 표결을 포기하고 폐회를 선언했다. 김준연 의원은 국회 회기가 끝난 뒤 결국 구속됐다. 김준연 의원은 국회에서 “박정희 정권이 한·일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자금 1억3000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발언했다가 검찰로부터 체포동의 요청을 받았다. 

◆기타 최초 기록=최초의 여성 의원은 제헌국회의 임영신(경북 안동) 의원이다. 임 전 의원은 1949년 1월13일 보궐선거를 통해 의원이 됐다. 임 의원도 당선 인터뷰에서 “안동은 완고하고 배타주의적인 곳이요. 여성을 멸시하는 풍속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나, 이제 이와 같은 고풍은 완전히 타파된 셈이다”고 했다. 임 의원은 초대 상공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국회에 처음 입성한 의원은 17대 국회 장향숙 의원이다. 장 의원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 의원이 됐다. 장 의원은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체가 마비됐다. 최초의 시각장애인 의원도 17대 국회에서 탄생했다. 정화원 의원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정 의원은 의정보고서를 점자책으로도 냈다. 19대 국회의 더불어민주당 최동익 의원도 시각장애인이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은 최초의 다문화가정 출신 의원이고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최초의 탈북민 의원이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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