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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제재 틈타 富 축적한 신흥 재벌에 선전포고

소리넷그룹의 계열사 케슘(Qeshm)항공 비행기 앞에 선 바바크 잔자니. 석유수출 대금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사형이 선고됐다. [사진 바바크 잔자니 페이스북]



그가 세상에 알려진 건 2012년 성탄절을 앞둔 12월 24일이었다. 이날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대(對)이란 제재 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서다. EU는 그가 ‘이란 석유 거래 및 오일머니 송금의 핵심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재산이 135억 달러(약 16조원)에 이르는 이란 최고 부자이자 60여 개의 계열사를 둔 다국적 기업 소리넷그룹의 오너 바바크 잔자니(42)다. 당시 그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정치적 행동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재벌 잔자니 사형선고, 이란서 무슨 일이

약 3년이 흐른 지난 6일, 이란 사법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그가 석유 수출대금 27억 달러(약 3조2000억원)를 빼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잔자니는 “정부가 1배럴의 석유도 팔 수 없고 1달러도 송금할 수 없을 때 조국을 위해 몸 바쳤다”고 주장했다.



성공한 사업가에서 사형수로 몰락한 잔자니의 처지와 그에 따라 달라진 주장은 이란의 복잡한 정치·경제상황을 반영한다. 제재가 풀려 국제사회로 복귀했지만 이란은 아직 제재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구시대와의 결별을 위한 몸살을 앓는 중이다.



권력에 줄 대 자원 독점권 얻고 밀수출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잔자니는 2010년 자산 동결로 돈줄이 막힌 혁명수비대 간부를 도우면서 정부의 사업 파트너가 됐다. 이후 정부 대신 석유를 판매하고 수익금을 세탁해 이란으로 송금했다. 여기엔 건설·항공·금융산업을 망라해 터키·아랍에미리트(UAE)·말레이시아에 소재한 그의 사업체가 이용됐다. NYT는 “잔자니는 각료회의에 참석해 장관과 거래했다”며 “이란 석유산업에서 가장 센 중개인이 됐다”고 전했다. 최고 수위의 제재 와중에 그는 애국도 하고 돈도 벌었던 것이다.



다수에게 고통이었던 서방의 제재는 누군가에겐 다시 없는 기회였다. 권력과 결탁한 자들은 석유·금 등 자원 독점권으로 큰돈을 벌었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잔자니의 재판을 보도하면서 “이란에선 경영 능력이 아니라 정치적 지원이 있을 때 돈을 벌 수 있다”고 썼다.



2013년 가디언이 소개한 익명의 사업가가 부를 축적한 과정도 그렇다. 정치권 깊이 줄을 댄 그는 이란의 특산품 피스타치오의 가격 급등을 미리 알고 물량을 확보했다. 피스타치오 판매수익으로는 카자흐스탄에 토지를 매입해 밀을 재배했다. 밀은 석유와 교환됐다. 이란 정부는 밀의 값은 후하게, 석유는 시세보다 싸게 쳐 줬다. 그는 헐값에 얻은 석유를 아시아에 팔아 수익을 챙겼다.



제재하에서 극대화됐을 뿐 정치와 경제의 결탁은 이란 체제의 한계이기도 하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세력은 부정부패 타파와 경제·사회적 평등을 약속하며 팔레비 왕조를 쫓아냈다. 이들은 금욕·절제와 같은 이슬람 가치와 사회주의적 이상을 결합한 신정일치(神政一致),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



하지만 혁명의 이상은 구현되지 않았다. 부의 독점을 금기시하는 성직자의 정권은 민간 영역을 최소화했고, 비즈니스는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89년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알리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대통령이 취임하자 외국 기업과의 독점 계약 획득을 위한 뒷돈이 오갔다. 왕조의 부자를 몰아낸 자리에 ‘이란판 올리가르히(신흥부자)’가 들어섰다.



그래도 20세기의 ‘올리가르히’는 자신을 철저히 감췄다. 지난해 FT는 ‘익명의 이란 백만장자’ 사례를 전했다. 15년간 도박장을 운영해 돈을 벌다 암 투병 중인 딸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67세 여성도 포함됐다. 제재를 받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는 지인을 통해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미국으로 송금받았다. 쿠란이 금하는 도박으로 떼돈을 벌고 제재의 영향도 받지 않은 그의 신원은 노출되지 않았다.



아마디네자드 정권 때 신흥 재벌 급증문제는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 후 표면화됐다. 2011년 워싱턴포스트(WP)는 수퍼카를 타고 금가루를 뿌린 아이스크림을 먹는 이란 신흥부자 기사를 실었다. 이란의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저소득층의 지지를 얻고 ‘가장 깨끗한 정부’를 표방했던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사실 가장 부패했다. 그 중심에 혁명수비대가 있다. 혁명수비대 출신인 아마디네자드의 비호 속에 이들은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다. 에너지·통신·건설 등 주요 산업을 손에 쥐었고 석유 장사를 했다. FT는 아마디네자드 재임 중 이란이 벌어들인 오일머니 6500억 달러(약 776조원)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전했다.



이쯤 되자 부를 과시하는 이들이 생겼다. 좀처럼 볼 수 없던 포르셰·마세라티·페라리·람보르기니가 테헤란을 달렸다. 2009년 232대가 판매된 포르셰는 2011년 569대가 팔렸다. 미국에서 7만5000달러(약 9000만원)인 포르셰 박스터 GTS가 17만8000달러(약 2억1000만원)일 정도로 관세율이 높은데도 공급이 달렸다. 두바이에서 쇼핑한 명품을 입고 수퍼카를 타는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호화생활을 전시했다. “미국·이스라엘보다 이란에 더 큰 위협은 불평등”이란 경고가 나왔다.



2013년 8월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개혁을 선언했다. 부패와의 전쟁을 지시하며 “제재의 이익을 본 사람들”이라고 대상을 적시했다. 그 직후 잔자니가 체포됐다. 2014년엔 ‘richkidsoftehran(테헤란의 부자 아이들)’이란 인스타그램 계정을 차단했다. 포르셰 판매대수는 18대로 급감했다. 잔자니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려지자 로하니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래서 잔자니는 희생양이란 말이 나온다. 고위층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좋은 차와 전용기를 타던 그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도구로 선택됐다는 것이다. 그가 로하니와 강경보수파 혁명수비대의 파워게임에 이용됐다는 분석도 있다. 로하니가 잔자니를 통해 보수파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로하니가 임명한 석유장관 비잔 잔가네는 인준 청문회에서 “혁명수비대는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잔자니에 대한 동정 여론이 적지 않다. “그는 쓰고 버려졌다. 주범은 따로 있다.” “더 큰 부패를 감추려는 꼼수다.” 부패의 근원인 권력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다.



지난달 이란 총선에서 온건개혁파는 압승했다. 개방은 했지만 아직 요원한 개혁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외부의 적과 화해한 이란은 이제 내부 적과의 싸움을 남겨 두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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